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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Nov 06. 2020

중3 딸이 요가로 20킬로를 감량했다

요가를 시작한 이후 생긴 변화들

중3 딸이 요가를 시작한 데는 코로나가 큰 원인이 되었다. 학교를 나가지 않는 날이 길어지자 어릴 때부터 게으르고 먹성 좋았던 딸은 몸무게가 더욱 늘기 시작했다. 수시로 냉장고 문을 열어젖히느라 손등으로 똑똑 두드리면 내부가 보이는 냉장고 문의 접착 상태가 불량해질 정도였다. 딸이 습관적으로 냉장고 문을 여는 것을 보며 비밀번호를 설정해서 문을 열게 하거나 자물쇠를 채우는 냉장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딸에게 제안을 했다.

' 너 요가 다니지 않을래?'

이 한마디가 딸의 인생을 바꾸기 시작한 첫 단추이자 지출의 시작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 몇 년 전부터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깨끗한 건물의 요가원이 있었기에 부담 없이 다닐 수 있었다. 요가원이 그렇게 가깝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아무도 요가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한적 없었다는 것도 그 어떤 좋은 여건에서도 사람이 그걸 활용할 생각을 하지 못하면 의미 없다는 것이다.


저녁 8시 무터 시작하는 타임으로 3개월을 등록했다. 끝나고 9시에 들어오는 딸은 완전 땀과 피곤에 절어 기운 없이 들어왔지만 매일 꾸준히 다녔다. 그러면서 살을 빼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지 자연스레 식욕이 떨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먹는 것도 자제하기 시작했다(쌍수 인센티브도 있었다). 무작정 먹지도 않고 상당히 예민하게 먹을 것도 선별해 먹기 시작했고 그렇게 조금씩 빠지던 살이 자신의 최종 목표에 점점 근접해가는 거 같았다. 어젯밤 딸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53킬로야'


어릴 때부터 항상 통통한 스타일로 귀엽다는 느낌까지 있었지만 그게 본인에게는 약점 및 스트레스로 작용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딸이 완전히 다른 체형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환골탈태가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사실 내가 요가를 다니게 된 이유도 딸의 변화를 보고서이다. 나도 저렇게 다닌다면 날씬해지겠지 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다니기 전까지 딸의 방해 작전이 있었다. '내가 요가만 다녀서 살 뺀 거 아니야, 먹는 것 조절도 했고, 근데 엄마는 힘들 거 같아'라고 했다. 아마 길에 지나가면서도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도 좋아하지 않은 사춘기 소녀인데 엄마를 요가원에서 보는 게 부담스러운가 보다 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결국 시간대를 달리해서 등록해 3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나이 든 육체의 한계를 매일 느끼고 있다.


지출이 증가했다.


살이 빠지니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유연성이나 작년에 절친이 다니던 무용학원 생각이 났는지 현대무용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쌍수에 대한 집념은 강해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눈이 크고 예뻐서 아빠 닮아 쌍꺼풀이 생길 것이라 내심 기대를 했지만 눈이 큰데도 불구하고 쌍꺼풀은 보이지 않고 눈두덩의 지방이 두둑하게 붙기 시작했다. 한때 살을 10킬로 빼면 쌍수해준다는 약속을 생각 없이 했던지라 이젠 되돌릴 수도 없었다. 설마 빼겠냐 했던 것이다. 알아보니 쌍꺼풀 수술은 방학 때는 밀려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기에 2주 전 상담하고 1주 전 절개해서 지방 빼고 엊그제 실밥까지 제거 완료했다. 2주 전 상담하고 나오면서 내심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딸에게 '나도 앞 트임 할까?' 했더니 아주 난리가 아니다. 딸은 눈이 길고 커서 앞 트임 안 해도 되는데 의사가 원하면 이렇게 해도 된다는 설명을 듣고 지나가는 말로 한번 꺼내 본 말인데 그 거부반응이 장난 아니었다. 본인만 이뻐지고 싶었나.


라푼젤! Let down your hair!!!!


실밥 빼기 전까지 딸의 머리를 두 번이나 감겨주는 건 내 몫이다. 머리도 짧은 것도 아니고 라푼젤 영화를 찍어도 될 만큼 엉덩이까지 긴지라 많은 노동력이 소요되었다. 결국 며칠간의 진통 끝에 딸이 무용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됨에 따라 거기에 소요되는 비용 또한 내가 감당할 부분이다. 또 딸이 무용 시작했다고 하니 작년 한 해 무용하다 식욕조절 힘들어 그만두었다는 딸의 친구는 같은 학원에 다시 등록했다고 한다. 둘이 의지하면서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단순히 시작한 요가로 인해 다이어트도 성공하고 진로도 정하고 쌍수를 통해 자존감이 올라간 근래의 급격한 변화들이 놀라울뿐더러 딸은 현재 자신의 얼굴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어젯밤 딸은 방을 나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지금 내 얼굴이 너무 만족스러워, 난 엄마 아빠를 안 닮은 거 같아, 할머니 할아버지도 안 닮은 거 같아, 이런 것들이 가끔 무서워'


도대체 이게 뭔 소리인가. 뭐 이건 혼자 착각의 정도가 심한 거 같다. 평소 자신이 엄마, 아빠를 안 닮았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한 거 같은데 이젠 엄마, 아빠를 닮게 되지 않아서 너무 행복하다는 것으로 보인다. 너무 황당해서 소파에 기댄 채 나는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사실 난 널 낳지 않았어'

이렇게 말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지만 말이다.

결국 직장 스트레스니 지겨움이니 뭐니 다 부질없는 소리다. 딸을 서포트해주기 위해서라도 퇴직할 때까지 부지런히 돈을 벌 수밖에 없는 나의 운명을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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