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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y 17. 2021

50세가 넘으니 생긴 변화 중 하나 , 쇼핑 습관

한때는 가격도 안 보고 물건을 쓸어 담았다

나에게는 본능적인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 있다. 새로운 물건이나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것을 보면 한번 사볼까 하는 촉수가 날름거린다. '뭐 이러려고 돈 버는 건데 뭐 '하면서 말이다. 이슬비에 옷 젖는다고 이렇게 조금씩 야금야금 사는 것들에 대한 후회도 상당하다.


한 오 년 전쯤 남편이 두바이 파견근무를 갔던 때였다. 옆에서 쇼핑하는데 감시하는 사람도 없고 택배를 주문해도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자유롭게 내가 사고 싶은걸 맘껏 구매하고 누리던 때가 있었다.


'뭐 돈도 쓰라고 있는 거야, 안 쓰고 아끼고 살다 간 옆에서 뜯어가기만 하고 오히려 스트레스야 '하면서 관심을 끄는 물건 있으면 제한 없이 구매로 연결되는 일상이었다. 남편이 곁에 없다는 허전함도 쇼핑에 미친 또 하나의 영향이라고 여겼다. 또 , 물건에는 나름 그에 합당한 가격이라는 게 있어서 '싼 게 비지떡'이라는 게 그냥 나온 말은 아니고 비싼 데는 나름 그 이유가 있다는 이상한 신념까지 생겼다.


옷 같은 경우, 가격이 비싼 옷은 옷감을 만져보면 그 질을 알 수 있고 입었을 때 그 라인 같은 게 절묘하게 잘 맞아서 세련미를 풍기는데 저렴한 옷은 입어도 이쁜 테가 안 나고 얼마 못가 후줄근해지고 옷감, 바느질, 디자인 뭐든지 고급옷을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먹는 거 생필품도 마찬가지라 여겨서 조금 비용을 더 추가한다면 최상의 만족도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옷도 좋은 거 몇 개 사서 오래도록 입어야지 했다.


그렇다고 내 수준에 맞지도 않는 명품이나 몇백만 원어치의 물건을 싹쓸이하는 건 아니다. 마트 같은 데서 수프를 하나 사더라도 그냥 누구나 알고 있는 수프보다는 새로 나온 먹음직스럽고 한번 시도해볼 만한 수프가 있다면 그냥 가격표 보지 않고 그렇게 집어 장바구니에 넣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심리적인 만족도 있었지만 성격 급한 자의 쇼핑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다. 번개처럼 마트에 들어가 번개처럼 후다닥 사고 나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기괴한 습성도 얼마 가지 못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변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조금씩 변하는 것도 있고 과거의 습관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있다. 그렇게 신나고 줄기차게 몇 년 스트레스 풀듯 뭔가를 구입하고 보니 자칭 '미니멀리스트'인 나의 집엔 정리해야 할 물건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가격도 안 보고 식료품 쓸어 담는 것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 후  일망타진하듯 온 집을 들쑤셔서 버릴 거 버리고 정리를 해놓으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물론 미니멀 라이프 한답시고 이런 식의 사이클이 몇 년간 반복되고 있긴 하다.


남편이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 나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물건을 사더라도 1+1을 하게 되고 가격이 좀 더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물건을 구입하고, 먹어서 소비하는 거 아니면 집안에 웬만한 장식품이나 불여 불급한 걸 들이지 않는 마인드로 다시 한번 굳게 무장하게 되었다.


여행에 대한 감흥이 나이가 들수록 시들어가듯, 예쁘고 신기한 물건이나 옷을 들이는 것도 멋 부리는 것도 한때라는 말도 있다. 나 역시 이젠 새로운 옷이나 물건을 사는 것도 감흥이 떨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이 나랑 성향이 같지 않고 옆에서 감시자로 활동하며 지속적인 잔소리를 해줘서 나를 제어해주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다. 이젠 예전에 샀던 옷을 입고 예전에 샀던 물건을 쓰며 쓸데없는 쓰레기가 되는 물건은 절대 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결국 나는 오늘도 이렇게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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