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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y 31. 2021

어릴적 먹었던 해산물이 위안이 된다면

나이 인생음식들에 대하여

어릴 적 바닷가에 살아서 해산물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많다.


꽃게철이 되면 엄마가 어판장에서 큰 대야에 가득 꽃게를 사오셨다. 찜통 한 가득 찐 다음 밥상 위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꽃게를 다 부은 다음 온 가족이 둘러앉아 침묵 속에 꽃게를 한껏 먹었다. 수십 년 전이 지났어도 그 꽃게에 대한 기억은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언제나 과거처럼 풍족하게 꽃게를 먹어볼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꽃게 외에도 삼치 철이 되면 어선들이 엄청난 삼치를 잡았다고도 한다. 과거엔 일본으로 수출도 하고 정말 어민들이 잘 살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얼린 삼치도 먹어보고 간장 양념에 해동된 부들부들한 삼치를 먹은 기억이 있다. 굴도 마찬가지다. 인근에 굴 양식장도 많았다. 굴뎅이를 찜통에 삶아서 온 가족이 한 손엔 과도를 들고 굴 껍데기를 벌려서 익힌 굴을 까먹는 것도 정말 맛있고 달콤한 기억이다.


김도 마찬가지다. 매 끼니때만 되면 엄마가 연탄불에서 김을 구워오라고 시키는데 먹는 건 좋은데 그땐 구우는 것이 귀찮았다. 하지만 해우라고 불렸던 그 김맛을 지금의 김에서는 느낄 수가 없다. 어릴 적 입맛의 기억에 살짝 남아있는 그 해우의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먹어보지 않고는 표현해도 그 김맛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김맛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해산물만 그리 풍족히 먹은 게 아니고 딸기, 참외, 옥수수 등 뭐든 바케스 가득 사와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땐 농수산물 모든 게 풍족했던 시절이었다. 인근 딸기밭에서 바케스당 딸기를 사 와서 먹었던 일, 엄마가 배를 깎고 있으면 그걸 못 참아서 배 껍질에 남아 있는 흰색 부분을 파먹었던 기억들까지 새록새록하다.


중학교 때까지 그 섬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때부터는 도시로 나오면서 해마다 나오는 풍부한 해산물을 먹을 기회도 줄어들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힘들 때마다 어릴 적 먹었던 해산물이 생각나지만 그때처럼 먹을 수도 없고 그때 느꼈던 맛을 똑같이 느끼기 어렵다.


인간은 누구나 노화 앞에선 저항하기 어렵다. 기력이 떨어졌을 때 어릴 때 먹었던 그 음식을 먹으면 기운이 날 것만 같았다. 친정엄마가 어릴 때와 같은 파래를 해주셨다. 인공 식초가 아닌 자연스레 숙성된 파래의 맛이다. 무를 채 썰어서 넣은 알싸한 파래는 동치미와 더불어 어릴 적 겨울밤의 기억까지 가져다준다. 동치미를 먹었던 그 집에서 그 순간의 겨울이 아련히 떠오른다. 오십이 넘은 지금도 꽃게, 굴 파래, 소라, 고동을 먹으면 어릴 때 그걸 먹었던 상황이 추억이 되어 떠오른다.


그동안 먹는 것이 별거 아닌  알았다. 하지만 음식이 추억을 소환하고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해   었던 것이다. 체력이 떨어지고 힘들 때마다 해산물을 먹으면 기운이   아니라 어릴  추억은 보너스로 따라온다. 나이가 들면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과거를 회상하는   가장 큰것이 어릴적 해산물을 먹었던 기억일 것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섬에서 그걸 먹었던 짤막한 상황이 장면 장면으로 떠오르게 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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