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사무관이 되어야 족보에 이름을 올린다고 했지만 요즘은 그런 말도 무의미할 정도로 사무관들이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이 시골 조그만 군에 사무관은 숫자가 한정되어 있어서 인간 먹이사슬 피라미드 그 위쪽에 올라가기 위한 경쟁이 나름 치열하다. 그래서 꼼수나 운발 또한 크게 작용한다. 또 도시엔 젊은 사무관들이 수두룩 하는데 시골의 연령층은 퇴직을 일이 년 앞둔 시점에 되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된다 할지라도 면장으로 부임하게 되면 2층 면장실 계단까지 어디 건설업자부터 동료들까지 축하화분이 가득하다. 아마 화분 숫자가 얼마 안 된다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의심을 받을 수가 있고 좀 부끄러울 거 같기도 하다. 그런 화분을 볼 때마다 저걸 쌀 같은 것으로 받아서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꽃집도 한철 장사로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도 있다.
시골공무원으로 이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윗부분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노력이나 능력 가지고만은 불가능하기에 어쩌면 이것도 운이 70프로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업무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다보면 언젠가 승진하겠지라는 순진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승진에서 누락되면 자괴감에 시달리고 며칠 병가를 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공무원 인생에서 겪어야 할 일이라면 좀 더 초연한 자세를 기르는 것이 정신건강에 유리할 거 같다. 그토록 갈구하던 승진도 막상 그걸 얻고 나면 몇 개월 후에 그런 것에 대한 감동도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또 그토록 바라던 사무관 승진을 했지만 극히 개인적인 일로 공로연수까지 못 가고 명퇴한 사람도 은근히 많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그렇게 호들갑 떨며 살 필요는 없다는 사례를 많이 보아왔지만 막상 내 경우라고 생각하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싶다.
사무관 승진과 무관하게 6급이 된 후 자기 생활 즐기며 현재에 만족하며 퇴직하는 사람도 많다. 정신이 건강한 상태로 퇴직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걸 내려놓고 남들의 승진에 전전긍긍하지 않는 초월적인 태도가 필요한데 매년 인사철마다 관련 없는 사람들조차 우울해지는 분위기는 무시할 수 없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고 사는 게 상책 아닌가 싶다. 그러다 아는 후배가 승진해서 직속 상사로 와서 심히 갈군다면 그때야 꼬으면 출세하라고 그러던데 하면서 마음의 평화는 깨질지 모른다 그것도 자기 팔자다.
무엇보다도 끔찍한 일은 그가 어떻게 사무관이 된 과정을 다 아는데 자신의 승진이 거의 전생에 이 시골 군을 전쟁에서 구한 영웅인양된 듯 너무 의기양양한 나머지 그동안의 모습과 정말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면 그에게 지위를 줘보라는 말이 있다. 7급 때는 조용히 말도 없이 구석진 곳에서 일만 하던 사람이 6급 달고 부면장이 되지 세상 모든 걸 얻은 것처럼 걸음걸이부터 달라지고 자신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직원들 사무실 뒤로 불러내서 훈계를 둔 사람도 있다. 또, 6급 팀장일 때는 고개 파묻고 걸음도 구부정하게 걷던 사람이 사무관이 되자 어깨가 당당하게 펴지고 어찌나 힘차게 걷던지 누가 뒤에서 보면 논두렁 깡패 콘셉트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 사람도 본 적 있다. 이 촌구석에는 무슨 집안에 9급 공무원 하나만 나와도 가문의 영광이라도 된양 호들갑떨고 여기저기 들썩이는 집안도 있는 데 사무관이라도 되면 오죽하겠는가.
또 직원들을 갈궈 체납세금도 1등으로 걷어야 하고 실적위주로 돌변해서 직원들을 달달 볶는다. 달달 볶아야 뭐라도 나온다고 생각하게 때문이다. 물론 면장이 세금 징수하라고 지시할 수 있는데 이 모든 것도 방법의 차이이다. 그게 뭐라고 이 좁은 시골구석에서 이러고 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렇게 악독한 사무관들도 고맙게도 몇 년 후 퇴직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가 어디서 어떻게 산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관심도 없어진다. 사무관이었을 때 좀 더 덕으로 직원들을 베풀고 감싸 안는다면 현직에선 직원들도 알아서 열심히 일하고 퇴직 후에도 덕 있는 자로 남을 것인데 말이다.
요즘 와서는 밑에 직원들 교육시키는 것보다 위에서 의식이 바뀌지 않으니 조직이 안 돌아가고 소통이 안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무관이 되기 전에는 인품 같은 것을 감안해 선별하고 된 후에는 형식적으로 행안부 자치 인재개발원에서 하는 몇 주짜리 교육보다는 자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의식교육을 지속해야 조직이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6급 팀장일 때와 다른 마음으로 조직을 이끌어가야 하는데 팀장일 때와 같은 방법으로 한다면 트러블이 있게 될 것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데 지위만 높아지고 그 지위를 이용해 권한을 행사하고 직원들이 자신을 대우해 주기 바라는데서 트러블이 시작된다. 이것도 개인적인 능력, 다짐에 따라 변할 수도 있는데 대부분 스스로 깨닫기엔 한계가 있다. 인간은 대부분 어찌 되었든 본성이라는 게 변하기 않기에 외부적으로라도 사무관들의 나쁜 행태를 개선할 수 있는 철저한 의식 교육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