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지금 근무하는 곳으로 전입을 오게 되었다. 당연히 동기도 없고 고향 지인도 없기에 이곳은 완전히 내가 낯선 지역이다. 20대 갓 신입이라면 이곳에서 새로운 관계를 개설하는 게 쉬울 수 있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데대 육아에 직장을 병행해야 하는 30대 후반의 내게는 적응하는 것부터 해서 모든 게 버거웠다. 게다가 내가 막 이곳에 정착했을 때 이곳에 폭설이 70센티 이상이 와서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살던 나는 극심한 추위와 폭설로 이곳에 온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휴직을 쉽게 선택하지도 못하고 퇴직도 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삶이 진행 중이었다. 어떻게든 낯선 이곳에서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며 버티고 살아남아야 할 텐데 앞으로의 육아기간을 고려해볼 때 까마득한 안개로 덮인 앞날이었다. 그렇게 난 가시덤불로 덤힌 적응 길을 헤매고 다니느라 자연스럽게 아웃사이더로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 후 십여 년간을 적응하느라 힘들게 살아왔지만 그 시절은 그 어느 누구도 쉽게 알 수 있거나 이해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고통이든 뭐든 오로지 자신의 몫 이기에 아무리 누굴 붙잡고 이야기해봤자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남편 또한 브레인 구조가 나와 철저히 다른 사람이라 그 어떤 고민이나 힘듬을 토로해도 딱 중립자의 입장에서 비판 분석하는 철저히 남의 편인 자였다. 지금에야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 같은 것이 있어 여성들의 온갖 고민을 올려놓고 같은 여성들끼리 해법을 제시하기도 하고 고민을 공유하면서 스트레스 푸는 게 있다지만 그땐 짐승이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핥고 치유하듯 스스로 삭이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점점 결국 한 개인의 고민은 어느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고 지인에게 말한다 해도 그건 약간의 공감과 위안을 얻을 뿐 결코 해결되지 못한다.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 책에서 답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것도 그즈음 알아가기 시작했다.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알기에 애써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데 연연하지도 않았다. 그 어떤 모임이 없으니 나의 개인 시간을 쪼개서 오늘은 누구를 만나고 누굴 만나고 계획하지 않아도 되고 딱히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야심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인맥 관리하고 어떻게든 썩은 동아줄이 아닌 튼튼한 밧줄을 잡으려고 동분서주하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같이 해외여행을 간 모임, 동기모임, 같은 면에 근무한 모임, 같은 여고를 나온 모임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등 정말 다양한 모임이 많다. 또 모임 속에 모임까지 있다. 술 모임도 그렇고 그런 모임에서는 주로 어떤 사건이나 어떤 인물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세세히 요리하는 일도 빠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이야기를 알게 된 것도 그런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입에서 나온 가십거리들이 공공연히 떠돌아다니기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상당히 피곤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난 퇴직할 때까지 이곳에서 지금처럼 아웃사이더로 살 계획이다. 어떤 동료는 퇴근 후 술 모임이 있는 것에 상당한 부심을 느끼고 있는데 그렇게 자기만족으로 살면 되지 그와 비해 퇴근 후 집으로 직행하는 나에게 대해 왜 그렇게 사냐고 한 적 있어서 급 어이없던 적이 있다. 나이도 나와 비슷한 연배인데도 그런 사고방식을 갖는다는 게 나이만 같다고 모든 게 같은 게 아닌 사고방식이 낡고 고루한 사람이 있긴 있는 거 같다. 그런 사람들과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