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해야 휴직이 가능할까
그동안 왜 그렇게 휴직이 힘들었을까. 자기 계발 휴직, 육아휴직, 동반휴직, 유학휴직, 간병휴직, 질병휴직 다양한 휴직이 있지만 동반휴직을 쓸 기회도 있었고 육아휴직을 쓸 기회도 있었지만 모두 날려버렸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을 때 휴직을 쓸 수도 있었는데도 쓰지 못했다. 그냥 병원 가서 우울하다고 하면 공황장애진단서를 써줄까 생각만 했다. 그 우울함이 단순 우울함인지 진짜 우울증인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다. 그냥 저녁에 잠도 안 오고 새벽에 깨고 그러는데 이게 무슨 진단이 나올려나 하면서 시간만 보냈었다.
결국 질병휴직을 쓰는 날이 왔다. 3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업무적으로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으면서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스트레스는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있어야 하는데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건 적당한 스트레스일 거야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누구보다 쉽게 받는 예민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넘겨버렸었다. 건강을 잃으면 모두를 다 잃는 거라고 다들 알고 있으면서 실상 건강을 잃기 전까지 설마 내가 건강을 잃겠어. 그냥 다른 걸 조심해야지 하고 바보같이 생각했다.
이렇게 쉽게 휴직을 낼 수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왜 그렇게 갈등하고 힘들어했을까. 만약 내가 직장생활 안 하고 육아와 가사활동에만 전념하고 살아왔어도 지금 이렇게 여유롭고 행복하다고 느낄까. 또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것만은 아닌 거 같다. 육아로 퇴사하고 경력이 단절된 이야기, 평생 가사 활동하면서 살아왔지만 그렇다고 건강하지만도 않은 이야기 이 모든 게 케바케이고 각자 인생이기에 정답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수많은 시간 동안 개인적인 생활을 갖지 못했기에 이 휴직이 이렇게 달콤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도 6시면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고 빨래를 돌리고 오전 9시면 카페를 가서 글을 쓰거나 책을 보다가 오후에는 집 옆 운동센터에서 한두 시간 자전거나 러닝머신을 타고 사우나를 하면 오전이 지난다. 오후엔 직장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외식을 하려고 한다. 이곳의 맛집도 한계가 있어서 매번 고민하지만 뭘 먹든지 포장해와서 집에서 먹는 게 편하다. 그리고 늦은 오후에 저녁을 준비하고 저녁을 먹은 후엔 또 근처 저녁 산책을 가면 뒷 산에서 나오는 초록향기가 저녁의 싸늘한 공기와 어우러져 아주 시원한 산책시간이 된다. 지금처럼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울 때가 없었다. 그냥 바쁘고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온 시간이 너무 아쉽고 후회가 된다. 하지만 이런 여유시간도 연말까지다. 올 한 해 근육질로 단련된 건강한 몸을 최대한 만들어 내년에 복귀할 계획이다. 그때쯤은 내 지친 심신이 어느 정도 리프레쉬될 거 같다.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휴식이 필요하다.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