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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Aug 23. 2021

베이킹이 취미가 될수 있다면

혼자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삶이 그리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무료하고 심심한 것을 참지 못하는 내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하는 게 바로 베이킹이다. 애들 어릴 때부터 하곤 했으니 이쯤 되면 웬만한 실력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대충대충 하는 타고난 성격 탓인지 레시피를 기억해서 대충 넣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쩔 땐 세상 귀챦은것이 베이킹이 이기에 만들어야 할 상황이 오면 급한 데로 재료 비율을 생각대로 넣을 때가 있다. 결과는 폭망이다.


시간을 투자해서 레시피를 보고 재료를 넣어 반죽을 해서 오븐에서 만들어 나오는 것이 마치 도자기를 빚는 과정과 비슷하다. 재료 비율이 조금만 맞지 않아도 실패작이 나오기 때문이다. 레시피 데로 하면 되는데 나름 실험정신이 있어 조금 더 넣기도 하고 레시피에 없는 걸 넣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버터를 빠뜨리기도 해서 엉망진창의 빵이 나올 때는 정말 속상하다. 재료비율이 조금만 틀려도 제대로 된 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한 계량과 온도를 통해서 멋진 작품이 완성되어 나오는 것이 때론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동안 베이킹한다고 산 컨벡스 오븐이 최근에 구입한 것까지 하면 네 번째이다. 몇 년 쓰다 보면 청소를 꼼꼼히 하지 않은 탓인지 고물딱지처럼 보이는 데다가 시간이 갈수록 최신의 오븐이 출시되기에 사고 버리는 패턴이 반복된다. 결혼 초에는 그 당시 유행하던 국산 제빵기를 구매했지만 거기에 물을 넣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밀가루만 넣어서 돌리다가 칼날을 어디 잃어버리고 제빵기는 남동생에게 줘버렸다. 근데 칼날이 없었기에 남동생에게 준 것도 아무 쓸모 짝에도 없는 것이 돼버렸던 어리석은 기억이 있다.


한 오 년 전에는 빵맛이 틀리다는 조지루시 제빵기를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해 큰맘 먹고 구매를 했다.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작동할 때 애를 먹었지만 타고난 실험정신으로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결국 제대로 된 식빵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나중엔 집에서 먹다 먹다 지쳐 사무실에도 가져가서 빵을 간식으로 만들어서 직원들과 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은 이렇게 빵을 만들어서 사무실 가져가면 대부분 할 일 없어서 빵을 만들어 오는지 안다는 것이다. 그 말 듣고 오래전 최초로 구입한 오븐으로 빵을 만들어 집에서 이것저것 사무실 가져갔을 때 좋아라 먹으면서도 직원들 눈빛에서 희미한 조소 비슷한 것을 보았는데 바로 그게 그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베이킹의 과정이 얼마나 힘든데 굳이 고생해서 그런 호구 짓은 다시는 안 해야겠다 생각했다.


한동안 꾸준히 그 제빵기로 빵을 만들어 먹다 질리기 시작했다. 반죽 기능도 있어서 제빵기로 반죽해서 다른 모양을 만들어 오븐에서 구워도 되는데 그건 너무 귀챦았다. 드디어 그 제빵기도 내 눈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는지 미니멀 라이프에 도움이 안 된다며 당근 마켓에 올려서 집 앞 문 앞에 둘 테니 무료로 가져가라고 올렸다. 당근 한 시간도 안돼서 제빵기와 일본식 전압이라 변압기까지 해서 순식간에 누군가 가져갔다. 그리고 최근에야 후회를 했다. 그때 그걸 그냥 놔뒀으면 다시 살일도 없는데 말이다. 다시는 쉽게 물건을 버리지 않고 신중해지기로 했다. 생각 없이 버리고 나중에 그 물건을 다시 찾는 어리석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최근에 다시 휴직으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다시 또 베이킹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이젠 제대로 해보려고 책까지 구입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집에서 만들 수 있는 빵이 많다니. 레시피를 보자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가 오직 만드는 거라곤 머핀, 쿠키, 카스텔라, 식빵 정도인데 책에 나온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독학보다는 학원을 다니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만 이 시골구석에서는 문화센터나 그런 학원이 없기에 남는 시간에 뭐든 배워볼 수가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또다시 그 조지루시 제빵기를 인터넷으로 구매를 했다. 예전에 샀던 모델은 단종되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며칠 안에 제빵기는 도착했고 또 사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눌러봐도 작동이 되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검색해보니 이 제빵기는 스타트 버튼 누르고 20분 후에 작동한다는 것이다. '아하'그렇구나. 게다가 예전 모델은 식빵 하나를 만드는데 6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이 건 3시간 반이면 완성된다. 갈수록 기술이 발전되나 보다.


베이킹을 취미로 한다는 것이 상당히 멋진 일이 될거같다. 비록 실력이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이지만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꾸준히 하루의 시간의 빈틈을 메꿔나간다는 것도 나름 뿌듯한 일이다. 넷플릭스에 보면 정말 현란한 솜씨로 베이커리의 빵만큼  만드는 사람들이 나온다. 부러울 따름이다. 어떤 여성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베이킹을 시작했다고 나온다. 나도 사춘기 딸과 같이 만들어보면서 서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딸은 만들어 놓으면 맛있다고 순식간에 먹어 없애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래도 내가 실패했다고 하는 빵들까지 관심을 가지고 맛있다고 먹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베이킹은 지속 가능한 나의 취미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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