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한 지 5개월째 접어들었다. 언제 내가 직장을 다니기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지금의 일상은 편하게다가온다. 역시 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처럼 누군가를 만나면 불편하고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인가 보다. 복직할 날짜가 다가오면 6개월 더 연장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난 사람에게는 이런 생활이 적격 아닐까.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는 한 취미 생활하며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하지만 삶이라는 게 때론 적절한 균형도 중요하기에 내가 지금 누리는 평온도 기간이 정해져 있기에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의 나의 하루하루는 너무도 평온하다. 이렇게 만나는 사람 하나 없고 사회생활을 안 하게 되니 날 구속하고 옥죄어 오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시간은 또 어찌나 빨리 가는지 하루를 시작하고 얼마 안돼 창밖으로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아침마다 신선한 공기를 듬뿍 마실수 있는 곳에 집이 위치한 탓에 늘 상쾌한 느낌이다. 매일 저녁 풀벌레나 귀뚜라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잠이 든다. 이렇게 풀벌레 소리로 저녁마다 요란하다가 느끼지 못한 사이에 이 모든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다 조만간 이곳은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새로운 풍경을 제공할 것이지만 그날이 오면 난 복직을 해야 한다. 마음준비도 해야하지만 추위를 심하게 타기에 동절기 준비도 단단히 해야 한다.
30여 년간 일하면서 짜증과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달고 살았는데 그중 대부분이 직장 내 업무와 관계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였다. 그 직원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직원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한탄과 원망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이 그걸 받아들이는 경우에만 내게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있듯이 내 마음이 수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직장생활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어쩌면 그 상황을 인식하는 내 마음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분노로 복수를 생각하기도 했고 지독한 미움으로 양미간의 주름이 펼 날이 없었다. 그 미움의 원천은 저 사람은 왜 저럴까에서 시작했다. 끊임없이 직원들을 의심하고 험담하고 고함치고 가십을 즐기는 사람은 자격지심이 가득 찬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상황에서고 어떤 게 자기에게 이익이 될 건지 저울질하고 유리한 결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은 후벼 파는 듯한 탁한 눈이 악한 마음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군상들을 마주하는 현실의 직장은 지옥의 축소판이었다.
저 사람들을 안 보면 좋을 텐데 아니면 내가 어디론가 가버려야 하는데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미움은 하루하루 몸집을 키워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독한 분노에 휩싸이게 했다. 누군가를 미워해 본 적 있다면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알 것이다. 하지만 쉽게 멈추기도 어려운 것이다. 친구와 관계가 안 좋게 된 상황을 처음 맞이하게 된 고등학생딸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어" 그런 딸에게 뭐라고 딱히 말해줄 게 없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이 자신에게도 큰 고통이라는 걸. 이제 인생을 알아가는 단계이니 스스로 깨우치리라 믿는다.
최근까지도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오가며 분노와 미움에 사로잡혔다. 멍 때리는 게 뇌 건강에 좋다지만 멍 때리는 순간을 비집고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은 그 형체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갱년기와 겹친 탓인지오래전 기분 나쁜 기억이 꾸물꾸물 기어올라 격한 분노에 휩싸인다. 안 좋은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약이 나온다면 좋으련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기억이 주는 고통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는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중 한줄기 빛처럼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당신은 마음속으로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나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과거의 사건에 얽매여 모두에게 당한 것을 앙갚음하기 위해 큰 일을 실현해 보이고 싶다고 바라지는 않은가..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정신을 길러온 사람은 개인적인 피해나 마음에 받았던 과거의 상처를 질질 끌어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 사람의 마음에는 가치 있는 목적만이 용솟음치고, 보복하려는 기분 따위는 벌써 어린가로 사라져 버린 뒤다.
446p. <원인과 결과의 법칙>
372p. 온화함에 이르는 길은 지극히 단순하다. 우선 마음에서 이기적이며 저속한 갈망이나 생각을 전부 제거한다. 그다음 그 어떤 나쁜 반동도 일으키지 않는 지속적 만족과 영원한 평화를 제공해주며 어떤 일이 있어도 영원히 존속하는 진리와 조화를 이루는 순수한 바람이나 생각으로 그것을 강화하면 된다.
398p. 인생에 관한 지식을 쌓아온 사람들은 타인이 어떠한 잘못을 해도 그것에 상처 받지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어떤 악도 선이라는 피난처를 자신의 주거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상처 입힐 수 없다. 그들은 어떠한 악이 접근해도, 자신이 가진 선의 힘을 사용해 그것을 그 자리에서 무력화시킨다.
우리는 타인을 절대 바꿀 수 없고 어떤 사람의 성향이 그것이라면 그 사람이 무지하고 그 수준에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행복과 불행의 원천은 우리 마음속에 있으며 상대가 아무리 악으로 위해를 가하려고 몸부림처도 우리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선으로 대하면 그 어떤 종류의 악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책의 내용처럼 사람의 마음이 변해 자신을 강하게 바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매일매일 그 글귀를 바로 옆에 두고 수도자와 같은 마음으로 수련하면서 내 정신에 흡수되도록 노력해야한다. 과연 그런 변화의 과정이 내 뜻데로 될까. 생활은 날 수도자의 상태로 두지 않는다. 그래도 그건 내 인생의 새로운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