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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Sep 07. 2021

52세의 생일 날 벌어진 일

무척이나 한가로운 어느 평일 날 소파에 기대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 나쁜 생각이 아니라면 굳이 찾아오는 생각을 쫒을 필요는 없었다. 갑자기 내 생일에 대해 생각이 났다. 왜 어릴 때부터 엄마가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을까. 그것에 대해 항의한 적 있지만 그 달에 내가 아빠보다 먼저 생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땐 먹고살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과연 그게 진실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과거 생각에 빠져들자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과거 일로 화가 끓어오르고 하는 것도 갱년기 증상 중 하나 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올해 내 생일은 9월 초나 되겠지 했다


오후에 외출을 했고 아무 생각 없이 가족 단톡방에 ' 곧 엄마 생일이네' 문자를 남겼다. 아이들에게 내 생일을 미리 예고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랬더니 바로 문자가 왔다. '엄마 생일 낼이야' 그 문자를 본 순간 놀랐다. 세상에 어떻게 생일 하루 전에 절묘하게 갑자기 생일이 생각이 난 걸까. 내게 신기라도 생긴건가. 게다가 요즘 신형 제트플립3도 나왔던데 아이폰 12 미니로 바꾼 것도 올해인데 내 생일선물은 뭘로 하지.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경제권은 내가 쥐고 있으니 남편에게 서프라이즈 한 건 기대할 수없고 그냥 구두 허락만 맡으면 된다.


갑자기 전업주부인 여동생이 딸에게서 핸드백을 생일선물로 받았다는 게 떠올랐다. 해외 고등학교 마치고 국내 H대학 정책학과에 떡하니 입학하고 과외를 통해 번 돈으로 여동생 오십만 원짜리 핸드백을 사줬다고 한다. 얼마나 괜찮은 조카인가. 갑자기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조카와 내 딸들의 차이는 양육방식에서 오는 걸까 별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지만 애들이 엄마에게 관심이 없는 거 같다. 화가 조금씩 밀려왔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힘들게 살아왔는데 참 인생이 헛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내 생일날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미리 준비하지 않은 탓에 미역국도 끓이지 못하고 나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 이제 서로 가족 생일 챙기는 거 우리 집에는 없다" 이 말에 큰애가 말했다. " 엄마는 굳이 상황을 안 좋게 만들고 싶은가 봐"

둘째도 말했다.

"엄마한테 편지 줄려고 써놨는데 안 줄게"

"그래 주지 마"라고 거칠게 말했다. 마음속에서는 알 수 없는 분노가 계속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한바탕 분노를 거칠게 쏟아낸 후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상황을 재빨리 수습했다. 내 생일이라는 가족 단톡방을 본 후 남편도 나름의 계획은 있었던 것이다. 점심은 한정식이나 대게 같은걸 먹자고 제안했다. 마음을 가라앉히며 겨우 인터넷으로 검색해 한 시간 걸려 도착해 식당에 전화하니 요즘 대게 수입이 안돼 대게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리 전화나 해 볼걸. 평소에 미리 전화해 문의해 예약하기도 하는데 그날은 그렇게 되려고 그냥 갔나 보다. 남편이 회를 좋아하지 않아서 급한 데로 근처 정육점 겸 식당으로 들어갔다. 애들이 육회비빔밥을 먹는다기에 주문하니 서빙하는 아주머니 반응이 시큰둥하다. 이윽고 입구에서 남편이 소고기를 사 가지고 와서 요걸로 상차림 해달라고 하니 서빙 아주머니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알고 보니 메뉴표 밑에는 상차림비 별도라도 표기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신났었구나. 그렇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맛도 모른 채 허기를 채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마음이 슬슬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굳이 혼자 난리부르스 할 필요는 없었고 감정만 소모되고 아이들도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뿐이다. 딸 말데로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혼자 상황을 나쁘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헬스장에서 한 시간 걷고 기분 전환해야지 하며 한참 걷고 있는데 큰딸에게서 문자가 온다.


"엄마 어떤 케이크 좋아해?"

" 나 단 케이크 안 좋아해, 그리고 그 케이크 많이 먹어서 질려"


아마 남편 차를 타고 딸과 함께 빵집 가는 중인가 보다. 다시 남편에게 강하게 전화해서 케이크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오전도 아닌 저녁에 케이크를 먹기도 그렇고 꼭 생일 케이크를 먹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난 핸드폰 가게가 문 열자마자 방문해 무서운 기세로 제크 플립 3을 구매하고 말았다. 처음에 사고 싶다고 하니 딸이 그거보다 엄마가 쓰는 아이폰이 낫다던 딸도

"와 이쁘다" 하면서 만져본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큰딸로부터 그때 써놓았던 생일 축하 편지를 받았다. 하지만 둘째에게서는 아직 받지 못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쓰지 않았는지 모른다. 오늘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그때 엄마 생일 편지 써놨으면 가져와봐"

" 찢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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