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류를 떼다가 오래전에 잊혀 버린 기억을 찾아냈다. 처음엔 도대체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하며 아무리 기억해 내려해도 한 5년이 넘은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저녁때쯤에서야 그 일이 기억이 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감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그 일은 아이들 영어캠프를 보내기 위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애들 친구 엄마와의 관계를 소환했다. 아이들 어린이집, 유치원 시절부터 알고 있었지만 안다고 해서 쉽게 친해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가깝게 되어 같이 애들 캠프도 보내고 쇼핑도 다니고 몇 년간 그렇게 어울렸던 것이다. 하지만 또 사람은 가깝게 지내다 보면 개인적인 이익이 충돌하면서 자칫 감정이 겪하게 변해가면 그 관계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때론 그래서 적당히 가까운 관계가 좋다고 하는데 그 관계 조절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기도 하거니와 인간관계는 예측 불허한 일의 연속이라 팽팽한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관계에 있어서는 균형이라는 게 중요해서 한쪽으로 쏠리거나 하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쪽의 한없는 이해와 관용으로 지속되는 관계도 없기에 갈등이 생기면 자연스레 그 관계는 소멸하게 된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멀어진 후 , 아니 어쩌면 나의 일방적인 이별통보라고 해도 될 거 같다. 돌이 켜봤을 때 그런 선택에 후회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의 성급한 성미로 관계를 그르친 경우가 인생에서 여러 번 있었으니 항상 관계가 틀어진 후 후회를 한다. 그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내가 조금 이해하면 되는데 나의 지나친 상상력이 불러온 참극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보다 나이가 한 두 살 많은 친구들과 학창 시절을 보낸 탓에 내가 조금만 손해 본다 싶으면 나를 이용하는 건가 하는 피해의식도 없진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고 그렇게 멀어지게 되었다.
또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후회를 했다.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굳이 각을 세우고 살 필요는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차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만으로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그러다 나중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만으로 나는 그녀와 차 한잔 마시는 시간을 갖느니 하는 걸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다.
사람은 자기가 직접 겪어보지 않고 자기와 관련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누가 어쩌고 어쨌다고 하면 같이 분노하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때론 조직에선 그런 식의 프레임으로 사람을 대하다 보면 만날 사람 한 명도 없고 저 상대는 과거 어떠 어떠한 일을 했다더라 하며 편견을 가지고 대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다른 사람과 관계가 안 좋은 사람이 나하고는 관계가 좋을 수 있다. 나와 이해관계가 없고 순수한 관계인데 상대를 남에게 들은 이야기만으로 미워할 필요까지 없지 않은가.
특히 조직에는 완벽하게 선한 사람도 완벽하게 악한 사람도 없다. 업무를 수행하거나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단점이나 소문을 캐치했다고 해서 상대를 어떤 프레임에 가두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그게 오히려 자신을 가두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과거 궤적을 따라가 보면 나 역시도 어떤 실수로 남에게 내가 실수만 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힌 적이 있었고 그게 또 그 인간을 평가하는 전체 기준이 된 거 같아서 속상한 적이 많았다.
지금까지 겪어온 여러 관계에서 처음은 좋았지만 끝이 안 좋은 경우가 여럿 있었다. 그때도 처음에 그 사람이 나에게 선의를 베푼 것을 마음속에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더라면 그가 어떤 마음에 안 드는 행위를 하더라도 겪하게 같이 한판 붙을게 아니라 그의 입장을 더 이해하고 양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조직에서도 누군가에게 한번 이상 선의를 베풀게 되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로부터 받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베푼 것은 잊어버리더라도 누군가로부터 선의를 받게 되면 고마워하는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간직한다면 추후 일어날 자신의 이익 추구하는 면에서 조금 양보를 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우연히 발견한 5년 전 기억을 추적해 가다 그녀로부터 그때 도움을 받은 기억을 찾아냈다그 당시 그녀에게 고마워하며 좋아했던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나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부족해진다 싶으니 분노하고 미워했던 나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어떻게 기회가 돼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좀 더 오픈된 마인드로 그녀를 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