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사무소는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다. 군청처럼 입구에서 지키는 청원경찰이 없기 때문에 심지어 잡상인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들어올 수 있고 때론 악의를 품고 찾아오는 악성민원이 있다면 무방비 상태로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불안할 때가 있다.
면사무소와 비교해 군청의 장점은 입구에서 잡상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심지어 악성민원이 사무실에 들어와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공포심 유발할 때 청경이 그걸 막아주니 안심하고 일할수 있지만 면사무소는 와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민원, 흉기를 가지고 들어와도 막아줄 사람 없어서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마디로 안전장치가 없다.
구두닦이 아저씨부터, 혁대 파는 아저씨, 양복 재단사 아저씨, 도시락 제공한다며 직원들을 점심때 소집해 건강식품을 파는 것까지 아주 다양하다. 가장 공포스러운 건 파인애플을 시식해보라며 과도에 파인애플을 꽂고 책상에 앉아 있는 직원들에게 드셔 보시라고 쓱하고 내미는 것이다. 무서워서 어쩔수없이 구입하는 사람도 있다.
또 정체불명의 스님도 나타나서 출입문 입구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돈을 줄 때까지 안 가고 서 있는다. 누군가 나서서 만원 이하로 한 오천원만 줘도 스님은 두말 않고 사라지지만 아무도 응대하지 않을 땐 줄 때까지 목탁을 두드리고 있고 또 강제로 아무도 끌어낼 만한 직원도 없기에 누군가 나서서 돈을 줘야 한다. 문제는 한 번만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짜 스님인지 스님 복장을 한 사기꾼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파인애플 파는 사람이나 스님에 대해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게 비싸 봤자 만원인데 그냥 그럴 경우 사주면 될 걸 왜 자리를 애써 피했나 하는 후회도 든다. 그 사람들도 먹고살기 위해 전국을 그렇게 돌아다닐 텐데 말이다. 그땐 그렇게 잡상인들이 사무실 들락거리는 자체가 너무 불편했고 짜증이 났었다. 복직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벼운 것이라면 기꺼이 구입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내가 사든 안 사든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한 꾸준히 잡상인들은 찾아올 것이다.
십여 년 전엔 도시락을 제공해준다는 건강식품 판매 업체가 많았다. 그땐 점심 제공한다는 것에 호기심느껴 직원들이 거부감 없이 점심시간에 회의실에 모였다. 일회용 도시락을 먹으면서 그들이 선전하는 약품에 대해 듣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것은 그 약이 혈관의 지방을 제거해주는 약인데 스티로폼에 그 내용물을 떨어뜨려 스티로폼이 녹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들 말로는 스티로폼 녹듯이 그 약을 복용하면 혈관 속 지방이 녹는다는 것이다. 그걸 보고 직원 한 명이 그 약을 구매했다. 한 명이라도 구매했기에 공짜점심을 먹고 마음이 조금 편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스티로폼은 지방이 아닌데 그걸 녹일 정도면 내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렇게 잡상인에 대해 생각해보면 가장 잊을 수 없는 황당한 사건이 있다. 한 오 년 전 일이다. 직원들이 자기에게 인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직원이 있었다. 그가 내세울 것이라곤 나이가 우리들보다 많다는 것인데 출근하면서 자신에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안 하는 직원을 기가 막히게 구분해 자신의 메모리에 저장해두다 그 직원을 사무실 밖으로 불러내 질타를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그의 사고에 인사하는 것을 강력하게 못 박았는지 그게 마치 그의 신념이자 인생의 전부 같기도 했다. 인사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서로 해야 하는 것인데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고 자신이 출근할 때 인사를 꼭 받아야만 하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직원들이 인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촉각을 세우고 있으니 매일 출근하면서 그와 눈을 마쳐야 하고 매일 인사를 하는 것이 스트레스 였다.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그가 출근을 하면 그의 책상에 가서 인사를 하지 않고 바로 자리에 앉았다가는 그의 일그러진 표정과 곧 닥쳐올 꼰대의 뒷끝을 감수해야 한다. 그자에게 인사를 마쳐야 아침을 편하게 시작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보복을 당하기에 하루하루가 '인사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누군가 자기에게 인사를 안 해서 기분이 나쁘면 그의 얼굴색은 흙빛으로 변하고 고통이 그의 몸 전체에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터질것이 터졌다. 나에 대해 평소 쌓아둔 그의 불만으로 인해 한바탕 전쟁을 치뤘다. 냉전이 며칠간 지속되었고 그는 호시탐탐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어느 날 약을 팔기 위한 잡상인에게 무슨 청탁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다음날 아침에 원탁에 직원들을 모이라는 것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얼마 되지 않는 바쁜 시간대에 직원들을 원탁에서 건강식품 판매업자의 홍보를 듣고 있어야 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 것은 자기 선에서 커트를 쳐야지 비업무적인 것들로 바쁜 아침 시간대에 직원들의 시간을 뺐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속으로 갈까 말까 망설이다 옆자리 팀장도 전화받느라 안 갔고 나 역시도 전화가 걸려와 가지 않았다. 결국 자기가 오라고 했는데 탁자로 오지 않았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나에게만 개 난리를 쳤다. 그 남자 팀장한테는 입도 벙긋 안 하면서 말이다.
그 후 몇 달간 그와의 불화는 계속되었고 그 당시 여러 가지 안 좋은 사건들이 계획한 거 마냥 지속적으로 일어났고 내가 그것에 대해 이의를 충분히 제기할만한 상황이었는데 문제를 만들기 싫어 조용히 참고 지났갔던 것에 대해 지금 살짝 후회한다. 문제가 커지면 나만 욕할 거야 하는 두려움이 컸었다. 결국 그 짓을 저지르는 자는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고 결국 그게 합당한 것인 줄 알고 직원들에게 터무니없는 갑질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것이다. 그 사건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것이고 지금의 나라면 국민신문고에 제보라도 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일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이제 50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점이 되니 이렇게 산다한들 어떠하리 맘 편하게 근무하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이 우세적이다가 과거 나쁜 기억에 사로 잡히면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그래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나쁘지만도 않은 게 세상사에 너무 날을 세우지 않게 되고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포기할 것은 적당하게 포기하고 가끔 현타도 오면서 삶을 오로지 체념하듯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때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별로 나이로 텃세로 어떻게든 상대를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제압해보려는 사람 앞에서는 순순히 상대의 계략에 응하고 싶지 않고 응징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