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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Sep 14. 2022

명절 일기

해마다 명절 연휴가 돌아올 때쯤 사무실은 약간의 긴장감이 몰려든다. 연휴 동안 하루 한 명은 사무실에 나와 비상근무를 서야 하고 걸려오는 민원전화를 받고 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연휴기간엔 근처 식당도 영업을 안 하기에 점심해결은 오로지 근무자의 몫이다.


과거에는 어떻게 비상근무자를 지정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최근 추세는 공정하게 뽑기를 하는 게 면사무소 분위기다. 서무가 '오후 몇 시부터 뽑기 하겠습니다'라고 공표를 하면 조금씩 압박감이 느껴진다. 사무실 가운데 있는 원탁에서 접힌 종이 한 장씩 고르기 전에 '제발'하며 기도를 하는 직원도 있지만 주최 측에서 종이에 미리 표시를 해두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도 해본다. 다행히 난 이번에 재택근무가 걸려서 빠졌다.


결과는 이상하게도 사무실에 달랑 네 명 있는 남직원들이 걸리고 여직원들은 한 명도 안 걸린 것이다. 여직원들은 추석명절에 집안일 열심히 하라는 신의 뜻인가. 결과가 나오자 사무실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지르는 여직원도 있었다. 모두들 이번 뽑기 결과가 참 기이하다고 말했다.


명절 때 귀성이 아닌 귀경하기에 밀린 도로에서 노심초사할 이유는 없다. 서울로 올라가면서 반대편 차선의 숨 막히는 그 차량행렬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만약 저쪽 편에 우리가 있었다면 참을 수 없을 거 같고 저렇게 붐비는 기간에 내려 올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그 여파를 몰아서 휴게소에서 찹쌀 꽈배기도 먹고 로봇이 제조해주는 커피도 마시느라 곧 다가올 서울에서 맞이할 것들은 안중에 없었다. 찹쌀 꽈배기 한 개만 먹고 싶은데 두 개부터 팔고 있어서 그 앞에서 몇 분간 고뇌를 했다. 과연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2,500원으로 그렇게 고뇌를 하다니.


늘 그렇듯 휴게소 커피맛은 정말 별로다. 이곳에서 맛 좋은 커피를 찾는다는 건 말도 안 되지만 3시간 이상의 여정에서 커피는 빠질 수 없다. 수십 년 전에 휴게소에서 먹는 커피는 이맛 저 맛 따질 필요 없이 내겐 너무도 훌륭한 커피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입맛과 취향은 조금씩 높아졌다.


맘 편히 올라온 서울엔 시어머니가 준비해둔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누이의 시댁은 몇 년 전부터 차례상을 과거처럼 차리지 않고 간소하게 하는 편이라 시누가 시간이 남기에 나이 드신 친정어머니, 나에게는 시어머니를 도와주러 온 것이다. 마음씨 좋은 시누였기 망정이지 고약한 시누이를 만났으면 눈치를 제대로 받고 살았을 터였다. 시누이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명태전과 산적을 부치고 고사리와 도라지를 무쳤다. 그런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뭐 도울 거 없냐고 물어봐도 딱히 내게 시킬 것이 없는지 밤을 까라고 준 것이다. 깐 밤은 다 팔렸다고 생밤을 샀는데 칼로 껍질부터 까야하는 수고를 이렇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순간 딸과 남편이 밤을 까고 있었다. 그 깐 밤을 2차로 다시 이쁘게 다듬어야 하는데 그건 내가 맡았다. 하지만 그 결과물을 시어머니는 만족하지 않고 직접 칼을 들고 조각하듯 다시 밤을 깎는다. 깎고 또 깎고 밤의 양은 조금씩 줄어들어 아주 작아졌다.


다들 분주한데 가만히 있는것도 힘든 일이다.

 ' 제가 뭐 할거 없어요?'라는 나의 물음에 시어머니가 물에 담가 둔 토란을 준다. 시어머니 본인은 옻 오르듯 토란 옮는다고 나에게 까보라고 하신다. 난 토란을 까 본 적이 없고 옻닭도 잘 먹기에 뭐가 오른다는 건 생각해 본적 없기에 용기있게 맨 손으로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나도 토란 알레르기가 생겼는지 손등이 가렵고 긁어서 피부가 벌겋게 올라왔다. 괜히 한다고 했나. 딸이 아니라 그런지 시어머니는 별로 걱정은 안 하는 거 같다. 오히려 중간에 내가 토란을 버렸다고 의심한 듯 물어보는 것이다. 토란도 밤처럼 깨끗이 깎다 보니 작아져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음식도 자주 버린다고 생각하는 내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아닌가 싶다. 억울하지만 그런 이미지로 사회에서도 오해받는 경우가 있어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내 고향에서는 저녁에 차례를 지내기에 그날 저녁에 바짝 고생하고 다음날 성묘만 다녀오면 끝난다. 어린 시절 추석을 그런 루틴으로 보내다가 결혼해 서울 문화를 따르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서 상 차리는 게 아침잠이 많은 사람에게는 엄청난 고역이었다. 남쪽 섬지방이 그렇게 밤에 차례를 지내는 게 유배자들이 몰래 숨어서 차례를 지내느라 그런 풍속이 생겼다는 말도 있다.


언제나 그러듯 촌에 살다 한 번씩 서울 가면 숨통이 트인다. 시골서 돈 모아 서울 가서 탕진하는 재미라고나 살까. 게다가 시댁 근처에 스타벅스가 생긴 것이다. 마침 생일 쿠폰이 도착해서 최근 출시된 블랙 글레이즈드인가 하는 커피를 주문했는데 완전 내 입맛이다. 집에서 나오면서 책이라도 한 권 들고 왔으면 커피도 마시고 책도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매장 안에는 언제 이 근처에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살았나 싶을 정도로 어디에서 몰려왔는지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노트북과 함께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매장은 환경보호에 대한 게 철저해서 어기면 과태료 문다고 매장 안에서 먹으면 일회용 컵이 안된다고 해서 유리컵에 음료를 담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크림과 커피를 빨대로 휘휘 젓다가 손이 서투른 탓인지 컵 주변으로 쟁반 위로 커피가 다 튀었다. 아까운 내 커피 하면서 듬성듬성 닦다가 마시며 핸드폰을 보고 있자니 노곤함이 밀려든다. 어느새 난 스타벅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마치 전철 안에서 졸듯 스타워즈 타고 먼 우주를 여행하는 것 같다. 졸면서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봤을 거라는 느낌에 흠찟 놀라기도 했다. 급기야 난 커피잔이 놓인 쟁반을 옆으로 치우고 팔뚝에 머리를 댄 채 테이블에 엎어져 잠을 자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고도 이렇게 졸리다니 그리고 그렇게 자면서도 그런 내 모습이 참으로 기이했다. '뭐 어때 서울이고 아무도 날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내가 여기서 존다고 해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하는 생각을 하다가 추석명절에 차례음식을 열심히 만들고 전을 엄청나게 부치며 고된 며느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시선으로 볼 것 같기도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런 자세로 자는 것도 너무 불편했다. 과거 같으면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아이들을 이끌고 코엑스며 롯데월드며 쏘다 다녔을 텐데 이젠 애들도 그런 나이도 지나고 매년 추석 때마다 갔던 코엑스며 롯데월드도 질릴 판이었다. 내려가야 하는데 지금 내려가면 귀향하는 차량과 섞여 더 혼잡스럽고 피곤해서 밤 9시쯤 정체가 풀릴 때쯤 내려가겠다는 남편의 계획 때문에 차례를 지내고도 특별한 일없이 스벅과 시댁을 왔다 갔다 하다 지루함이 물려 들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버스를 타고 가까운 롯데월드 몰이라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상 나오니 좀 더 빨리 나올걸 하는 후회를 했다.


그곳은 열 번을 가도 매장 위치나 차 타는 곳을 제대로 파악 못할 것 같다. 집을 벗어나 롯데월드 몰에 도착하니 이것이 바로 서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애들 어릴 때 맛있다고 느꼈던 샌드위치 가게가 생각났는데 분명 지하일 텐데 여러 번 왔다 갔다 해도 그 가게를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마카롱 가게 점원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물었다. 저녁 어둠이 밀려오자 손님들 수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고 마침 마카롱 가게엔 손님이 없었다. 점원은 '리나스 가게 말씀하신가요?' 하며 '이쪽으로 쭉 가서 오른쪽에 있어요 ' 하며 이상한 웃음을 짓는데 그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돌아선 내 뒤통수에서도 그 점원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름 추측하기로는 동종 업종에 찾아와서 다른 가게를 찾아서 그런가 했다. 그 점원이 알려준 데로 갔지만 찾을 수 없어서 급기야 그곳에 전화를 했더니 옆에 큰 유리문이 있다고 한다. 반대편이었다. 알고 보니 지나온 곳이었다. 몇 개 남지 않은 샌드위치와 주스를 집어 들고 과거의 맛을 되새기며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건너편 테이블 젊은 커플 중 남자가 날 보고 있는 느낌이다. 굶주린 자처럼 너무 우걱우걱 먹었나 생각했다. 처음 그 가게에서 샌드위치 먹었을 때 맛있고 가격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때에 비해 가격이 많이 올랐고 비주얼도 그때만큼 못한 게 내 눈이 높아진 건가.


'엄마! 서울이라는 이름이 참 이쁘지 않아?' 하는 큰딸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이제 보니 그러네..' 하면서 되새겼다. '서울이라...'

90년대 초 서울에 놀러 왔을 때 버스에서 바라본 반짝거리는 한강이 생각났다. 난 그때 워크맨으로 조지 윈스턴의 연주음악을 듣고 있었고 변진섭과 윤상 노래에도 푹 빠져있었다. 서울에 대한 나의 기억은 20대 중반 언저리에 응축된 채 뭉쳐있다. 또 레베카에 나오는 순진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나'가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순간 이동했을까. 이십 대의 나에서 삼십 년을 훌쩍 뛰어넘어 오십 대의 내가 된 것이다. 결코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은 나이다.

어쨌거나 평생 꿈꾸어 오던 이상과 다르게 현실은 이렇게 시골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노인이 될 순서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미 정해진 운명의 틀을 거스를 순 없지만 조그만 틀은 조금씩 다르게 배치할 수 있지 않을까. 더 늙기 전에 감성을 잃기 전에 서울로 문화 원정을 자주 와야겠다. 미술관 근처에 숙박 잡아 맘껏 관람하고 맛있는 디저트 먹고 공연 관람하는 상상만 해도 조금 설렌다.


역시 남편의 예상대로 밤 9시가 넘으니 귀향 차량 정체가 풀려 막힌 구간 없이 우린 순조롭게 세 시간 조금 넘은 시간 걸려 집에 도착했다. 다만 너무 늦은 탓에 고속도로 휴게소 찹쌀 꽈배기 파는 가게는 문이 닫혀있다. 올라가면서 못 먹은 꽈배기 먹으려고 계획했건만 너무 아쉬웠다. 아직도 그 통 실하고 노르스름한 꽈배기가 눈에 아른거린다. 언젠가는 먹고 말 거다.  



롯데월드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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