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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Oct 03. 2022

단지 시골 면서기입니다만

무난하게 정년까지 가자

오늘 우연히 우리 지역 기부 관련 작년 기사 사진을 보고 화딱지가 밀려왔다. 기부자 점포 주인과 환하게 웃고 있는 관계 공무원 사진이었다. 일반 가게에서 기부 동참하게 하는 일을 2019년에 내가 업무 맡으면서 시작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45개 정도였는데 이제 몇백 개 상가가 그 기부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골에서는 인맥이 중요한 건데 인맥이 부족하다 보니 동참 유도하는 과정에서 애로도 많았다. 팀 여직원과 달랑 둘이 상가를 돌면서 기부 관련 설명하는데 어떤 곳은 두말 않고 기부신청서를 써주는가 하면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내는 상가주인도 있었다. 그 후 손님으로 그 점포에 간 적 있었는데 내가 갔을 때 기부 안 하던 점포가 떡 하니 기부한다고 간판이 붙어 있었고 나를 아는 눈치다. 역시 시골은 인맥이라는 생각 하며 껄끄런 눈빛을 외면한 채 그곳을 빠져나왔다.


오늘 우연히 그걸로 기사 내서 최 윗선까지 나서서 찍은 지난 기사를 보자 내가 먼저 시작했던걸 가져다 쓴 게 아닌가 하는 왠지 모를 복잡한 생각이 드는 건 나의 착각이라고 믿고싶다.


그 후 인사발령으로 노인업무 보게 되었고 몇 년 전부터 시작이 된 아주 골치 아픈 경로당 분쟁 건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윗 라인에 보고조차 되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맡게 되면서부터 그 사건의 전말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졌고 변호사 자문을 구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 6개월 후 극적으로 해결이 되었지만 내가 잘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윗선에서는 오해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마련이고 인정은 못 받더라도 오해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의 촉인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오해를 받거나 견제의 대상이 되었을 수도.


사실 ' 잘해봤자 기본 '이라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내 감정은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했다. 얼른 시간이 가 정년퇴직의 시간이 와서 황소의 멍에처럼 내 목에 걸어져 있는 이 일을 벗어나길 바랬다. 아무튼 그 사진을 보자 불쾌감이 확 일어난 건 사실이다. 어찌 되었건 인정받지는 못하더라도 모함받지 않고 암투에 휘말리지 않고 정년까지 평탄하게 갔으면 한다. 목표지점까지 가는 길목마다 암초를 만나고 악당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다 물리치고 가야 한다.




면서기로 30년 가까이 근무해보면서 남들 말하는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고 모든 유형의 인물들을 접해 오면서 나름 노하우가 생겼을 법하지만 갈수록 첩첩산중이요, 듣보잡 사건과 인물들을 마주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촌구석에서도 딱 음모에 휘말리기 쉽상이다. 그래도 거짓이 진실을 가릴 수 없음을 종국에는 알게 된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도 있으니 그냥 지나가기만 바라며 기다리자.


또 시대가 변하면서 나름 젊은 세대들과의 관계가 새로운 생존 이슈로 부각된지라 더더욱 어렵다. 젊은 세대들에게도 나 역시 꼰대일 텐데 역지사지해 보면 나 역시 나보다 나이 든 꼰대 하고 엮이길 싫어하는데 그들 역시 그러할 것이다.


면서기로서의 생활에 어느 정도 만족하지만 그동안 코로나로 비대면 상황에서는 각종 행사나 축제가 없어서 나름 편했지만 이제 다시 고생 시작이다. 조그만 시골 군에서도 무슨 축제나 행사가 많은지 공무원 동원 없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퇴직 전까지 각종 행사나 축제 때 주말이고 영혼 없이 동원될 것은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또 행사장에서는 꼭 만나기 껄끄러운 직원들을 자주 마주치는 것도 상당히 불편한 진실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뺄 것은 빼고 새로 추가할 것 해서 변화해 나가야 하는데 매년 하는 레퍼토리가 시대적 상황하고 안 맞을 때가 많다. 이렇게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면서기 하려면 운동화는 필수, 체력과 민원인들이나 이장님들과 자연스럽게 농담도 할 수 있는 넉살이 필요하다. 또 이제 곧 겨울이 되면 또 주말 산불 비상근무 및 폭설대비 비상근무를 걱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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