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ce Nov 30. 2022

존엄하지 못한 어느 시골 면장 이야기 1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위하여

타인의 존엄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엄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더 나아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특정한 지위를 얻었으니까, 우월감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스스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고자 했던 말과 행동이 오히려 스스로의 가치를 부정하고 있음을 시인하는 꼴이었다는 것. 자기 가치와 인정, 권력을 확인한답시고 자신도 모르게 타인을 자신의 의도와 목적, 기대와 평가, 전략과 규칙의 희생양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한다 해도 그리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이들의 행동은 존엄하지 않다. 자신의 존엄성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존엄하게 산다는 것> 게랄트 휘터 ​

올해로 공무원 생활한 지 30년째이다. 내일이면 호봉이 더해져 30호봉이 된다. 하지만 난 여전히 무언가 두렵다. 살아온 생의 절반 이상을 시골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이젠 모든 것을 초월했고 아무도 날 건드리지 못하는 단단한 틀을 갖추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날 무너뜨리려는 적과의 전쟁을 해야 한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더욱 강하게 한다는 말을 가슴에 품고 있다.


매주 월요일이면 팀장회의가 열린다. 뻔한 내용의 회의인데다 구성원의 말을 전혀 경청하지 않고 일방적인 지시만 내린다. 왜 회의를 매주 꼬박꼬박 하는 건지 이해할수 없다. 이런 회의가 서기 2023년에 어느 시골 구닥다리 면장실에서 여전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외침이 어디선가 들리고 있다. 강압에 의한 분위기는 때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눈치를 보느라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때론 제발 아무 일이 없이 하루가 지나가길 모두는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번 타깃은 제발 내가 아니길 하면서.


어느 날 박 노인회장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경로당 자체적으로 새로운 김 노인회장이 선출되었고 정식으로 복지팀에 변경신청서를 접수했다. 그는 임시적이긴 하지만 노인회장이 되었다. 그 후 면 자체 자랑스러운 인물로 그가 선정되어 플래카드가 한 달간 게시되었다. 그 후 얼마 후 정식 노인회장으로 최모 노인이 선출되었다. 그 노인은 그 플래카드를 지적하며 내가 진짜 노인회장인데 김 노인이 왜 노인회장이라고 써져있냐고 면장에게 따졌다. 팀장회의 때 면장은 버럭 하며 노인회장도 아닌데 왜 노인회장이라고 했냐고 하면서 해명 따윈 들으려 하지 않았다. 말을 할 기회를 주지 않고 화부터 내고 말하려고 하면 못하게 막는것이다. 그에게 직원들은 그냥 그렇게 혼나주면 되는 것인지 알수 없었다.


그 후 내가 연가를 낸 어느 날 밤 군 팀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농협 주관으로 농가주부모임에서 김장을 하는데 Vip가 방문한다는 일정표였다. 나는 그 메시지를 동향의 총괄인 부면장에게 밤에 전달했다. 답장 오기로는 본인도 받았다고 한다. 면 총괄 동향이니 직원들 같이 가서 도와주면 된다.  

아침에 부면장이 말했다.

" 농가주부 김장김치 행사 면장에게 알려주지"라고 나에게 폭탄을 넘긴다. 부면장의 역할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면장님 알고 있지 않을까요?" 했다. 서무를 비롯해서 그 행사에 사모님도 오실 거라는 걸 알고 있을 거 같았다. 그래도 혹시 해서 면장에게 그 메시지를 전달했더니 바로 인터폰이 왔다.

"김장김치 어디서 해?"

"노노 농협에서요... 일단 자세한 건 알아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농가주부모임은 농협이라고 말하는 순간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농협이면 우리는 안 가도 돼??" 하면서 인터폰을 끊고 씩씩거리며 내려와서 복지팀만 전체 가서 농협 김장하는데 도와주라고 지시를 했다. 그리고 본인도 가면서 거품을 물며 퍼붓는다. " 다른면 면장 이야기 안들어봤어? 면장 때문에 자살한다는 직원도 있어" 아니 그게 정상적인 건가? 이런말을 하는 그도 그 면장과 다를바 뭐 있을까 생각했다.


마치 강제수용소에 포로로 잡혀온 듯 팀원들과 김치 담그는 그 옆에서 김치 포장 박스를 테이프로 붙이고 있었는데 상당히 굴욕적이었다. 이렇게 굴욕을 주면서 그는 인부들이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감독하러 온 것처럼 뒷짐 지고 우리 일하는걸 내내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내가 부면장하고 옆에서 이야기하는 사이 팀원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 팀장 어디갔냐?" 일안하고 어디서 농땡이 까고 있냐는 것이다. 바로 사정거리 안에서 부면장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이 눈에 보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그날 김장김치 건은 완전히 나의 잘못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면장은 이 일에 대해 질책을 하려고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다음날 주민 자녀 결혼식 피로연에 전 직원이 초대되어 점심 먹는 자리에서 면장은 부면장에 게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너무 풀어주니 직원들이 문제다, 부면장이 나서서 말 좀 하라"는 내용이다. 옆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직원 한 명은 두통을 호소하며 우리가 이렇게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살아야 하냐고 했다. 직원에 대한 존중, 배려는 없고 오로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계의 부속품으로밖에 안 보고 있다고 힘들다고 했다.


다음날의 일이다. 신이 나를 도우셨나 했다. 부면장을 비롯해서 직원 5명이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거의 면직원 절반이다. 팀장회의가 생략되면서 그렇게 김장김치 건에 대한 질책을 들어야 할 상황이 물 건너가게 된 것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인간은 본능으로 감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캐치할 수 있다. 그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실질적으로 우리 소관이 아닌 일을 가지고 폭언을 들을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면장 머릿속에서 그 사건이 지워지길 바랬고 지워졌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마치 살의를 품은 듯 구석진 곳에서 어둠 속에서 뱀처럼 번뜩이는 그의 눈을 본 것 같았다. 그는 차곡차곡 그걸 쟁기고 기회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를 향해 화를 분출해야만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틀림없다.


그날 아침 주차된 차 주변에서 나타난 면장의 얼굴은 뭐가 불만인가라고 생각할 만큼 심하게 구겨져 있었는데 눈빛이 좋지 않았다. 곧 누군가가 그의 손에 의해 희생될 것 만 같았다. 얼마 후 팀장회의를 한다는 것이다. 계단을 서둘러 올라가느라 속으로 숨이 찼다. 하지만 억지로 숨을 쉬면 내가 그 자리를 상당히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으로 오인할까 봐 어깨를 펴고 면장실 소파에 아주 당당하고 의기양양한 자세로 앉았다. 그는 군수 지시사항을 읊었다.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하나 남아있었다. '친절'이야기를 하면서 '복지팀 특히'라고 하는 것이다. "복지팀이요?"라고 반문하니 바로 '복지팀장'바로 나의 문제라는 것이다. 면장이 얼마 전에 청와대까지 말하려는 민원 두건을 겨우 달래 놨다고 잘하라는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나의 기억에도 없는 청와대까지 갈 민원이면 큰소리가 나고 그래야 하는데 전혀 기억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민원은 없다고 하니 " 일이 그렇게 없냐"는 식으로 말한다. 참다못해 "이런 식이면 저 일 못합니다. 저번 노인회 장건도 그렇고..."라고 했다. 그랬더니 "얼마나 일을 잘한다고 일 못한다고 하냐"라고 동네 사람들끼리 하는 말을 상내 뱉는다. 그게 직원들을 잘 이끌어 가야 할 책임자인 면장의 입에서 나올 소리 인가하고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추가로 하는 말이 자기가 그 말을 한 사람을 왜 나에게 알려주냐는 것이다. 이유는 "싸움시킬 일 있냐"는 것이다. 아니 직원을 쌈닭으로 보는 것인가. 내가 안다고 민원하고 싸울 일이 뭐가 있을까. 직원을 질책할 것이면 가타부타 어떤 일인지 어떤 민원인지 앞뒤 전후를 말하고 질책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나 존엄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보통의 면장이라면 면 전체 주민들의 다양한 민원을 직접 듣기도 하고 청와대까지 간다는 민원 달래는 것도 면장이 할 일 아닌가. 그리고 청와대까지 간다는 민원이 발생했을 때는 담당하는 직원을 불러 무슨 일이냐고 파악해보고 그 후 민원을 이해시키거나 직원이 잘못한 거 있으면 수정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모색하는 게 정상 아닌가. 무조건 민원인 말만 일방적으로 듣고 복지팀장이 잘못했다고 완벽히 판단해버리고 그 어떤 해명도 듣지 않고 공개석상에서 질책하고 깔아뭉개는 말하는 게 상식적일까. 애석하게도 이 부분은 갑질 매뉴얼에 나와 있지도 않고 증거자료가 없어서 그를 처벌하기 어렵다.


나는 그렇게 내가 만난 적도 기억에도 없는 사건으로 질책을 받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정보를 수집해보니 군에서도 그렇게 유독 여자 팀장들에게 호통치고 이중성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있을법하지 않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이곳으로 좌천되었는데 처음 면장이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면장 티 안 내고,,,,," 면장이라고 권위 세우며 일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는데 순진하게도 그땐 그걸 믿었다.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10여년전 그가 군 팀장 이었을때 호통치던 모습을 난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진짜 사람은 죽기전까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직원들은 무조건 자기 아래이고 자기가 기분 나쁘면 이유도 들어보지 않고 맘껏 호통쳐도 되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더욱 경악스러운 건 젠틀맨이 아니면서 젠틀맨 인척 하는 이중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작가로 불리기를 원하며 밤에 잠이 안와 밤새 책을 읽은적도 있다고 한다. 지역문인협회에도 가입된 시인이라고 한다.


사실 시골 공무원 조직이라는 게 때론 한통속인지라 되려 이걸 드러내는 순간 도와줄 사람도 없고 드러내는 자에 대한 가십거리를 만들어 내게 된다. 그래서 피해자는 계속해서 양산되고 가해자의 몸집은 계속 커지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악질 행위를 지속적으로 해대고 뒤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김치 건에 대해서도 덧붙여서 퍼붓는다. 나 몰라라 한다. 그래서 말했다. 군에서 받은 문자 전날 부면장에게 보냈다고 하니 흠찟한다, 순간 부면장은 안 받았다고 오리발이다. 보내니 잘 받았다고 하는 문자까지 내게 있는데 말이다. 조직이 약속이라도 한 듯 똘똘 뭉쳐 한 인간을 골로 보내기 위한 전략을 짜는 듯했다.


이런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이건 꿈이다라고. 그리고 나는 때는 지금이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더는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지 않는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고 그런 사람들이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져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사무실을 일찍 빠져나왔다.


(2편에서 계속됨)


그렇게 때문에 지금이어야 한다.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일어나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토록 존엄하지 않은 인류의 발전을 그들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멈출 수 있단 말인가. 오해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말로, 존엄한 행동으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킬 뿐 아니라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임지고 보여주어야 한다. 가만히 앉아 존엄하지 않은 타인의 행동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격분해봐야 소용도 없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고, 더 이상 이렇게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이 가진 가능성 안에서 인간의 존엄함이 더 이상 짓밟히지도, 다치지도, 억눌리지도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 필요한 변화다.

< 존엄하게 산다는 것> 게랄트 휘터


매거진의 이전글 존엄하지 못한 어느 시골 면장이야기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