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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Feb 26. 2023

그날 난 진상손님이 되었나

공짜티켓으로 인한 소동

얼마 전 면사무소에 웬 중년여성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그 여성은 누군가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눈치였다. 알고 보니 산골에 위치한 카페의 주인이었다. 그곳은 풀빌라가 있고 경치가 좋아 나름 시골근방에도 알려져 은근 인기가 있는 곳이었다.


카페주인은 '무료영화권'이라고 써진 티켓 30여 장을 내밀었다.

"이거 기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직원들 필요하시면 사용하세요".

손님들에게 주고 남은 이벤트 쿠폰 같은 것이었다. 유효기간이 얼마 안 남았지만 필요한 직원들은 한두 장씩 가져갔다.  


바코드 찍고 등록하는 과정을 거치니 완전한 무료영화권이 아닌 할인권이었다. 뭐든지 조기에 소진해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성격은 이 티켓도 이번주에 바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랴부랴 내가 보지 않았던 영화 '바빌론'을 갓 성인이 된 딸과 함께 보기 위해 예약을 했다.


딸도 최근에 딱히 할 일이 없는지라 순순히 따라나섰다. 영화관으로 운전해 가면서 서로 그동안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참 분위기가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지갑도 사고 맛있는 것도 먹자고 하며 영화관으로 향했다. 드디어 영화관 입구에서 티켓 검사를 하는 곳으로 다가갔다.  


예전과는 다르게 영화관도 상당히 한산했다. 표를 내미는 순간 나이 든 매표하는 아주머니가 딸을 보며 말했다.   "같이 오신 분 친구인가요?" 딸이 어려 보여서 친구가 아닌 것 같아서 물어본 것이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친구라고 하려다가

 "아뇨 딸인데요...".

" 이건 청불영화라 신분증이 있야 합니다."

아뿔싸 급하게 예매하느라 청불인지 아닌지에 대해 확인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당혹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딸은 신분증을 집에 놓고 온 상태였다. 집에 누구 있으면 신분증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그때 집에 남편에게 전화해서 신분증 찍어 보내라고 하면 일이 거기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귀찮기도 했다. 나의 태도는 아주머니들에게 그냥 보내달라는 분위기였다. 뭐 얼마나 청불이라고 이런 호들갑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난감해지니 관리자를 전화로 불렀고 관리자가 온후 일이 더 커졌다.

"청불영화에 청소년 들여보냈다가 영업정지까지 당할 수 있습니다. 또 졸업식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고등학교 졸업반이라고 해도 보지 못합니다. "


딸은 그냥 보지 말자고 옆에서 말했다. 나는 내 돈 만원이나 들였는데 어떻게 안보냐고 우겼다. 딸의 표정이 이글어졌다. 관리자는 비슷한 시간대 다른 영화표로 바꿔준다고 해 다른 영화표로 바꾸긴 했지만 딸 눈에는 내가 진상민원으로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자기 의견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딸은 화가 단단히 났다.  

"언제는 주체적으로 살라면서, 나의 의견도 반영하지 않고 엄마 맘대로.. 그렇게..."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그냥 다른 영화로 바꿔준다는데 보고 가면 안돼? 뭐가 그리 까다롭니?" 하면서 언성이 높아졌다. 결국 그렇게 서로의 감정에 상처를 남기고 영화도 못 보고 쇼핑도 못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예매비 만원을 비롯해 오며가며 기름값에 톨게이트 비용까지 합하면 거의 이만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딸과의 트러블까지 더해 황금같은 주말의 반나절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어리석음은 후회를 낳을 뿐이다. 공짜를 탐하면서 했던 내 행동 속에서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속물스런 그 어떤 것이 느껴졌다. 결국 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살면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또 망각했던 것이다. 소소한 물건, 사소한 그 어떤 것들이 우리의 소중한 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종종 아무것도 아닌 가치도 없는 것이나 공짜 같은것데 대한 욕심으로 진짜 소중한 것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저지른다. 후회를 반복한다. 그 후 바빌론이 성인영화인데 수위가 어떻고 하는 걸 보았다. 정말 같이 안 보기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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