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게시판에 성과급 등급 조회하라는 화면이 떴다. 모두들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거 같았다. 후배는 오늘 뜰 거 같다는 소식을 메신저로 보내왔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예감은 항상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
작년 11월 말 근평이 있기 전 면장의 갑질언행으로 인해 한바탕 소란이 있은 후 평가가 있었던지라 그때도 살짝 찝찝함이 있긴 했었다. 그 사건으로 내가 병가를 냈을 때 면장은 나에게 세 차례 이상 전화를 했었고 카톡으로도 미안하다고 했지만 한두 번이 아니었고 이미 골이 깊게 파인 상태라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과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시 면장은 본색을 드러냈다.
어떤 민원이 면장에게 접수가 되면 그 전후관계를 직원을 통해 직접 들어봐야 하는데, 그 민원이 불만을 면장에게 말한 건 아니었다. 면사무소 앞 자기랑 친한 원불교 교무가 걱정스레 면장한테 한 이야기인데 면장이 그런 사람이라는 걸 모르고 한 것 같았다. 나한테 직접 전해줬더라면 하는 서운함도 있다.
면장은 원불교 교무한테 전해 들은 이야기로 나에게 불친절의 프레임을 씌우려 했던 것이었다.
매주 월요일 팀장회의를 하는데 올라갈 때마다 이상한 지적을 받고 마치 그 자리가 회의를 위한 게 아닌 무슨 인민재판이라도 하는 자리 같았다. 일주일간의 면장 비위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자리 같은 것이었다. 그전에 이곳에 체육관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부실공사로 판정이 나 사실상 면에 체육관이 부재한 상태였다. 면장은 지역 주민 및 팀장급을 상대로 1 계좌에 15만 원 되는 성금을 모금해 그것으로 체육관 부지를 사려고 했던 계획을 세웠다.
그건 연말정산도 되지 않은 순수한 이 지역에 대한 애착심의 증표라고 봐야 하는데 나의 생활본거지인 읍과 거리가 제일 먼 지역에 출퇴근하는 마당에 기부금 강요한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만 기부금을 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으로 면장의 심기가 불편했던 것일까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면장이 말한 민원건은 사실 나에게 전혀 기억에 없는 건이기에 참 기이한 일이었다. 보통 트러블이 있던 민원이면 기억에 났을 것이다. 잠깐 한마디만 문의하고 그냥 지나간 민원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나에게 그런 불만을 품었는지 알기 위해 그 민원인과 원불교 교무와 어렵사리 교당에서 만났다. 그 민원인 여성은 모친상을 당한 직후 상당히 감정이 예민해져 있던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원불교 교무는 말했다. 그 민원이 지목한 공무원은 나였는데 그 이유가 군에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응대하려면 면사무소가 왜 있냐고 그러는 것이다. 화내는 포인트가 보통 사람들과 다른가 했다.
나중에 면장은 내가 그 민원 만난 건을 교무에게 전해 듣고는 그런 사건이 없던 게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니 오히려 내가 자기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 O 팀장이 나에게 사과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내가 출근을 하고 자기 신상에 별 영향이 없음을 알자 면장은 그렇게 다시 돌변했다. 폭력적인 언어 사용이 '그게 잘못인지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또 면장은 줄곧 지침이나 규정 절차 등을 무시하고 일을 추진했고 직원들은 그것에 이의제기하면 일하는 걸 기피하다고 생각하고 면장에게 호되게 당하기 일쑤였다. 이번 등급 결과도 자기 주관대로 했음이 분명했을 거라는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성과상여금 평가결과를 조회한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화면에 B라는 글자가 보였다. 설마 했고 며칠 전 우연히 점심시간 때 갑자기 뚝 던진 민원팀장의 말이 떠올랐다.
“ 민원팀장은 항상 성과급 평가를 좋게 안 준다. 나 이번에 B 받으면 일 안 할래” 하는 것이다.
그 순간 민원팀장이 그걸 안 받으면 누가 받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작년에 대한 평가기에 민원팀장은 작년 하반기에 이곳에 발령받아 왔고 그때 무보직 6급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평가결과는 작년에 대한 평가인데 작년에는 그녀가 팀장이 아니었다. 이번 성과급 결과와 그녀의 며칠 전 발언이 오버랩되면서 그녀가 조금 의뭉스럽게 느껴졌다.
이런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평가를 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라면 일은 안 하고 평가자의 비위만 잘 맞추는 것도 생존방식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공격할 부분이 전혀 없고 경계를 할만한 구석이 없는 착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렇다면 그건 불가능한 천성이고 아니면 엄청나게 탁월할 능력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가로 일하던가 그것도 어려울 듯하다.
멘탈이 나간 상태에서 인사팀에 문의하니 내가 교육점수가 미달이라고 한다. 근소한 차이인데 교육점수로 밀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인들은 교육점수가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하니 그 말에도 솔깃했다. 마음은 요동치고 분노가 밀려들었다. 뭔가 알고 그녀가 그런 말을 했나.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사이 그 팀장은 벌써 그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참 난 바보같이 교육시간도 충족도 안 해놓고 뭘 하고 있었나 한심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교육시간을 항상 빵빵하게 채워놓는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니 더더욱 약이 오르기도 했다.
이의신청서를 낼지 갈등했다. 성과급 평가에 대한 이의신청은 낼까지 할 수 있는데 인사팀 직원은 이의신청서를 내면 위원회를 열어야 하고 그러면 다른 직원들 지급일도 늦어진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과장급들 사이에 이 건이 널리 알려지고 만약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면 덮어두었던 것들이 나오면서 나에게도 좋을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부서장 평가 점수를 더 못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더더욱 작년에 면장과의 트러블 건과 연결 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명하지 못한 결정을 할 때가 많다. 욱한 감정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후회한 경험은 많지만 경험을 통해 깨닫고 두 번 다시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도 진짜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에도 이의신청을 통해 얻을 게 없다 하더라도 확 저질러 버릴까 하다가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도 없다.
결국 긴긴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난 후 결정은 이번에 결과는 내 부족함의 결과이고 그냥 나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기로 했다. 내가 발버둥 치고 어떻게 하려고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내 이미지가 나빠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냥 내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다스릴 수밖에 없다. 상처받은 나를 더 위로해 주고 더 지켜보고 그런 스트레스로 날 괴롭히지 말아야겠다.
"그깟 성과급 평가결과가 뭣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