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언쟁을 하게 되거나 반격을 당할 때 멋지게 응수하여 상대를 케이오 시키는 상상을 늘 해보지만 현실에선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예기치 않는 상황에서 가해오는 공격에 멋지게 맞설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다. 직장생활 30년을 넘어가는 즈음에도 대응하는 게 쉽지 않은 걸 보면 타고나야 하는가 싶기도 하다. 베스트는 직장생활에서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는 것이지만 삶이란 예측불허인 데다가 작정하고 달려드는 사람 처치하기 참 어렵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당하고 살 순 없는 법. 복수심에 불타 반격을 준비하다 이판사판 심정으로 확 저지르고 나면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 순간을 느낄 수 있다. 반격할 수 있는 기회는 또다시 온다. 대기하고 있다가 시뮬레이션해보고 종이에 적어도 보며 그 절호의 순간에 훅 펀치를 가해야 한다. 더 이상 참는 것은 미덕이 아님을 수십 년의 공무원 생활을 통해 생생하게 겪은 후에야 터득했다.
패기와 무모한 용기 넘치는 젊은 시절의 수많은 언쟁의 결과는 항상 참담했다. 임기응변에 능한 것도 아니고 , 억울한 상황인데도 제대로 내 상황을 변론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나만 당한 거 같았다. 상황이 종료된 다음에야 결정적인 말이 떠오르며 이 말을 했어야 하는데 하며 후회하며 자신에게 화가 난적이 많았다. 싸우는 상황에선 대처 못하고 상황이 종료된 다음에야 아쉬워해야 하는지. 이젠 언쟁의 전체 스토리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 나이에는 더 이상 누군가와 언쟁을 하는 일이 직장에서 없을 줄 알았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날 건들지 않을 거 같았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사람은 같이 근무해보지 않는 타인과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게 될 때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거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도 안된다는 걸 머릿속으론 알고 있다. 동갑이고 겉으로 보기엔 공정하고 점잖을 것 같은 남자. 무심코 내뱉은 언어 속에서 그 또한 똑같은 꼰대 갑질 성향을 내 보였음에도 난 그 힌트를 그냥 무시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동안 근무하면서 겪은 갑질 상사 에피소드를 늘어놓고 그들과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에 대한 소설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상대는 그것에 대해 아주 재밌어하며 밥을 사 줄 테니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고도 했다. 순간 ‘뭐지? 이자의 정체는?‘ 한편으로 혹시 이자도 같은 부류 아닌가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려는 곧 현실로 드러났다. ‘나중에 나도 이렇게 평가하는 거 아닌가요?’ 하기도 했고 나에게 갑질을 했던 상사는 자기하고 아주 잘 지냈다고 염장을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떡하랴. 다 내가 예측하고 모든 일이 차후에 일어나든 말든가 하는 심정으로 막 뿜어댄 일이었기에. 그러고 보면 나 또한 대책 없이 그런 공격을 은연중에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자승자박이다.
지금은 웃지만 그땐 끔찍했던 갑질 피해를 늘어놓을 때 상대가 ‘ 나는 그 사람과 잘 지냈는데’하며 염장을 지를 때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였다. 나에게 무슨 불만이 많냐고 하며 시키면 시킨 대로 할 것이지 무슨 잔말이 많냐는 말을 농담 식으로 했었다. 최근 대형폐기물 쓰레기 민원이 많다고 하면 ‘민원이 생기기 전에 그 쓰레기를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는 걸 보며 마치 오래전 사라진 별정직 면장 마인드의 환생을 보는 듯했고 부하를 가스라이팅하는 못된 상사 느낌도 들었다. 그렇다면 그자의 저런 화법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건데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 그자도 웃자고 한 말이겠지, 이 말에 격노하여 응수한다면 나만 우스워지지 않을까 하여 그냥 묻어두자 한 적도 있었다.
나랑 동년배이지만 사용하는 언어 속에서 사람을 어떻게 통제하려고 하는 오래된 방식의 틀을 보게 되었고 자기가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 외의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느끼는 걸까. 웃자고 하는 농담 끝에 정색하며 ‘자기에 관해 어디서 들은 이야기보다는 현재 보이는 것만 이야기하라’는 난해한 말을 내뱉을 때도 있었다. 황당했지만 나이 들어 누군가와 언쟁하는 건 사무실 분위기에도 역효과가 나며 나 또한 불편한 마음이기에 자제하려고 하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니 사무실 주차장 끝 창고 앞에 웬 마대 십여 개가 있었다. 사무실 들어와서 물어보니 사회단체가 축제가 있는 구간 청소하며 쌓아둔 마대라고 부면장이 말한다. 순간 그 말을 들은 그 자는 ‘복지계장이 그것이 있는 것도 모르냐’고 목소리 내리 깔며 눈을 치켜뜨며 한마디 한다. 출근하며 사무실 바로 들어오니 모를 수도 있고, 축제기간 그 도로를 사회단체에서 청소하는 것은 알지만 그 부산물을 이곳에 쌓아둘지는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순간 속으로 왜 말을 저따위로 밖에 못 하나 하며 화가 올라왔지만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미화원에게 통화해 보니 지금 쓰레기 적환장이 포화상태니 그 남자가 관리하는 부서에서 운영하는 쓰레기장이 있으니 그곳으로 배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곳은 바닷가 쪽에서 나오는 쓰레기만을 모아두는 곳이긴 하지만 그쪽 부서에서 활동하며 나온 쓰레기 배출도 가능하다. 부면장에게 전화해서 그쪽 부서에서 그 쓰레기 처리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부면장이랑 같이 있던 그 남자가 처리할 것이라고 걱정마라고 부면장은 말했다. 줄곧 그쪽 부서에서 주도해서 청소한 부산물은 늘 바닷가 쓰레기장으로 옮겨가고 했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이미 그렇게 처리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어떤 포인트에서 오기가 생긴 건지, 아침에 그것도 모르냐고 할 때부터 조금 이상했다. 나중에 사무실 들어와서 " 복지계장님! 그건 육지에서 나온 쓰레기고 바다 쓰레기가 아니니 그건 알고 있으라"라고 했다. 육지쓰레기이지만 자기가 바다쓰레기 처리장으로 보내준다는 것이다. 아니 자기가 감독하고 일 시키고 그 부산물을 육지니 바다니 구분해 가면서 뭔 생색내듯 말하는 이 꼬락서니는 뭔가? 바다쓰레기 처리장에 육지쓰레기 들어가면 안 되라는 법도 있나. 순간 나도 흥분해서 중간에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옥신각신하다가 자기가 그렇게 청소한지도 몰랐냐는 것이다. 포인트는 청소가 아니고 그 부산물인데 말이다. 나중에 어찌 되었건 다음엔 못해준다는 말을 하길래 뭐 협조 서로해야 줘하며 마무리를 했는데 마치 내가 아쉬운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후 그 남자는 생전 점심타령은 안 하고 점심에 관심도 없는데 11시 40분이 되자 팀원들에게 ‘점심시간이 다가왔네’하다가 ‘오늘 인사위원회가 있을 것이다’라는 인사정보를 말하고 혼자 구시렁구시렁 막 말을 하는 것이다. 상대랑 싸우고 자신이 우위를 선점하고 있고 그 언쟁으로 자신의 심경에 아무런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는 굳센 심지를 보여주기 위함인지, 자신은 이렇게 인사정보통이다라는 걸 과시하고 싶어서인지 모르지만 평소와 다른 구차한 언어를 나불거리고 있었다. 감추면 감추었지 평소 인사관련 발언을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저번때도 갑자기 나를 밖으로 불러 오늘 인사가 있을거라는 모든 직원들이 다 아는 하급 정보를 나한테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분노를 억누르며 왠지 태클 걸려고 작정한 사람한테 말려들어 당했다는 더러운 기분이 들어 점심도 쓴 모래를 먹는 거 마냥 맛이 없어 늘 가던 단골식당을 바꿔야 하나 할 정도로 씁쓸한 점심을 먹었다. 이를 부득부득 갈고 언젠가 복수해 주리라 하고 있었다. Revenge!!! Revenge!!!
하루종일 쓸데없는 일로 밖으로 돈 그자는 오후 네시가 넘어서야 대단한 일을 한 개선장군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와서 이렇게 말했다.‘복지계장님, 그 쓰레기 낼 치우기로 했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팰 때는 언제고 얼러주는 우리나라의 폭력적인 남성행태가 떠올랐다. 그도 여느 인간들과 다름없는 꼰대 값질 자였을 뿐이었다. 나는 바로 반격을 시작했다.
‘아니 말을 해야 알지 그곳에 쓰레기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요? 복지계장이 그것도 모르냐고 말해서 기분이 나빴지만 참았어요. 미화원한테 전화하니 바다쓰레기로 처리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내가 부면장한테 전화해 보니 당신이 치운다고 하더만요. 그렇게 할 거면서 말을 왜 그런 식으로 하나요? 나랑 싸우자고 하는 말 아닌가요? ’
이렇게밖에 말이 생각이 안 나서 퍼붓었더니 눈을 좌우로 살피면서 그때 퇴직한 면장이 와있었는데 거기 눈치를 보더니 내 말에 아무런 말도 입도 벙긋 안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난 분이 풀리지 않아서 , 더 했으면 좋겠는데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그 순간 자기가 얼마나 고생을 했고 하는 말을 늘어놓길래 내가 그랬다. ‘누가 모른가요?’
결국 자기가 단체를 시켜서 일을 한 것도 청소의 일종인데 자기만 고생했다는 생각에 오기가 발동해서 그런 화법을 쓴 건데, 마치 부하직원한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말을 하고 나중에 그걸 해결해 줘서 감사함으로 되돌려 받으려는 가스라이팅 비슷한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진짜 그런 기술을 교묘히 쓴다는 건 지금껏 그렇게 하고 살아왔다는 증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무튼 막 미친 듯 반격을 가하고 나니, 다른 팀 여직원이 쪽지가 온다. ‘리스펙 유’. 그 여직원도 그 남자가 하는 말의 행태에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다.
육지쓰레기든 바다쓰레기든 구분할게 아니라 치울 수 있으면 거기서 치워주는 게 좋지 않나요? 그걸 뭘 구분을 해서 알고 있으라는둥 그러나요라는 말을 할걸 그랬나. 이 일은 정말 싸울 일이 아니었다. 굳이 자기 스트레스 해소하고자 상대에게 비아냥거리는 말을 해서 굳이 상대를 깎아내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그런 의도를 실행한 그의 본색은 뭘까.
결국 내가 드는 생각은 내가 여자라서 당했나 하는 피해의식이 들었다. 이제 오늘 반격을 당한 그 자가 낼부턴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확실한 건 과거 값질자에게 당했던 것처럼 그렇게 당하지 않겠다. 이런 각오를 또 해야 하는 현실이 참 슬프고 어둡고 빨리 퇴직을 해야 이 더러운 꼴을 안 보고 살지 하다가도 몇 년만 버티면 되는데 저런 인간들 때문에 내가 먼저 물러설 순 없지 하는 생각도 든다. 비는 수차례 왔지만 땅은 언제나 굳어질지 모르겠다. 아직도 질퍽질퍽하다. 그런 사람은 상대하지 마라고 하는데 상대 안 하려고 해도 자꾸 공격하며 비아냥거리며 다가온다. 에세이에 나오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말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직장은 영원히 전쟁터이나 나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더 이상 진급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더욱 용기가 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