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교육 에피소드
10년 만에 간 이틀간의 집합교육에서 발생한 네 개의 해프닝
공무원 교육원으로 집합교육을 간 게 십여 년만인가.
고작 이틀간의 교육이지만 이렇게 단기로 가는 것도 부서장 승인도 나야 해서 불편한 점도 있고 무관심해시 기를 놓친 탓도 있지만 교육점수 미달로 성과급에서 밀린 후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했다. 그렇다고 지루한 교육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교육이 “ 내면 치유를 위한 미술” 이틀짜리 교육이었다.
세 번이나 연이은 갑질 면장과의 트러블로 만신창이 된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야겠다는 마음과 미술이라는 주제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재빨리 교육을 신청했고 껄끄럽기는 하나 교육을 허하여 달라는 간청을 면장에게 올렸다. 드디어 승인 그리고 결전의 교육을 가게 되었다.
28명의 교육생은 긴장과 초롱초롱한 눈으로 미술을 이용한 심리치료가 무엇인지 초집중하는 분위기였다. 업무에 지친 뇌를 리프레쉬하고 그림을 그려봄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오전 교육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내가 속한 군에서 나 혼자 왔기에 교육생 중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같이 급식 먹을 친구 없어서 학교를 안 간다는 고등학생들의 사연이 딱 공감되는 순간이었다.
# 에피소드 1(감각 떨어져 얼굴에 음식 묻히다 그리고 무관심한 인간들)
점심시간에 혼자 먹어야 하나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급식 줄을 대기하고 식판에 식사를 장착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강의실에서 본 여자교육생이 다른 지인과 식하하려는게 보였다. 염치를 무릅쓰고 “여기 앉아도 될까요” 했다. 내 평소 성격으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화사한 미소로 답했다. 나는 그들과 지인 인척하며 밥을 먹었다. 메뉴는 돈가스를 비롯 사각 미니 순두부 위에 채 썬 양배추도 있었다. 흑임자가 들어간 소스를 그 양배추 위에 뿌렸다. 그들은 밥 먹으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지만 난 가짜 지인이라 그들의 대화에 참여할 수 없었다. 소스가 올려진 양배추가 참 맛이 있었다. 식사할 때 우아해야 하는데 극심한 배고픔의 상태일 때 감정이 이성을 앞선다. 맛있게 먹고 “ 먼저 일어나겠습니다”라는 나의 말에 그들 또한 미소로 화답했다. 주방에 있던 직원이 내가 잠시 두리번할때 퇴식구 위치도 손으로 알려주었다. 그렇게 혼자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양치를 하러 화장실을 갔다. 그 순간 난 기절할 뻔했다. 내 코와 입술사이에 검은 흑임자 소스가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보다 더 크게 뒤범벅되어 있는 것이다. 맛있게 먹다가 튄듯하다. 완전 호러 상황이었다. 아니 그들은 내가 인사를 했을 때 내 얼굴을 보지 못했을까. 봤어도 말을 안 해줄 수도 있고 무관심 했을 수도 있다. “ 진짜 매정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 나이 들수록 이제 누군가 환대를 해주지 않음에 초라함을 느끼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 에피소드 2(다른 강의실로 들어가다)
이튿날은 필사의 노력으로 점심 먹을 파트너를 만들기 위해 같은 라인에 앉은 여성을 공략했다. 어제 내가 당한 그 사건을 알려주고 낼 꼭 같이 밥 먹자고 언질을 해두었기에 다행히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만족스러운 상태로 양치를 하고 휴게실 쪽에서 전화를 하며 돌아오다 우리 강의실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다. 점심시간인데도 불이 환히 켜져 있고 저 끝에 남성 두 명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난 당당하게 전등 스위치를 껐다. 그랬더니 두 남성이 놀란 듯 쳐다본다. “ 그냥 켜둘까요? ”라고 내가 친절히 물었다. 남성들은 아니라고 그냥 끄라고 한다. 그래서 이것저것 스위치 눌러보다가 완전히 소등하고 나왔다. 그런데 나와보니 우리 강의실 바로 옆 건축공무원들이 교육받는 강의실이었다.
# 에피소드 3(9월에 9톤의 상수도 사용량)
이튿날의 마지막 타임이었다. 강사로 오신 분은 모 대학교수로 엄청난 준비물을 해왔다. 강의 시작에 앞서 프레젠테이션의 첫 장에도 자신을 소개하는 란에 뉴요커 및 관심을 끄는 대목이 쓰여있었다. 관심을 가지고 경 청하려는 참에 남편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경비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7,8월에 비해 9월에 상수도 사용량이 9톤이나 증가하여 누수 아니면 계량기 고장인 거 같다..” 는 내용이었다. 순간 무슨 아무 누수도 없고 수도를 그렇게 쓴 적도 없는데 9톤이라니 갑자기 강의고 뭐고 전화기를 들고 강의실 밖으로 가서 경비실 및 주택관리업체에 전화를 했다. 경비원 말보다 주택관리업체가 더 신뢰가 있을 거 같아 전화를 걸었다. 아까 남편이 말한 그대로의 상황이다. ”그러면 계량기 고장으로 금액이 과다하게 청구된 것도 우리가 돈 내야하나요 “라는 나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아마 금액이 9만 원 이상 나올 거 같습니다. 그리고 계량기 보수업체 전화번호 보내드릴 테니 연락해 보세요 “라고 한다. 잠시 후 관내 보수업체 여러 곳 번호를 보내준다. 순간 혈압이 오르고 입이 바짝바짝 타면서 군청 수도과에 전화를 했더니 그 지역은 다른 담당자라고 했다. 다른 담당자에 전화를 거니 다급한 나의 태도와 달리 엄청 느긋하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 몇 동 몇 호라고요. 주소를 다시 불러주세요.... “ 그러는 사이 다시 경비원에게서 전화가 온다. ”집에 아까 초인종 눌렀더니 아이가 나오던데... 그 집 맞죠? “
“아니 아이라뇨. 우리 집에 지금 이 시간에 나오는 아이가 없어요. 다른 집 아닌가요?”
“네? 다시 확인하고 연락하겠습니다." 라며 나이 든 경비원이 더듬거리며 말을 한다. 그리고 동호수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데 다른 동을 말한다. 이거 조금 이상한데 하며 다시 강의실로 들어갔다. 강의고 뭐고 9톤에 9만 원 넘은 수도료라니 심박수가 90 넘게 도달하던 차에 남편으로부터 다시 카톡이 온다. “관리사무소에서 다른 집을 우리 집에 입력을 해서 오류가 났다고 합니다. 착오라고 합니다. 죄송하다고 합니다. ”
# 에피소드 4(건망증 주의)
점심 먹은 후 큰딸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 치킨 좋아해? 아이스크림 좋아해?”
“아니 괜찮아 안 해도 된다니까...”하다가 이렇게 애들이 부모생일 때 아무것도 안 하는 습관 기르면 나중에도 안 할 거 같아서 “그냥 케이크“했다. 지난주에 담주 화요일 아빠 생일이니 축하 메시지라도 보내라고 두 딸들에게 공표를 한 바 있다. 큰딸과 통화 후 조만간 케이크 상품권을 보내겠지 하고 있었다. 1시간 후 둘째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오늘 아빠 생일이잖아 그래서 축하한다고 했어.. “
“뭐 아빠 생일? 담주 화요일이잖아...”
“오늘이 화요일 이잖아..”
“뭐?????”
세상에 나이 의식은 지난주에 머물러 있었다.
교육받느라 정신 팔리고 있는 사이 오늘이 바로 남편 생일이었다. 아침에 축하한다는 말도 못 했는데 하필 남편 회사에 회식이 있어서 오늘은 회사 숙소에서 자고 온다고 한날이다. 남편은 다른데 정신이 팔린 듯 별 반응이 없다. 살아오면서 생일을 부모님이 챙겨주지 않아서 그런지 기념일이나 생일 챙기는 것에 나 또한 무심하다. 어쩌면 그냥 다들 안 챙기고 넘어가는 거야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려고 하는 심리상태가 있는 거 아닐까. 몇 년 전에도 큰딸 생일을 모르고 지나쳐 난리가 난 적이 있다. 2월 생일이라 한 해가 시작되면 바로 생일 준비모드에 들어가야 하는데 연초엔 이래저래 하면 후딱 2월이 되는지라 어느새 2월이 오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엄청 당한 적 있다. 암튼 오늘은 어쩔 수 없고 내일이라도 딸이 보내준 케이크로 축하해줘야겠다.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