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그 시절, 그 섬에서 십여 년을 어떻게 버틸수있었을까. 가끔씩 그 시절을 회상하면 그렇게 버틸 수 있는 원천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그 나이엔 뭔가 북적거리고 화려한 곳에서 복닥거리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젊음을 확인하며 살아야 했지만 암울하게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섬에 있었다.
그곳에는 육지로 살기 위해 쉽게 떠날 수 없고 외부에서도 유입이 없는 서로서로 아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익숙하면서도 낯선 세계였다. 늙고 힘없고 나이 들어 새로운 삶을 위해 어디론가 갈 수 없고 남아있는 생을 그냥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다. 자유란 익명이 보장된 곳에서 가능하지만그곳은 익명이 아닌 것이 없기에 자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름이면 유독 태풍이 많이 지나갔고 연일 내리는 비에 우울감이 더 했지만 겨울에는 눈도 내리지 않고 그렇게 춥지도 않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와 차를 타고 둘러보면 어디 하나 멋있지 않은 풍광은 없었다. 외국에 있는 듯한 꼬불한 산길은 마치 자동차 광고에서 나오는 외국의 산길과 같았다. 제 각각의 크고 작은 섬들에 얽힌 오래된 전설 같은 스토리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들이었지만 젊은나에게는 너무도 지루하고 뭐 하나 새로울 것 없는 답답한 곳일 뿐이었다.
30년이 흐른 지금, 며칠 전 영화 ‘더문’에서 그 오래전 잊혀진 섬의 이름을 듣고 떠올렸다. 이제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메카로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지만 20여 년 전에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갈 이유는 없어졌다. 그곳이 가장 활기차는 시즌은 여름 피서철이었다. 섬사람들에게 피서객들은 도시에서 온 낯선 이방인이자 방문자였다.
그즈음이었나. 어느 날 윤상의 ‘이별의 그늘‘을 듣게되었다. 단조로운 악기와 가사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소년에서 갓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소년의 감성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순수함의 환영이었다. 한동안 그런걸 찾아 헤매었다. 늘 동경했던 도시의 세련된 우울과 센티함이 느껴져무한정 반복해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새벽’이라는 노래는 어두운 새벽에 점차 동이 트며 세상이 밝아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했다. ‘가려진 시간 사이로’는 어린 시절 꼬마들의 노는 모습이 상상이 되고, 그중 한 소년이 커다란 두 눈의 소녀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인생의 사이클은 몇십 년 만에 반복되나 보다. 최근에 오래된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일이 있었고 , 잊고 있던 윤상의 음악을 유튜브를 통해 듣게 되었다. 마치 어제 일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 당시 그 음악을 듣고 20대의 내가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50대의 나에게 전달이 되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그 순간순간의 느낌, 그섬에서의 숨 막히는 순간, 아득히 멀어지는 안타까운 청춘의 시간들이 전해왔다. 이제 그 섬은 까마득히 먼 타국처럼 다시는 갈 수 없는 곳처럼 되어 버렸지만 윤상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곳에 있었던 20대의 나를 아련하게 회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