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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Feb 04. 2024

일기나 업무일지를 영어필기체로 쓰기

남들이 알지 못하는 나만의 메모법으로 스트레스 날리기

만년필을 가까이하게 되면서 같이 따라온 건 기록하는 습관이다. 독서후기를 적기도 하지만 퇴근 후 집에 와서 하루 있었던 일을 적다보면 좋은 것만 적는 게 아니라 기록하다 보면 거의 데스노트에 가까울 때가 많다.


어느 순간 겁이 덜컥 났다. 나중에 먼 훗날 내 후손들이 내 다이어리를 들춰본다면 , 직장 생활하면서 온갖 스트레스로 가득 찬 걸 보면서 뭘 생각할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난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오죽하면 그러한가 하며 어떤 게 진실인지 모르고, 정말 재수 없이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임에도 피해자 탓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어떤 억울한 상황에서도 나를 구원해 주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말이 되냐고 하는 사람이나 ' 왜 너는 맨날 그런 사람만 만나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궁극적으로는 피해자를 이해 못 한다. 결국 이 조직은 요령 없는 사람만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나의 경우는 약해 보여서가 아니라 너무 강해 보여서 손해를 보거나 정을 맞는다. 사람들은 나의 이미지 속에서 온갖 안 좋은 걸 보는 것 같다.  내가 강한 게 아니라 주변인들이 너무 착해 보이고 유순한 사람들만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도대체 입도 열면 안 되는 상황까지도 겪었다. 어느 이장에게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어봤는데 "어떻게 오셨어요?" 하는 말투에 마치 이장이 면사무소를 안와야 되는데 온 것처럼 물어봤다는 것이다. 내 성격의 경우 친하지 않으면 말을 걸지 않는 스타일인데 그런 상황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으로 눈으로 응시하고 목례만 해야 하나 보다.


어느 이장인지 모르지만 이걸 면장에게 뽀르륵 달려가서 말했다는 것이다. 면장이 내게 직접 말해준 것이다. 면장은 나중에 회식자리에서 그 이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상엔 인사를 해도 어깨를 툭 치고 인사하는 사람이 있듯이 그런 걸 왜곡해서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 말만 생각하라고, 그래서 나중에 이장들이 오면 따뜻하게 허그를 해주게"라며 엉뚱한 말을 섞어 너그럽게 날 보호해 주었다는 듯이 말했다. 난 감사하다고 했는데 나중에 면장이 기분 나쁠 때 그 상황을 역 이용했다. 면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장회의를 자주 하는 것에 대해 서무가 뭐라고 발언하자,

" 이장회의를 자주 해서 친해져야지 그렇지 않으면 또 어떻게 오셨어요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제와 돌이켜 생각해 보니 , 면사무소를 방문했을 때 직원이나 팀장이 맘에 들지 않는 상황이 있을 때 그런 식으로 면장에게 가서 소위 이르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 면장은 그 직원을 불러 뭐라고 훈계를 하거나 근무평가에 대해 감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착각하는 건 자유니까.


정말 직장생활은 고해의 연속이다. 이런저런 일에 스트레스받지 않으려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넓게 생각해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의 평화는 사라진다. 나이 들수록 세상사에 너그러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일 뿐이다. 사소한 일에도 열불 나고 분통 터지고 분노게이지가 한번 상승하면 도대체 내려가지 않는다. 한번 난리 생쇼를 해야 내려갈 정도이다. 동생은 이렇게 말한다. "그걸 갱년기라고 부르지." 자신도 화가 나면 주체가 안된다고 한다.


얼마 전 사무실에서 면장의 말에 화가 한번 나니 차고 있던 갤럭시 워치의 스트레스 지수가 정말 눈앞에서 점점 올라가면서 한쪽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휙 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찾아보니 이걸 비문현상이라고 한다. 안과에 가서 "이거 스트레스 때문이 아닌가요?" 하니 안과의사는 "스트레스보다는 노화의 현상입니다. 특별한 처방법은 없습니다. " 하면서 온갖 검사를 하고 눈에 넣는 안약을 준다. " 특별한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아니 무슨 효과가 있을 것처럼 약도 처방해 주면서 특별한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안약을 넣으나 안 넣으나 비문현상이 특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안약처방은 왜 해주는 건가. 검사비 몇만 원과 약값만 날렸다.


그날 갑자기 스트레스받았다고 오른쪽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하는 비문현상이 나타나다니 스트레스가 정말 심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의사는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 스트레스보다는 노화라고 말하지만 인터넷 찾아보니 스트레스 영향도 있다고 쓰여있다. 그 정도 되니 나의 분노가 올라가지 않도록 사전에  안전장치를 해놓아야 한다. 그게 나의 경우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쓰는 일기다.


일기를 한글로 쓰자니 후손들이 볼까도 두렵고 내가 다시 봤을 때 악의 화신이 부활한듯한 데스노트에 가까운 게 많이 있어서 누가 볼까 걱정스럽다.  자식들도 우리 엄마가 이렇게 힘들게 직장을 다녔구나라기 보다는, 우리 엄마는 왜 이랬을까 하며 날 이해 못 할 것이다.


화를 다스리고 억울함을 토로하기 위해서 일기만큼 좋은 게 없다. 그날 하루 힘든 일에 대해 일기를 쓰다 보니 뭔가 마음속에서 꺼내 내려놓고 비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암호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내가 암호를 잊어먹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서론이 길었다.


결국 내가 발견한 최고의 방법은 영어 필기체로 쓰는 것이다. 필기체로 휘 갈겨놓으면 사람들이 쉽사리 보더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귀찮아서 볼 생각도 안 할 것이다. 필기체로 누군가를 욕한다고 해도 누가 알 것인가. 영어 일기를 쓰면 영작실력도 늘 것이다. 추가적인 나의 계획은 사무실에서 쓰는 업무 일지도  이제 필기체로 써보고자 한다. 과거 어떤 면장은 군청 회의를 다녀오면 한자로 휘갈긴 업무일지를 보면서 회의를 했다. 그 면장은 자신만의 한문실력을 은근히 내세우고 싶었던 게 있었다. 아마 내가 업무일지를 필기체로 쓴다면 누군가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내일부터 당장 실행해 보겠다.

아무것이나 써도 되는 나의 개인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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