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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Sep 29. 2024

삶이 때론 시트콤처럼 느껴진다

고난을 코믹으로 승화하기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들 중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유머"이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팍팍한 현실 속에서 그 상황을 코믹스럽게  전개해 가고 그것으로 웃음의 활력소로 만들 수 있다면 조금은 견디기 쉬워진다. 그래서인지 너무 진지해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라드는 스타일보다는 약간 코믹스럽고 소위 웃긴 말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때론 내가 그걸 자처하느라 가볍고 쉬운 사람으로 내비쳐지지만 사실 천성인 듯싶기도 하다. 


때론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시트콤 소재로 활용한다면 '순풍산부인과'보다 더 재밌는 시골 면직원 라이프가 될 텐데 하는 생각도 한적 있다. 마냥 웃고 즐거운 일만 일어나는 상황은 아니지만 되돌아보면 별일 아닌데도 그땐 왜 그렇게 분노했는지 모르겠다. 늘 어떤 일이 있을 때 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이 을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를 미리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얼마 전 추석명절을 앞두고 우리 면의 작은 사회단체 위원 중 한 명이 우리 팀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무실 간다고 기다리라고 한 것 같다. 점심식사를 하러 가려는데 팀원 한 명이 그 위원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우리끼리 먼저 가고 나중에 그 팀원이 합류하기로 했다. 나중에 식당으로 그 팀원이 왔길래.." 아까 그 위원은 무슨 일로 왔어?" 했더니 팀원이 " 아.. 복사 좀 부탁하러 왔어요.." 했다. 그런데 그냥 복사 같지는 않고 왠지 얼버무리는 것이 뭔가 있는 듯했다. 그리고 오후 늦게 다른 팀원이 조퇴하고 나가는데 그 팀원이 따라 나가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나이 들면 촉이 발달한다. 그날 내내 내가 알지 못한 뭔가 있는 것 같아 조퇴한 팀원에게 물어보았다. " 그 위원이 너희들에게 뭔가를 줬니?" 순진한 팀원은 망설이며 "네.. 사실 저희 둘은 새우 한 상자씩 받았어요.." 그 업무 담당자는 나인데 나만 빼고 팀원 두 명만 새우 한 상자를 준 것이다. 얼마나 내가 싫으면 이렇게 티를 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팀원에게 " 그 위원은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할까?" 중간에서 난처한 팀원은 " 새우가 부족해서 팀장님은 못줬다고 하던데요.." 황당한 변명 같았다. 추석이 끝난 후 그 위원이 다른 직원을 만나러 뻔뻔하게도 사무실을 찾아왔다. 마치 내 표정을 살피겠다는 심사인지. 통 몇 개월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 하필 이 시점에 면사무소에 나타나다니. 내가 인사를 하려고 보니 얼굴을 일부러 돌리고 있었다. 다 큰 성인의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기가 생각한 기준에 내가 맘에 안 들어 그런 차별을 하는 건지 의문이었다. 사실 나도 그 위원의 이미지가 별로라 대면대면한 게 사실이었다.


요즘 틱톡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니 유행인 것 같다. 틱톡이 개인정보를 뺴간다고 극혐 하는 사람과 그것과 무관하게 돈이 들어오니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극렬히 나뉜다. 사무실 인력 중 한 명이 그것으로 가족초대를 통해서 30만 원을 넘게 받았다며 비밀리에 아는 사람에게만 그걸 알려주는 모양이다. 매일 출첵을 해야 하고 영상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고 친구를 초대하며 그렇게 돈을 벌었다고 한다. 사무실 커피만 내려먹던 인력이 어느 날부터 스벅커피를 먹는 걸 보게 되었다. 스벅쿠폰도 자주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곧 언젠가 터질 시한폭탄 같다. 단 한 번도 어떤 이벤트를 통해 현금을 받을 수 있는 게 없었기에 틱톡의 현금이벤트가 신기한 것도 사실이다. 불안한 외줄 타기 틱톡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도 가입했다.


최근 나도 갑자기 인스타 동영상 광고에 빠져 어처구니없이 머리카락이 걸리지 않는 빗을 구매한 적 있다. 보통 우리가 사용하는 헤어브러시에는 머리카락이 많이 걸려 수시로 그걸 빼냐 줘야 하는데 광고에 나오는 건 손잡이를 잡아당기니 그 빗날 이 쏙 들어가면서 머리카락이 자동으로 빠지는 원리다. 하지만 생각만큼 손이 가지 않았다. 몇천 원 안 하니 그걸 무려 3개나 나도 모르게 한 것이다. 팀원에게 강매로 3천 원에 팔고 나머지 두 개는 필라테스 회원에게 주려하니 팀원에게 사실 미안해진다. 다른 걸로 보상해야겠다. 이제 두 번 다시 인스타 광고는 보지 않으려 한다.



얼마 전에는 이장단합대회가 있는데 이장단에서 잠바를 맞추면서 직원들 것도 하나씩 줬다. 하지만 여성용인 연분홍 색 잠바는 할머니들이 좋아할 만했다. 그동안 이장단에서 수년간 일 년에 한 번씩 준 옷은 빨갛거나 파랗거나 노랗거나 해서 입다가 언젠가 헌 옷수거함으로 직행했었다. 하지만 최근 알게 된 사실은 사무실에 일하는 보조인력들은 그걸 파는 매장에 가서 돈을 더 주고 자기에게 맞는 옷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 소식이 사무실에 알려지자 전 직원이 그 옷을 들고 매장에 가서 본인 부담 38천 원을 추가해서 검은색이나 베이지색 바람막이 잠바를 바꿨다. 나 역시 추석 때 입으라고 남 편 것으로 바꿨는데 너무 더워 추석 때 그 옷을 입지 못했다. 남편은 또 이렇게 안주머니 없는 옷을 어떻게 입냐고 투덜거렸다. 마침 묘수가 떠올랐다. 근처 수선집에 가서 지갑이 들어갈 수 있도록 안주머니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수선비는 2만 원이다. 그렇게 안주머니가 생긴 잠바를 보며 남편은 그제야 얼굴에 살짝 미소가 띠었다. 결국 그 잠바는 58천 원주고 산 셈이다. 매장 사장님도 하루가 멀다 하고 옷 바꾸러 들이닥치는 우리면 직원 때문에 피곤한 기색이었다. 나중엔 아저씨의 불퉁거리는 태도로 살짝 기분이 나빴다는 말도 들렸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우리끼리 그 사장님을 이해해야 한다고도 했다.


전문가의 솜씨로 감쪽같이 지퍼를 만들었다


요즘 사무실에는 30초부터 중후반 솔로 남녀들이 많이 있다. 라테는 온갖 노처녀 노총각 소리 듣느라 사무실 가기 피곤할 정도인데 요즘은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시대 분위기다. 우리 때도 그런 남녀들을 엮어주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시대가 변해도 요즘도 암암리에 주선이 행해지고 있다. 군청 근무하는 어떤 30대 중반의 남성 공무원의 경우 일도 잘하고 명석하고 인물이 조금 된다고 하니 여자팀장들이 나서서 주선하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팀원 한 명을  남성직원을 소개해주려고 하니 팀원이 한사코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상대가 좋으면 가서 저랑 사귑시다라고 말하는 스타일입니다. 절대 소개는 안 받습니다." 그 말에 모두 웃고 말았지만 나는 거사를 계획했다.

그 남성공무원과 친한 후배에게 금요일 점심 어디서 점심을 먹으면 난 우리 팀원을 데리고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우연한 만남인 척 가장하며 자리를 만들어보자고 하고 그 비밀스러운 계획에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결전의 날을 하루 앞두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둘은 인연이 아니니 거사를 실행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인지 갑자기 팀원의 집안에 일이 생겨 연차를 내게 되었다. 그렇게 거사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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