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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Sep 22. 2024

다 부질없고 별거 없다

이 시골을 어서 떠나자

50대 중반 난생처음 나 홀로 자유여행을 앞두고 설렘도 있지만 두려움도 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두려움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뭘 더 찾아봐야 하는 건지 막막하다. 공항 가서 뭘 제일 먼저 해야 하는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기계로 해도 되고 핸드폰 어플로 체크인을 한 후 수화물 보내러 가야 하나. 큰딸에게 톡을 보냈다. "인천공항에서 체크인을 어떻게 하지? " 딸에게서 답이 왔다. " 체크인! 하고 소리치면서 만세 하면 돼" 아휴 정말 대답을 기대는 안 했지만 딸의 깐죽거림은 여전하다.


자식도 20살이 넘으니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다. 내 세대에는 유교적 관습인지 모르지만 부모와 끈끈하게 이어있어 취직을 하고 결혼한 후까지 부모가 자식의 삶에 많은 개입을 하면서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부모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그 굴레를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가족이라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사는 것이 이상적일 수 있다. 자식은 자식의 인생을 사는 것이고 부모는 부모의 인생을 각자 위치에서 잘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이것저것 간섭하고 살기엔 리스크가 너무 많다. 우리 세대에는 자식들에게 용돈을 받을 필요가 없으니 더더욱 쿨한 관계가 될 것 같다. 특히 자식들과의 관계에서 만남을 기대하거나 기념일날 뭘 받길 바라는 것도 난 하지 않으려고 한다. 뭔가를 기대하는 것부터 서운함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퇴직 후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건강이다.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오듯 하루하루 더해갈수록 조금씩 노화현상을 보이고 있는 신체에 대한 노력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매일의 루틴을 지키려고 한다. 또한 배우자와의 공생관계가 중요하니 서로 의견이 불일치하지 않도록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대화를 자주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한쪽이 아닌 서로가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퇴근 후에는  각자에게 맞는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보다 더 쿨한 관계가 있으랴.


다음은 우리들의 아킬레스건인 승진이다.

공무원들은 늘 승진을 꿈꾸며 산다. 시골에서 5급이라도 달라치면 군청에 가서 팀장급으로 일하다가 여차저차 기회 봐서 승진하는 건데 그런 기회도 어떤 배경을 가지고 푸시하느냐에 달려있는지라 그 길이 참 노력이라고 하기엔 동물의 왕국 그 자체다. 사실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되니깐 그럴 수도 있다. 만년 면사무소 팀장만 하고 있으니 승진후보자 순위가 후배들에게도 밀려 저 끝에 있는 걸 보니 자괴감을 넘어선 분노가 앞선다.  게다가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다 들려오는데 참 기상천외하다. 승진했을 때 자신과 타인의 평가는 확연히 다르다. 본인은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타인들은 배경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배경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반면 이런데 얽매이지 않고 건강을 지키며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 충실하고 살면 되지 않냐고 모든 이들이 말하는 그런 위안삼지만 주변 돌아가는 거 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다. 이건 퇴직이라는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나. 5년 있으면 너도 퇴직하고 나도 퇴직하니깐. 퇴직 후엔 6급으로 퇴직하든 5급으로 퇴직하든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최대한 오래 살며 연금혜택 길게 받는 자가 승자니깐 말이다.


내가 근무하는 이 시골은 나에게는 사실 생소한 황무지와 같은 곳이라 20년 전에 이곳으로 오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전부다. 왠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편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도 싫고 많은 사람들 만나며 에너지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았다고 느끼며 살아오고 있었다. 가장 특이한 점은 모든 지방축제 때 공무원 동원하는 게 많아서 지난 20년간은 거의 주말에 축제나 행사동원되며 살아온 듯싶다. 내 마음도 그다지 넓지를 못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듯싶다. 실제로도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왔으니 마음이 편할리 없다. 우선 디테일한 계획은 퇴직하면 지금 사용하는 핸드폰 번호를 바꿀계획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도시로 가서 그곳에서 제2의 인생을 살 계획이다. 이것 역시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직장에서의 기억을 모조리 지우고 싶을 뿐이다. 이곳 사람들 누가 승진을 했고 누가 퇴직을 하든 이곳의 소식들과는 단절하고 싶다. 지나 보면 도시보다 시골공무원으로 일한다는 게 나에겐 더 어려운 일이었다. 시골의 작은 소 단체 회원들 중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중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정한 어떤 기준에 상대가 미치지 못한다 싶으면 대놓고 무시하는 성격인데 내가 그의 기준에 못 미친다는 걸 최근에 확인한 일이 있었다.


사주를 보면 60세부터 인생이 풀린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퇴직 후에 비로소 이 조직을 떠날 때 인생이 풀린다고 하니 얼마나 힘든 가시밭길을 걸어왔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냥 건강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하고 자유롭게 여행 다니고 이곳 공무원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을 마음의 홀가분함을 느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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