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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Oct 16. 2024

가자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로

스위스 와서 삼일째 새벽 4시면 눈이 떠진다. 오늘은 유랑에서 만난 젊은여성과 함께 융프라우로 가기 위해 만나기로 한 날이다. 그 여성은 인터라켄 동역에 숙소를 정했고 같이 융프라우로 가려면 그곳에 내 짐을 보관하고 가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미리 알아보기 다행이지 루체른에서 인터라켄까지 가는 구간에 공사로 인하여 중간에 내려서 임시 전기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고 SBB에 나와 있었다. 이것도 스위스 여행방을 통해 안 내용이지 나 혼자 보고 판단했으면 도대체 이게 뭔가 싶었을 것이다. 정말 여행이란 계획했던 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다.


책자에 의하면 루체른에서 인터라켄 가는 구간이 파노라마 익스프레스 구간으로 경관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인데 가면서 왼쪽에 앉아야 한다기에 자신감 있게 앉았지만 인도나 중국인 관광객은 오른쪽에 앉았다. 자연경관은 오른쪽이 볼게 더 많았다. 어떤 게 맞는지 모르겠다. 가면서 정말 안내하는 사람이 이끄는 대로 가보니 2층 전기버스가 여러 대가 정차해 있었다. 모두 인터라켄으로 관광객을 실어 나는 버스다. 한국인 커플과 인도인 가족, 중국인 커플이 정말 많이 보였다. 계속되는 아름다운 경관에 핸드폰은 쉴 새 없이 셧터를 눌러대고 쉴틈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배터리는 점차 방전이 되어 하루에 3번 정도는 보조배터리로 또다시 에너지를 공급해줘야 한다.


루체른에서 8시에 차를 탔지만 인터라켄 동역에는 10시에 도착했다. 난생처음 알지도 못하는 묘령의 연하의 여성과 접선하여 같이 융프라우를 가기로 한다는 것이 유독 젊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이 여성은 33살이지만 나보다 더 세상을 아는 사람 같았다. " 나이 어린 사람들이 더 이상한 사람이 많을지 어떻게 알아요.." 그녀의 도움으로 락커를 찾고 융프라우 VIP패스를 구매하고 그 린덴발트 터미널로 갔다. 이론으로 공부할 때는 그 린덴발트 터미널이 구글에서 보면 어디고 이걸 어떻게 찾을까 하는데 모든 게 바로바로 앞에 보이고 표시도 잘 되어 있어서 미리 조사했던 것보다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이러는데 미리 겁먹고 밤이 되면 여행을 취소할까 말까 했던 내 모습을 상상하니 조금 우스웠다. 스위스 패스가 있어서 50% 할인이지만 융프라우 패스만 있으면 스위스 패스까지 커버하기에 그 여성은 현명하게 아직 패스를 사지 않았다고 한다.


융프라우를 올라가고 싶어도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리면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매표소에서 직원과 하는 말을 들었는데 올라가려는 사람이 물어보니 낼 보다 오늘이 더 낫다 괜찮다는 말을 하는 걸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찌 되었건 낼 보다 오늘이 나으니 올라가기로 했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그 린덴발트 터미널 가는 건 쉬웠고 그곳에서 표를 스캔 후 아이거 플랫 쳐로 올라가는 방법을 택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이 가는 길로만 따라가도 되고 무엇보다 한국인이 너무 많이 보여서 한국말로 물어보면 된다는 것이다. 가끔 이곳이 스위스인가 한국인가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게 너무 재미있다. 일단 아이거플렛쳐까지 가서 보니 여전히 안개가 끼어있다. 그 여성은 오후 3,4시면 걷힌다고 그때 가자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동해서 우리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빨간색이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던 중 중간에 한번 내려서 5분 정도 사진을 찍는 구간이 있다. 그곳에서 거대한 융프라우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너무도 거대한 자연의 장엄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곳에서도 한국인 일행과 근처에 앉게 되었고 서로가 눈빛으로만 한국인이구나 하지 말을 먼저 건네지는 않는다.


같이 간 여성은 인터넷을 통해 스위스 국기가 있는 사진 찍는 포인트를 찾았고 우리는 서둘러 가야 한다고 계단을 오르며 3층까지 갔지만 찾을 수 없어서 다시 방황하며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결국 어떻게 해서 정상을 찾았다. 찾았지만 너무도 긴 줄이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프라우에 오른 목적은 저 사진이 증명해 준다는 일념으로 기다리기로 했다. 눈보라가 가끔 몰아치기도 하고 매서운 칼바람이 온몸을 덮치는데 얕은 치마와 맨다리로 올라온 여성도 있었다. 내가 가장 잘한 건 집에서 비니와 장갑을 챙겨 왔다는 것이다. 경량패딩도 겨우 가져왔지만 안 가져왔으면 정말 얼어 죽을뻔했다. 사방이 거대한 암벽의 만년설로 쌓인 융프라우에 까만 까마귀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정말 꼬박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사진을 찍는데 남들 기다리는 거 보이지 않는지 어떤 국적불명의 외국인이 슬그머니 다가가면 중국인이 큰소리로 나오라고 아우성이다. 되려 그들에게 욕을 하는 자식도 데리고 온 국적불명 남자는 대중들을 향해 퍽유 소리치고 떠나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려가는 것도 문제다. 전부 테두리에 얇은 줄 하나에 의지하고 내려가는데 보안요원도 없고 아무도 없다. 자칫 굴러 떨어질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나이 든 사람도 상당히 보였다. 우리는 거의 미끄러지듯 앉아서 내려갔는데 미니 눈썰매라도 있으면 그렇게 내려가는 게 더 안전할 뻔했다. 융프라우를 보려면 하루종일 거기 머물며 이곳저곳을 보면 좋은데 우리는 미션수행하듯 다음차례는 융패스를 들고 한국 신라면을 타려 가는 것이었다. 그 신라면은 한국의 신라면 컵라면과 다른 스위스에서만 나오는 컵라면으로 따로 수프를 준다. 외국인들은 메운 것을 못 먹기에 그런 듯 싶었다. 거기 써진대로라면 젓가락은 따로 1.60프랑을 받는다고 쓰여있었지만 추가 비용 없이 젓가락이 제공된 게 어떤 클레임이 들어갔나 싶기도 했다. 새하얀 만년설을 보면서 컵라면을 먹는 느낌이란 정말 묘했다. 아까 산악열차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는 체코,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에 왔고 같이 간 여성은 46일째 세계여행을 시작 중인데 이탈리아를 거쳐 스위스를 온 것이다.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 부부 중 남편은 30대 초반에 스위스를 왔고 20년 만에 다시 오게 된 것이고, 나 역시 29년 만에 다시 오게 된 셈이다. 그렇게 한국인 4명은 컵라면을 먹고 세계의 지붕인 융프라우에서 컵라면을 먹고 서로가 좋은 여행 하라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만약 나 혼자 융프라우에 갔다면 바로 융프라우만 보고 내려왔을 것이다. 같이 간 여성이 싸 온 주먹밥과 컵라면을 먹고 난 호텔에서 조금 가져온 치즈를 나눠주고 그 부부는 린트초콜릿을 주고 한국인의 서로 나눠주는 심성은 여전하다. 융패스 뽕을 뽑기 위해 그 여성은 우리가 올라간 반대편 쉬니케 플라테로 해서 라우텐 브루넨과 뮈렌까지 거쳐서 내려오자고 제안했다. 같이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언제 다시 내가 스위스를 오겠는가. 그리고 젊은 여성이 다 인도하는데 나는 따라만 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만 따라서 융프라우를 올라갔던 곳의 반대로 크라이네 샤이텍으로 와서 10분간 내려서 주변보고 사진찌코 벵엔으로 갔고 또 라우터브루넨의 폭포를 보고 결국 뮈렌까지 갔다. 이 모든 건 그녀가 함께 해줬기 때문이다. 이국에서 동지를 만난 건 행운이다. 나 혼자였으면 더 서바이벌 악착같이 정신 차렸겠지만 잠시 느슨해졌다.


뮈렌



루체른 호텔서 가져온 과거 보해소주 대병만 한 탄산수 한 병을 그녀에게 건네고 호텔서 가져온 귤과 삶을 계란을 나눠먹고 우리는 그것으로 점심을 때웠다. 여행하다 보면 정말 점심을 놓치는 게 일상인 듯싶었다. 더 많이 봐야 하니 아침부터 간단한 간식을 준비해서 먹고 다니면서 영양보충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녀가 있으니 사실 난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따라만 다니면 되니 나태하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이리 가야 한다고 하면 이리 가고 저리 가야 한다고 하면 저리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진정한 여행은 혼자 하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부딪히면서 하는 것일 수 있다. 산악열차를 타고 온통 초록과 거대한 만년설의 전경을 보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어도 찍어도 그 광경을 담을 수 없을 거 같았다. 눈으로 그 광경을 담고 영원히 잊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에 담긴 광경은 아무것도 아니다. 눈에 보이는 그 장엄한 광경은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러는 와중에 나이 핸드폰 배터리는 수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린덴발드 터미널에서 내려 호텔을 구글보고 찾아가야 하는데 10프로 미만으로 남아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인터라켄 동역에서 그녀는 민박집으로 가고 난 그린덴발드로 향했다. 환했더라면 또 바깥 전경을 볼 텐데 핸드폰은 수명을 잃고 7시 반이 된 지라 이미 밖은 어둑어둑해졌다. 역에서 내려 쿱에서 뭔가를 사야 했지만 핸드폰 배터리도 떨어지고 어둑해져서 우선 호텔을 찾아야 했다. 호텔이라고 써진 환한 지역으로 사람들이 가는 지역으로 따라가다가 왠지 불안했다. 한국사람들이 무더기로 지나가고 있었다. 배터리가 거의 나가는 중이라 구글로 호텔을 봐줄 수 있냐고 했다. 나는 구글 볼 줄도 모른가 보다. 반대가 가고 있다고 했다. 호텔은 불빛도 보이지 않는 쪽으로 가는 것인데 도저히 내가 저런 지역에 호텔을 예약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가다가 믿을 수 없어서 다른 호텔로 지나가 나의 예약확인서를 보여주고 호텔 물어보니 2분만 앞으로 쭉 가면 된다고 한다. 가서 보니 융프라우 로지 호텔이라고 어둠 속에 영업을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4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하지만 문이 잠겨서 두드려 보기도 했다. 그러다 앞에 안내문 보니 카운터는 건너편 구 건물로 오라는 것이다. 겨우 이제야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오기 힘들었다고 하니 카운터 여성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라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져서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늘 그렇듯 오늘이 스위스에서 3번째 호텔인데 싱글이지만 업그레이드해줬다고 한다. 분명 내가 이메일 받았을 땐 죄송하다. 당신이 요청한 아이거 북벽부이지만 테라스가 없는 1층이다라고 했는데 카운터여성은 업그레이드했고 테라스까지 있다고 한다. 너무 놀라며 감사하다고 했다. 스위스는 싱글인 경우 전부 업그레이드해주나 싶었다. 그리고 액티비티 할 때 쿠폰을 준다고 하는 것 같았다. 카드키를 받고 건너편 새 건물로 다시 이동했다. 아까 굳게 잠겨있던 문이 카드를 대자 스르르 열렸고 아무 의심 없이 3층으로 갔지만 룸번호가 없었다. 다시 혼자 4층까지 올라가 보다가 엘리베이터 안에 룸번호가 쓰여있고 층수가 적혀있었다. 알고 보니 2층이었다. 1층이 제로고 2층이 1층인 셈이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자연친화적인 건지 벽이 나무이고 냉장고도 없었고 콘센트는 문입구 바닥 쪽에 조그맣게 있었다. 하지만 내부 구조를 자세히 보니 우리나라 블로거들이 그린덴발트 숙소뷰 소개할 때 자주 나오던 테라스가 있는 그곳 같았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어둠 속에 거대한 산이 자리하고 사진에서 보던 초원 위에 불빛들이 반짝이는 게 저것들이 바로 그 아이거 북벽 뷰 말할 때 나오던 초원의 집인가 했다. 어서 내일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거대한 만년설의 산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게 너무도 설레고 기대가 된다. 그리고 그 여성과는 내일까지만 같이 할 수 있다. 내일모레 오전에 내가 스위스를 떠나기 때문이다. 낼 하루는 온전히 그녀에게 맡기고  따라 다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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