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너무 피곤했나 보다. 창밖은 여전히 어둠인데 시간이 궁금해 핸드폰확인해 보니 방전이 되어 있었다. 갤럭시 워지는 아직 2일이 남아있어 시간을 보니 6시 정각이 있다. 보조배터리도 그렇고 모두가 제로였다.
그 린덴발트에서아이거 북벽뷰를 기대하고 설레고 잤지만 아침에 그런 참사가 벌어지니 갑자기 불안해졌다. 아이거 북벽의 설렘에 어두운 기운이 맴돌았고 갑자기 불안해졌다. 외국에선 핸드폰이 생명인데 말이다.조식을 먹고 나가기 전까지 두 개가 모두 충전이 되어야 한다. 인도관광객을 보니 어마어마한 보조배터리를 가지고 다니던데 해외여행에선 핸드폰이 방전되는 사태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너무 방심해서 집에다가 2개나 더 보조배터리를 놔두고 온 것도 너무도 후회스러웠다.
서둘러 건너편 로지로 조식을 먹으러 다녀온 사이 아이거북벽은 서서히 거대한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사진을 찍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시간대도 있을 것 같았다. 저녁 내내 간간히 비치는 불빛들은 가로등이었다. 저녁인 지금은 또다시 불빛들이 하나씩 꺼져가고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스위스 여행을 준비하면서 다들 왜 그 린덴발트에 머무르라고 한 이유를 알겠다. 어쩌면 여기 그 린덴발트는 거의 한국인들의 도시인양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인 젊은 커플들이다. 어쩌다 블로그를 통해 인기몰이를 했는지 모든 블로그에 호텔 찾아가는 법 비 오는 날 뭘 할지 모든 정보가 나와있어서 여행을 가고자 하면 블로그만 잘 찾아봐도 그 코스대로만 다녀도 될 듯싶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 검색하는데 얼마나 능한지 동행한 여성을 봐도 그랬다. 내가 종이에 오리고 붙이고 적는 사이 그들은 핸드폰검색을 통해 머리에 정보를 집어넣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스위스의 풍광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기엔 아쉬웠다. 모두 눈과 가슴에 담고 가야 하지만 이 모든 게 언젠가 잊어질까 봐 너무 두렵다.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이기에 눈이 절대 녹지 않는 그 빙하 같은 거대한 산들을 보니 장엄하다는 표현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그린덴발드 터미널에서 동행여성을 만나 융프라우의 배꼽인 멘리헨을 가서 한 시간 동안 트래킹을 하고 클라이넥 샤이텍에서 기차를 타고 쉬니케 플라테를 다녀오고 다시 인터라켄 동역으로 돌아와 기념품을 사기로 했다. 계획은 언제나 유동적이다. 어제 잠시 들렀던 라우터 부르넨의 폭포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곳에서 만나자고 하는데 사실 나이 탓으로 돌리기도 뭐 하지만 뭔가 새롭게 생각해야 하고 계획하지 않은 걸 찾아가기가 상당히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 혼자 먼저 다녀오고 나는 그 사이 그린덴발트 터미널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내부에 쿱도 있어서 음료수도 사고 기념품가게도 구경하고 비스트로라는 카페에서 어제 구입 못한 융프라우 형태의 초콜릿과 커피를 주문했더니 10프랑이 넘었다. 우리 돈으로 18천 원 되는 비용이지만 카페라테는 꼭 에스프레소잔에 담겨 나왔다. 그곳에서 오며 가는 아이거글렛쳐를 보며 충전을 하며 기다렸다.
12시 반이 되어서야 그녀가 나타났다. 폭포사진도 동영상으로 보내왔다. 그녀는 2일 치 융프라우 패스를 구입해서 멘리헨을 그냥 갈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스위스패스 소지자는 반값이라 머신을 통해 표를 구입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멘리헨으로 갔다. 이건 나 혼자였으면 도저히 시도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를 따리 멘리헨 꼭대기에 내려서 산 허리를 걷기 시작했다. 산 타는 거 극도로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내게 평지는 너무도 쉬운 코스였다. 가파른 산 허리를 운동화와 트렌치코트를 입고 그녀를 따라 걸었다. 그녀는 어제와 같이 니트티에 운동복을 몇 겹을 껴입었다. 역시 스위스에서는 그렇게 입어야 할 것 같았다. 위태위태하며 산허리를 도는데 강풍이 부는데 자칫하면 날아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도 장엄한 설산과 넓은 구릉을 보며 걷는 느낌은 뭐라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감격 그 자체였다. 간혹 비도 뿌리고 해가 비추기도 하는 그 한 시간가량의 길은 어쩌면 우리네 인생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꿈을 꾸게 된다면 이 길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클라이넥 샤이텍 역에 도착했다. 융패스 소지자인 그녀는 무료지만 톱니바퀴 레일 구간은 스위스패스 소지자는 무료가 아니다. 50% 할인을 해줘서 또 구간권을 벵엔까지로 구입을 했다. 쉬니케플라테를 가려고 했지만 그곳에서 막차시간이 너무 빨리 끝나서 가지 못한걸 우린 아쉬워했다. 우선 인터라켄 동역으로 가서 기념품샵을 가기로 하고 도착해서 알아보니 그건 서역에 있었다. 물론 찾아가면 되지만 갑자기 둘 다 귀찮아졌고 동역 바로 앞에 있다는 큰 쿱에 들렀다. 그곳에서 저녁거리를 조금 샀었어야 했다. 그 린덴발트에 있는 쿱은 7시면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라우터브루넨을 괜히 가서 쉬니케 플라테를 못 갔다고 아쉬워했다. 우리는 오늘 일정의 마지막으로 하더클룸을 정했다. 여긴 동역에서도 가깝다. 그녀는 검색의 달인이었다. 하지만 나이 든 나는 어버버 하며 그녀 눈에는 진짜 우당탕탕 여행가로 보였을 것이 뻔하다. 조금 더 전문적이고 우아하고 노련미 있는 여행가가 되었어야 했는데 그녀가 나보다 더 노련미가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번이 첫 해외여행이라고 하는데 믿을 수 없었다. 스위스는 이번이 끝이 아니고 또 언제라도 와야 할 곳처럼 느껴졌다.
" 이렇게 공기 좋고 온통 초록이고 멋진 트래킹 코스가 있는 곳에 과연 스트레스가 있을까요?"다음 여행에는 이번처럼 어리숙하지 않고 좀 더 노련미 있게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든 나를 데리고 다니며 고생했을 그녀에게 사실 미안하다. 덕분에 난 융프라우 등반과 트래킹을 하고 사진도 찍어주고 혼자라면 못했을 곳을 갔으니 여행에서 귀인을 만난 셈이다. 우리의 마지막 코스는 그녀가 검색한 석양이 멋있다는 하더쿨룸이다. 동역에서 가까워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오전에 그 린덴발트 터미널에서 구입한 맥주를 마시며 석양을 볼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산건 맥주가 아니라 생강토닉류로 술에 섞어 먹는 것이었다. "먹어도 취하지가 않네요"그녀가 말했다. 또 나의 바보 같은 어리숙함이 드러났다. 오전에도 설레발 날레발 치며 그녀를 준다고 가방에서 사과, 배, 빵을 꺼내는 게 너무 성급해 보였나 보다. "좀 차분히 하세요.." 그녀는 T임에 틀임 없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난 F이고 그녀는 반대였다. 여행이 오래 길어지면 서로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하더클룸을 마지막으로 그녀와 작별을 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이하고 사라졌다. 저런 멘탈이라면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이하고 가다가 갑자기 그녀가 물었다. "아까 참기름 준다면서요..." " 아.. 깜빡 잊었네요.. 헤헤, " 길에 가방을 내려놓고 주섬주섬 가방을 뒤졌다. 알고 보니 아침에 그녀 줘야지 생각하고 호텔 원탁 위에 그대로 두고 온 것이다. 그러면서 아까 하더쿨름 꼭대기에서 그녀에게 참기름을 준다고 했던 것이다. " 아,,, 어떡,, 호텔에 두고 왔네.." "네 괜찮아요.. 가겠습니다" 하고 그녀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은 젊은 그녀처럼 좀 야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야무진다는 게 그렇게 해야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타고난 대로 사는 것이긴 한데 좀 차분해질 필요는 있다. 낼모레 60을 바라보면서 여전히 젊은 애들보다 더 덜렁거리는 게 사실 좀 그렇긴 하다. 나의 기억력은 우리 팀에서 나보다 어린 팀원들보다 조금 낫거나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에서 만난 그녀를 보니 그녀의 기억력은 어떻게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보다 더 기억력이 안 좋거나 비슷한 팀원들은 어떡할 것인가. 이제 낼이면 스위스를 떠나게 된다. 아침에 조식을 먹고 그린덴발트 쿱에서 초콜릿을 사고 인터라켄 동역에 가서 이젤발트에 잠깐 들러볼 계획이다. 그녀는 내일 혼자 인터라켄 동역에서 액티비티 행글라이더를 탄다고 한다. 나에게 하루만 더 시간이 있다면 그녀랑 같이 행글라이더를 탔을 것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다음에 스위스를 온다면 액티비티를 하고 트래킹도 하고 스위스의 가보지 않는 곳을 다 가볼 것이고 체르마트까지 둘러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