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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Oct 15. 2024

엥겔베르그행 첫차. 티틀리스 가는 길

그리고 필라투스

조식이 6시 반부터 시작이다. 블로그에서 이 호텔 조식이 깔끔하고 해서 기대했는데 역시나 먹을 게 없었다. 그나마 빵을 데워서 먹으니 먹을만해서 빵만 3개를 먹은 거 같다. 주변을 보니 한국인 신혼부부 같은 젊은 세 커플이 보였다. 요즘은 또 스위스로 신혼여행을 많이 오나 보다 생각했다.


 이제 둘째 날이라 어플을 통해 엥겔베르그행 기차를 타는 플랫폼을 찾았다. 역시나 오늘도 1등급 좌석에 앉아서 2등급 좌석으로 쫓겨났다. 엥겔베르그 역에 내려서도 엄벙덤벙 외국인들이 가는 곳 쫓아가다 혹시 해서 티틀리스 가려는데 어디로 가냐니 반대편 인포창구를 알려준다. 머리가 벗어지고 안경을 쓰고 배가 나온 전형적인 캐릭터의 직원에게 물어보니 바로 앞에서 셔틀을 탄다고 한다. 또 내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한국에서처럼 신용카드 확인버튼을 안 누르고 급하게 하니 그 할아버지 점원이 셔틀은 8시 반에 오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한다. 순간 할아버지도 당황했을 것 같다. 성미 급한 한국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셔틀버스 기다리고 서있으니 역시나 인도인 관광객 무리들이 다가온다. 인도 국민배우가 그곳에서 촬영을 해서 티틀리스에는 인도인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스위스 여행을 앞두고 이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밤새 두려워 떨던 지난날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어플만 잘 보고 다니면 잘 찾게 되는데 뭐가 그리 걱정이었을까. 또 이론으로 아무리 완벽하게 익힌다 해도 현지 오면 또 틀리다. 닥치는 대로 헤쳐나가는 거다. 티틀리스는 29년 전 내가 26살 때 공무원 해외여행이 막 자유화되었을 때 운 좋게 단체로 왔던 곳이다. 많이 변했겠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그곳의 빙하동굴을 걸어간 기억만 난다. 스위스 패스가 있어서 50% 할인받아도 거의 4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하지만 올라갈수록 그 정도 돈은 받아야 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비가 조금씩 오는 마을 전경을 바라보며 등산케이블카는 점점 거대한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가을등산복속에 목폴라를 입었지만 완전 강추위에 쌩쌩부는 바람을 이길 수는 없었다. 같이 올라간 인도인 관광객들은 패딩으로 꽁꽁 싸맨 모습이었다. 중간에 트륍제에서 한번 쉰다니 정말 문이 열였고 자동적으로 나도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케이블카를 탔다. 이론으로 공부할 땐 중간에 내리거나 내리지 말거나가 뭔가 했더니 케이블카는 꾸준히 이동 중이니 잠시 열릴 때 내리면 되고 타면 되는 것이다. 해발 3060미터에 올라가니 정말 인도국민배우 형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파는 초콜릿에 눈이 안간이유는 전날 쿱과 기념품샵에서 십만 원 넘게 샀기 때문이고 원래 더 높은 곳에 그런 곳에 파는 게 비싸기 때문에 사지 않았다. 나이가 드니 점차 이성적으로 변하는가 싶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무조건 그런 거 안 따지고 보이는 족족 불필요한 기념품까지 잔뜩 샀을 텐데 말이다. 정말 스위스의 산이 이렇게 높은데 케이블카를 설치하지 않을 수 없고 이런 관광으로 대대손손 먹고사는 스위스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엥겔베르그행 첫차를 타고 티틀리스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니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라 이 정도면 필라투스까지 정복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또 스위스를 언제 올지 모르고 후회하는 일을 남기지 말자는 생각에 한국에서 가져온 알사탕을 가방에서 꺼내어 조금 빨아먹다가 잘끈 씹어먹고 당을 보충했다.

다행히 아침에 호텔서 가져온 반숙란이 주머니에서 식어서 껍질이 조금씩 벗겨져가고 있었다. 계란 두 개도 얼른 먹어치웠다. 이런 간식을 안 가지고 다녔으면 어쩔 뻔. 관광하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루체른으로 돌아와 관광안내소에 가서 지금 필라투스 전경을 웹캠으로 봐달라고 했다. 내가 어플로 볼 수 있지만 지금 다운로드하면 핸드폰 요금 청구될 것 같고 또 웹캠으로 보면서 직원의 의견도 듣고 싶어서다. You can see something이라고 했다.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조금 보인다는 것은 곧 잘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티틀리스를 다녀오니 필라투스 가는 알프나드까지는 금방이었다. 그 역에서 내리면 바로 필라투스 산악기차를 타는 곳이 나온다. 올라간 곳의 반대로 내려올 수 있지만 변화가 지금은 사실 겁난다. 이미 티틀리스에 온 에너지를 뺏겨서 그냥 가던 길로 내려오는 걸 택했다. 그것도 저렴한 비용은 아니다. 하지만 거대한 필라투스 산으로 올라가면서 그 비용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은 정말 위대하다. 너무도 아름답고 거대하다. 거대한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진짜 살았을 것 같다. 거인 빌라도가 누워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정말이지

필라투스를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하루에 계획했던 티틀리스와 필라투스를 정복한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이론적으로 그게 가능할지가 몇 개월간 의문이었고 이미 다녀온 블로거들이나 여행카페에서도 그렇게 다녀왔단 이야기보다는 다른 경로다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29년 전에 갔던 곳과 가고자 했던 곳을 나 혼자 스스로 찾아간 것에 너무 흡족했다. 이렇게 수월한데 왜 그렇게 겁부터 먹었을까. 이번 혼자 하는 여행을 처음 해보니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돈과 시간만 된다면 이제 세계 어느 곳이라도 혼자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두 군데 여행을 마치고 나니 시간이 겨우 4시였다. 욕심을 더 냈다. 시내에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 많다는 로젠가르트 미술관으로 향했다. 아무 생각 없이 휙 들어갔더니 그곳에서도 나이 든 할아버지 직원이 불러 세운다. 나를 보더니 한국에서 왔냐고  한국인처럼 생겼다고 한다. 스위스 패스가 있다고 하자 처음에는 나올 때 보여주라더니 다시 말을 바꾸어 핸드폰으로 캡처를 하고는 많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층별 안내부터 그라운드 플로어가 여기라고 하면서 피카소에 관한 게 많다고 2층엔 모네, 칸딘스키 등등하는데 상당히 말이 많으시다. 옆에 있던 여직원이 눈을 흘깃하며 웃는다.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 왔냐고 해서 내가 사는 곳을 말하니 모르는 눈치다. 그래서 뭐가 유명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진짜 살아있는 영어를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딱히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 둘러보니 피카소의 습작이 상당히 많았고 그림들이 이중섭이 담뱃재에 그린 그림들처럼 아주 조그만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기대와 다르게 내가 너무 빨리 보고 나오자 그걸 비유하여 나에게 뭐라고 했는데 알아먹지 못했다. 그리고 직업이 시골 공무원이라고 하자 세금을 부과하는 일을 하냐고 웃는다. 정말 왜 바보같이 어버버 영어를 제대로 못했는지 참 안타깝다.




바로 조금 시내를 걸어 다니다가 호텔에 들어가서 쉬었어야 했는데  아직은 환하고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도시를 보니 또 욕심이 나서 초콜릿 어드벤처인가 그곳을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내일 융프라우를 같이 가자고 여행카페에서 만난 20대 여성이 린트박물관이냐고 묻자 나도 모르게 내가 착각한 줄 알고.. 네 아마 했다. 그리고 스위스 단톡방에서 린트박물관을 간다고 하자 누군가 취리히인 줄 알고 초콜릿 폭포 발견했냐고 묻는다. 그게 뭐냐 철거한 거 아니냐 그거 없다고 하니 린트박물관 간 거 맞냐고 묻는다. 또 다른 사람은 루체른도 린트 박물관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루체른도 린트박물관이 나고 했던 사람과 린트박물관에 온 거 맞냐는 사람의 너트를 보며 진짜 인간의 성격 다양성을 보았다. 그런 과정에서 왠지 내가 바보가 된 느낌이 들고 도대체 어디로 가신 거냐고 묻는 스위스 방에 있는 한 사람의 물음에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그 초콜릿 폭포를 찾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린트 박물관을 물어보니 어떤 이는 이리 가라 어떤 이는 저리 가라 극도로 피곤해졌다. 결국 점원에게 물어보니 여긴 초콜릿 어드벤처이고 린트박물관은 취리히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난 취리히에 린트박물관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때부터 핸드폰도 점차 밧데가 20% 이하로 떨어지고 에너지 역시 떨어지고 보조배터리 역시 떨어지고 있었다. 높은 곳에 두 번이나 올라가고 보조배터리로 3번을 충전하고 나니 이제 얼른 숙소로 들어가라는 신호였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버스를 탔다. 그냥 다시 돌아서 루체론 역으로 가는지 알았지만 반대편으로 가고 있었다. 옆 할머니에게 영어로 물어보니 스위스말로 대답한다. 얼른 내리니 바로 반대편에 버스가 와 있다. 그걸 타고 루체른 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정처 없이 낯선 도시를 방황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왠지 외롭거나 낯선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그냥 잠시 출장 온 느낌이 들었다. 이건 어쩌면 나이가 들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루체른 역 지하의 쿱에 들러 남들 다 맛있다는 닭다리와 라벨라 빨간 라벨 탄산수와 요구르트를 사들고 들어왔다. 닭다리는 너무 짜고 망고요구르트 1+1은 못 먹을 맛이고 탄산수는 우유 짜고 남은 걸로 만들었다는데 진즉 먹을걸 는 맛이다. 스위스를 떠나기 전에 제로라고 적혀있는 파란 라벨도 먹어볼 예정이다. 다 좋았는데 단톡방에서 한 사람의 말투로 여행마무리 시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일은 루체른을 드디어 떠나 이번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그린덴발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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