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독서노트 쓰는 이유

유시민 < 표현의 기술>에서 발견한 문장들

by 얼음마녀

책 읽을 때 적어두고 기억하고픈 문장을 발견하게 되면 살짝 귀퉁이를 접어둔다. 다 읽은 후엔 그 접은 부분을 펴가며 페이지와 그 문장을 만년필로 적는다또 다른 색의 잉크를 이용해 그 문장 밑에 개인적인 생각을 적을 때도 있다. 그렇게 기록한 노트도 수십 권에 이른다. 올해부터 미니멀하게 살자고 결심한 이후 그 노트들도 사실 버거워졌다. 만년필은 버릴 수 없고 적는 것도 멈출 수 없는데 늘어나는 노트수는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가 쓰기와 별개의 고민이 되어버렸다.



책을 읽고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때 기록을 해두지 않으면 사라져 버린다. 한번 본 책을 다시 보기 힘들기에 페이지와 해당 문장을 독서노트에 적어두면 후일 기록한 문장을 보고 마음가짐을 새로 할 수 있다. 당시 어떤 문장에 상당히 공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면 색다른 느낌이다. 그러기에 문장을 항상 곁에 두고 되새김질하고 계속 인풋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독서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이다.


수년 전 읽은 유시민의 <표현의 기술> 문장을 발췌해 둔 노트를 들춰보았다. 유시민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그의 글은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다. 독자를 위한 책이 그리 어려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김영하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유시민 작가는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소재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설명하며 어떻게 글로 어떻게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주관적으로 간직해야 할 부분을 발췌했다. 항상 그의 문장을 자주 읽으며 생활 속 비밀병기로 활용해야 할 필요성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


41p: 심리학자들은 사람에게 복수의 페르소나(인격)가 있다고 하더군요. 감정이 크게 흔들리면 이성이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하고요.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랍니다. 그러니 자신이든 타인이든 사람에 대해서 지나친 신뢰를 보내지는 않는 게 현명하겠지요.

그렇게 수많은 책에서도 사람에 대해 지나친 신뢰를 보내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하지만 매번 그 중요성을 망각하고 정신줄을 놓는다. 호되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다음에야 정신을 차린다.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역시 성격이나 표정 모든 것 하나하나는 후천적인 노력에 의하기보다는 그렇게 태어나야 하는 것인가 의문을 가져본다.



44p: 글쓰기는 자기 성찰을 동반하는 것이죠. 글에 나타난 내 모습이 싫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해서 고칩니다. 글만 고치는 게 아니라, 제 자신을 고치는 작업이지요

일기를 쓸때도 마찬가지다.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를 그동안 깊게 체감하지 못했다. 일기를 쓰기 전까지는 하루 중 스트레스받은 일들이 뇌 속에서 자연스럽게 잊힐 때까지 곱씹게 된다. 하지만 일기를 쓰고 난 후에는 자신의 감정을 파헤쳐가면서 관조하는 입장에서 분석하게 되고 어떤 응어리를 토해 낸 기분이 든다.



81p: 저는 타인에 대한 기대 수준을 바닥으로 내리는 것을 현명한 처세술로 여깁니다. 특별한 기대를 하면 특별히 실망하거나 특별히 서운해할 일이 많아집니다.

남에게 바랄 것이 없으면 그 앞에서 서운한 감정도 들지 않고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아둥바둥할 필요도 없다. 실행하기 어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것을 초월해 살 수만 있다면 당당하게 사는 것이 자존감을 지키며 잘 사는 방법이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면서 억지로 살 필요는 없다.



101p: 인간은 이성과 욕망을 다 가진 존재입니다. 욕망은 아름답고 또한 추악합니다. 이성은 고결하지만 때로 나약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빛나는 선과 끔찍한 악을 다 저지릅니다. 저는 인간의 사악함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악함은 누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일부여서 악한 사람 자신도 스스로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회악이 생기면 그 원인을 나쁜 사람한테서 찾는 경우가 많은데 모든 악이 악한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소수의 사악함 보다 다수의 어리석음이 사회악을 부르는 때가 더 많습니다.

인간이 원래 사악하고 자신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거짓말도 불사하는 본성을 지녔지만 이성에 의해 얼마나 제어하느냐에 개인적 차이가 있다고 해석된다. 다수의 어리석음은 최근 뉴스에서 볼 수 있듯 사회전체를 혼돈에 빠뜨리고 있는 일부 단체의 비이성적인 행동만 봐도 알수 있다. 그게 얼마나 무섭고 또다른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는 지 똑똑히 보았다.



250p: 여러분은 이 세상을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에 살러온 존재입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난 특성과 환경은 다르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의미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노력하고 분투하고 즐기면서, 각자 자기답게 살아가기를 , 그런 삶을 누릴 기회가 여러분 모두에게 찾아들기를, 그리고 살아가면서 하는 생각과 느낌, 감정을 글로 자유롭게 표현하며 살아가기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최종 이유를 아주 간략하고 명료하게 이해시켜주는 문장이다.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그에 대해 반론을 글로도 말로도 제기할 수 없던 적 있었다. 이젠 더 이상 악에 굴복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과 글로 맞서 싸워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고 오로지 나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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