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메커니즘]09. 개인(individual)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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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 : 개인(individual) ② 죽어야 사는 사람들)
의식 분야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켄 윌버는 그의 저서 「통합 비전」에서 발달단계를 언급하면서 발달 수준(level)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바 있다.
생명체는 계층구조의 각각의 수준을 거쳐 확장하는데, 각 단계는 무언가를 판단하고 배제하는 양식이 아니라 양자 도약이 일어나는 것처럼 매 단계마다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며, 그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특성이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양한 단백질들이 세포 내 구성과 배열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세포를 만들어내고, 이들 세포들이 모여 장기를 이루고, 또 장기들이 모여 전혀 다른 인체를 빚어낸다. 힌편 볼트, 너트, 핸들, 바퀴, 주친축 등 2만여 개의 부품이 모이면 전혀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처럼 '하위계층(구성요소)'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계층(전체 구조)'에서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것을 '창발'이라고 부른다. 즉 새로운 것이 나타나서 그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가 생길 때 이것은 마치 놀라운 마술쇼와도 같아 보이는데, 그 이유는 늘 전체는 부분의 합을 포함하면서 초월하기 때문이다.
창발은 전체는 부분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고 그 이상이 된다는 말로도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은 유기적인 관계에 있는 전체는 각각의 부분의 합보다 더 크거나 혹은 그 이상이라는 말인데, 가령 1+1=2+ (2 이상)의 효과를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성요소 단독으로는 도저히 발휘될 수 없는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모인 전체 구조가 합쳐져 거대한 힘을 만드는 것이며, 이것은 인체뿐 아니라 조직, 사회 역시 모두 이와 같은 원리로 동일하게 작동된다.
만일 생명체를 구성하는 어떤 세포가 협력을 깨고 단독으로 자기만의 증식만을 위한 활동을 한다면 전체 생명체는 어떻게 될까? 아마 전체에 이익이 되지 않는 일부의 활동은 종종 암세포와 같이 전체를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전체성의 관점에서 집단의 역량 역시 그것은 집단에 속해있는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개개인들의 관계와 이들이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달린 일이 된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사물은 각 부분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현상을 고려할 때, 각 부분뿐 아니라 각 부분 간의 상호연결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개인을 바라볼 때는 단순 개인뿐 아니라, 개인과 사회와 국가 간의 연결고리를 유기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한번 500개의 퍼즐 조각으로 완성되는 어떤 프레임을 상상해보자. 500개의 퍼즐 조각은 전체 프레임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이 들어가야 할 자리가 있다. 여기서 전체 프레임은 각각의 퍼즐이 자신의 위치에서 제 몫을 감당할 때야 비로소 완성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개인(individual)은 자신의 퍼즐 모양이 집단의 그것과 같지 않은 '독특함(uniqueness)'과 '다름(difference)'으로 인해 집단에게 소외당하고 배척당할까 봐 늘 두렵고 불안하다. 원래부터가 개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외부인(outsider)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에 전례 없는 '새로움'을 가져오는 것은 '집단'이 아니라 다름 아닌, 외부인 '개인'이다. 개인의 '다름'은 항상 주위 시선을 사로잡고 궁극적으로 충격을 주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삶을 변화, 변성시킬 수 있는 진화 잠재력(mutative potential)을 가지고 있는 대단히 강력한 힘이고, 다른 집단속으로 관통해 들어가서 전달되어야 하는 힘이기도 하다.
만약 개인이라는 퍼즐 조각이 전체 프레임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개인이 가진 '독특한' 앎, '독특한' 정체성은 전체 성안에서 꽃 피우고 완성될 여지가 없어진다.
전체에서 개인은 결코 주목을 끌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집단에 있는 그 누구처럼 최고가 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남들과 다르게 존재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개인'은 단지 자신의 독특한 퍼즐 모양 그대로 '행동'하며 자기 자신으로 살고, 외부와 정직하게 '소통'하면서 하나의 '선례(example)'가 되면 된다.
이를 통해 개인은 자연스레 외부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고, 열정적으로 참여하여 다른 사람을 격려, 자극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만일 모든 개인들이 너도 나도 집단의 누군가처럼 최고가 되려 한다면 개인은 개인대로 제 위치를 찾지 못할 뿐 아니라, 전체성(totality)의 차원에서는 마땅히 채워져야 할 퍼즐 조각 중 일부를 잃게 되고, 그 퍼즐 조각이 채워졌다면 가능할지도 모를 유익한 변이의 잠재성을 보지 못하게 된다.
전체는 항상 부분의 합보다 크고 예측이 불가능하다. 전체에 속하지만 늘 외부인으로 존재하는 개인 역시, 예측이 불가능하다. 어떤 변이적 힘에 내몰릴지, 그리고 변이적 앎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이것이 어떤 창발을 어떤 마법을 부리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켄 윌버의 저서 「통합 비전」에서는 '4 사분면'의 도해를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조각조각의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이라 일컬은 '통합모델'을 언급한다.
마치 500개의 조각으로 완성되는 전체 프레임에 들어갈 걱 퍼즐마다 각자의 위치가 있듯이, 우리는 켄 윌버의 통합모델을 통해서 통합의 시작은 '있는 그대로'의 이 세상의 위치와, '있는 그대로'의 나의 위치를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며, 그 자각은 세상 만물은 모두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고 최선을 다해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수용'함으로써, ‘통합적 관점'을 갖은 '통합적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통합모델에서 각자 자신의 위치, 각자의 역할이 있듯이, 전체에서 '개인'이라는 퍼즐 역시 그 위치와 역할이 있다. 아무리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며 외롭게 존재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독특한 퍼즐 모양대로 남 들게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 용기, 자신의 퍼즐이 집단과 연결되어야만 전체가 완성되고 꽃 피울 수 있다는 인식, 선례가 되어 집단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이 그것이다.
개인은 통합적 관점에서 이와 같은 자신의 역할을 수용함으로써, 외부인(outsider)으로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갈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개인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