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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직한연필 Jun 11. 2024

할머니의 가난


할머니의 가난



굶은 지 사흘째 되던 날,

보다 못한 이웃에 사는 친구가

흰 쌀 두어 주먹을 가져왔다.

당시 할머니 뱃속에는 큰고모가 있었고

큰아빠는 젖 뗀 지 얼마 안 된 아이일 때였다.


그래도 젊다는 것을 위로 삼아 겁 없이 며칠을 참아왔는데,

말없이 흰쌀밥을 지어 주는 친구 얼굴을 보고는

할머니는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젊다는 이유가 되레 서러워져

밥이 목에 걸려 도무지 넘어가지를 않았단다.


솥에 물을 더 붓고

흰쌀밥이 멀건 죽이 되기까지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생각한 것은

산달이 가깝기까지는 행상이라도 해서 돈을 버는 것이었다.

어깨를 덮는 빨간 고무 통에 수박이며 참외, 가지며

되는 대로 팔 품이 될 만한 것들을 모아서 시장으로 나가는 길은 꼬박 세 시간이 걸렸다.


생각만큼 물건은 잘 팔리지 않고

큰 애는 엄마 머리에 인 과일이 먹고 싶어서

침을 삼켜도 넉넉한 마음으로 하나쯤 내어 줄 수 없어 본체만체해야 했다.


오랜 술주정으로 밑도 없이 겨우 견뎌온 가계를 흔들어 놓던 할아버지는

얼마간 정신을 차린 것처럼 조용하더니 그 며칠 뒤 돌아가셨다고 한다.


비록 온갖 죽으로 끼니를 대신하는 날이 길었어도 할머니는 그 분한 마음이 턱에 받쳐 오히려 하루하루를 견디어 왔었다.

그때의 기억이 훈장처럼 빛나는 동안,

죽으로 연명된 큰고모는 맏딸을 시집보내고 늦게 재혼을 했고

배를 아무리 곯아도 내색하기 어려운 형편을 잘 알았던 큰아빠는 몇 해 전 교통사고로 영영 할머니와 멀어졌다.


그 무엇이 자꾸 목에 걸리는지 날 붙잡고 목이 멘 소리로

몇 번이고 그 시절 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

그 할머니의 고목에 핀 검버섯 같은 손을 쥐고

나는 소리 없이 고개만 주억거리다가 돌아오는데

길이 내게는 너무 아득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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