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는 정말 열성적인 직원이다. 오늘도 길어지는 회의, 김대리는 굴하지 않고 회의하는 내내 뛰어난 집중력을 발휘한다. 즉흥적이고 성격이 급한 대표님의 단발성 과제들 앞에서도 정신줄을 놓지 않는다. 빠르게 수용하고 적응하며 단기간에 놀라운 기획안을 뚝딱 만들어 낸다. 회의 내내 지나치지 않은, 매우 안정적이고 적절한 수준의 자신감이 느껴지는 말투와 손짓, 편안한 표정, 무엇보다 잘 정리된 ppt는 그가 대표님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
김대리는 쭉 인정받고 싶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언제든지.
김대리는 유독 회의가 있던 날, 퇴근길에 지독한 피곤을 느낀다. 김대리의 끊임없는 '자기어필' 탓이다. 생각보다 먹히지 않은 '자기어필', 실패한 '자기어필'에서 기인한 결핍과 자괴감 탓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내가 속한 곳이 어디든지 인정욕구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그리고 그로인한 일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우리 내면의 인정욕구에서 기인한 것이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자아실현', '자기효능감', '성취감'. 유아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지치지 않는 '자기어필'은 인간이 근원적으로 불완전하고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일중독에 빠지게 된 것도 이것 때문이 아닐까.
오늘은 많이 지쳤다. 두 달 가까이 프로젝트가 만들어졌다가 엎어졌다. 계속 기획하고 회의하고 엎어지고, 또다시 기획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김대리의 피곤을 생각하다가 문득 그것이 뿌리깊은 '인정욕구' 때문이라고 탓을 해 본다. 이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본능과도 맞물려 있다.
어른이 되면서 넘어서야 하는 많은 벽 중에 하나는 내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벽이다. 곧 내가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할 수 있으며,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 그야말로 다수 속에 한 객체로서 살아가기 위해 어릴적 '우주의 중심이 나'라고 믿었던 '유아적 자기애'에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객체'이자 '주체'로 살아가고자 냉정한 현실에 직면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