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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Dec 24. 2020

탈룰라와 느금마 사이

귀하의 모친은 강녕하신지

* 탈룰라 :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부모님이나 가족 등을 욕하게 된 상황, 또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급히 칭찬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신조어

탈룰라, 그 전설의 시작



"응~느금마 XX XXXX~~"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에 우뚝 멈춰섰다. 문제발언의 진원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놀이터벤치에 앉은 두 명의 아이 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는 어른의 시선에 잠시 움찔하는가 싶더니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친구에게인지 나에게인지 모를 한마디를 더 보탰다. "쫄리면 뒈지시든가~" 그러든가 말든가 나머지 아이는 대꾸도 없이 게임에 열중했고 문제의 그 녀석도 곧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게임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쩌겠는가. 두 녀석 모두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데다가 북한군의 침공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준다는 그 무서운 중2(로 추정되는 학생)들인데. 이미 20년도 더 전에 중2병을 완치, 전투력을 상실한 지 오래인 동네아줌마가 뭐라 한마디를 얹은들 계도가 될 것인가. 중2가 무서워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긴 했지만 씁쓸한 기분은 내내 나를 따라왔다.




만났다하면 서로를 디스하며 친분을 다지는 견원지간의 언니가 있다. 친언니는 아니고 아는 언니인데, 가만 보면 자기 친동생보다 나를 더 막 대하는 것 같다. 우리의 티격태격은 카톡에서도 이어진다. 오프라인에서 못다한 디스의 연장전이랄까. 그날도 물건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렸더니 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니 손 진짜 못생겼네 완전 짤뚱하다ㅋㅋㅋㅋ짤뚱 짤뚱"

"우리 엄마 손인데."

"미안하다. 손매가 참 야무지시네."


사실은 내 손이 맞다고, 그냥 장난친 거라고, 나중에 털어놓고 나서야 언니는 미안함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엄마란, 가족이란 이런 존재다.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난 원수지간끼리도 차마 그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다.


탈룰라는 백선생도 멈칫하게 한다(이미지출처 : SBS 골목식당)


본의 아니게 상대의 가족을 욕보였을 때 우리는 몹시 당황한다. 실수를 수습하려 서둘러 칭찬거리를 찾는다. 누구나 한번쯤 탈룰라를 수습하기 위해 진땀흘려 본 경험쯤은 있을 것이기에, 그 순간 모두가 느꼈던 아찔함에 기반하여 탈룰라는 대세 신조어로 자리잡았다.


설령 실수라고 할지라도 상대의 가족을 건드렸다는 사실은 순간적으로 사람을 멈칫하게 만든다. 인간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우리 엄마가 그랬거든!"이라는 친구의 말에 섣불리 대거리를 하지 못한다. 어른의 권위도 권위려니와 '엄마'가 등장한 이상 토를 달면 친구의 엄마까지 싸잡아 까내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상대의 소중한 사람을 욕보이지 않으려는 마음. 상대의 가족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마음. 십대라 해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진대 그들은 왜 그리도 쉽게 넘의 엄마를 입에 올리는가. 저들끼리의 일에 난데없이 상대의 엄마를 끄집어내 저속한 표현과 함께 버무려, 상대에게 들이미는 야비함은 인간의 도리에 얼마나 위배되는 것인가. 자식이 밖에서 느금마를 들먹거리며 욕으로 사용하는 걸 알면 즈금마는 얼마나 슬플 것인가. 그런 생각들로. 좀 많이 울적해졌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느금마보다 탈룰라가 더 많이 회자되는 세상. 그렇기에 차마 선을 넘지 못하는 인간의 도리가 더 우세한 세상이라고, 중2면 한창 도리보다 간지가 우선인 나이 아니냐며, 더 크면 어디 부끄러워서라도 그런 말을 쓰겠냐며, 애써 마음을 달랬다.


"야, 엄마를 욕하면 안돼. 엄마는 우리를 낳아주신 분이야."

그리고 또 다른 날, 마찬가지로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말에 다시 희망을 품었다.

근데 초2가 커서 중2되는 건데.

이것은 희망인가, 절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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