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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May 28. 2021

2021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되었습니다

작년 12월, 브런치북 공모전 결과발표창을 띄워놓고 많이 울었습니다. 이미 떨어졌다는 걸 예감했지만 정말 떨어졌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 그렇게도 눈물이 나더군요. 그림책을 그리는 친한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탈락 소식을 전하는데 주책맞게 목구멍에서 울음덩어리가 올라오지 뭡니까. 그런데 이 동생이 자꾸 깔깔대며 웃는 겁니다. 저는 슬퍼죽겠는데 지는 웃겨죽겠다는 듯이. 그래도 질질 짜는 언니가 안쓰러웠는지 통화 끝에 동아줄을 툭 던져주더군요.

"언니, 그러지 말고 우수출판콘텐츠에 한번 넣어봐. 내가 보기엔 가능성 있어."


당시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한동안은 열패감에 사로잡혀 누가 상 받는다는 말만 들어도 심사가 뒤틀렸죠. 제 지난 2년이 수상에 실패한 원고와 함께 파쇄기에 들어가버린 기분이었거든요. 노력해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걸까, 한달 가까이 남편을 붙들고 청춘드라마의 대사같은 말들을 지껄였어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요. 진저리를 칠 법도 한데 남편은 차분하게 답하더군요.

"노력해도 실패할 수도 있지. 노력은 누구나 다 하니까. 근데 노력도 안 하면 정말 답이 없어."

...어쩌면 남편 나름대로는 힘껏 진저리를 친 건지도 모르겠어요.


한번 더 실패할 각오를 하고 한번 더 노력해보기로 했습니다. 출판사 리스트를 수집해서 닥치는대로 투고메일을 보냈죠. 300개의 출판사에 투고하는 것을 목표로요. 완곡한 거절, 단호한 거절, 긴 거절, 짧은 거절, 다정한 거절, 건조한 거절, 두괄식 거절, 미괄식 거절, 각양각색의 거절메일들이 제 메일함에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거절도 자꾸 당하다보면 익숙해져서요, 나중에는 300개의 출판사로부터 모조리 거절당한 뒤에 이 책의 출간을 깨끗이 포기하겠다는 희한한 목표가 생기더라니까요.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경로로 출간제안을 받게 됐는데요, 사람 맘이 참 이상하죠. 막상 출간제안을 받으니 자꾸 뒤가 땡기는 거예요. 이걸 책으로 만들어도 될까?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원고인가? 다시 원고를 읽어본 뒤, 이 원고는 나의 최선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출간제안을 거절하고 투고를 중단한 뒤,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출품을 목표로 퇴고를 시작했어요. 친한 동생의 말이 썩은 동아줄일지 옳은 동아줄일지 모르지만 붙잡아보기로 한 거죠.


사실 그때까진 퇴고가 두려웠어요.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죠. 전 세상에서 제 글을 제일 좋아해요.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 유일한 글이 바로 제 글이고요, 제게서 파생된 말꾸러미들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말로 다 못하게 행복합니다. 그러나 A4 90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치고 지우고 다시 써가며 읽기를 일곱번쯤 반복했을 때, 처음으로 제 글에 신물이 나더라고요.


지칠 때마다 한 작가님의 응원댓글을 떠올렸습니다. 퇴고를 거듭할수록 글이 좋아지는 것이 확연히 보이더라, 덕분에 퇴고의 과정이 마냥 막막하거나 힘들지만은 않았다는 그 분의 말처럼, 제 눈에도 분명히 보였습니다. 점점 더 좋아지는 원고를 들여다보며 초고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점점 브런치북 탈락의 상처가 아물어갔습니다. 사실 상처를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럴 시간에 원고를 한 줄이라도 더 봐야 했으니까요.


그날은 설 연휴를 하루 남겨둔 저녁이었어요. 언제나처럼 카페 구석 자리에서 원고를 일독하는데 "이제 됐다, 이대로 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대로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는 중에 A출판사의 대표님으로부터 카톡이 왔어요. 퇴고를 시작하면서, 만에 하나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으로 뽑히게 되면 꼭 A출판사와 계약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한 적이 있어요. 마침 퇴고를 마친 날 저녁, 마침 마음에 둔 곳에서, 마침 우수출판콘텐츠 접수를 앞두고 출간제안이 온 거예요. 당시엔 이런 우연이 있을까 싶었지만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 거라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일사천리로 출간계약을 맺은 뒤, A출판사의 대표작으로 우수출판콘텐츠에 출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좋은 결과를 맞았네요. 늘 다른 사람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시샘했는데 그 한 줄의 결과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뒷이야기들이 있었을지,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뭐든 꼭 해보고 나서야 깨달으려나 봅니다. 앞으로도 몸소 행하며 많이 배워가겠습니다.


더불어, 내가 나를 확신하지 못할 때 나의 가능성을 믿어준 다정하고 넉넉한 마음들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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