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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Jun 30. 2021

마이너들끼리 기대사는 아파트

나의 애잔한 이웃들

재활용쓰레기를 한아름 들고 나가다가 앞집 아주머니를 마주쳤다. 괜히 눈치가 보인다. 우리집 쓰레기 때문에 아주머니까지 지체하게 할까봐 조심스럽다. 먼저 내려가시라는 내 말에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기꺼이 열림 버튼을 눌러주었다.

"아유 재활용은 왜 이렇게 매번 많이 나오나 몰라. 내 잡고 있을게. 실어요 실어."

"아이고 고맙습니다. 얼른 할게요."

"천천히 해, 천천히."


총 세 번에 걸쳐 재활용 쓰레기를 싣고 아주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저녁인데 또 일 나가시는 거예요?"

"아니, 이거."

장난스럽게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쥐고 입에 갖다댄 뒤 고개와 함께 뒤로 까딱 넘긴다. 한잔 꺾으러 가신다는 소리다. 뒤이어 뜬금없이 한마디, 아니 두 마디를 덧붙이셨다.

"여기가 살기는 참 좋아. 집값이 안 올라서 문제지."





더없이 살기 좋은 우리 동네,
왜 이다지도 집값이 오르지 않는 것인가.


이건 우리 동네 모든 사람들의 고민거리이자 미스터리다. 불과 6년 전까지만 해도 같은 가격에 거래되었던 옆동네 아파트의 매매가가 세 배로 뛰는 동안 우리 아파트는 근근이 현상유지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들 키우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며 스스로 찾아들었지만, 인근의 다른 아파트에 비하면 만만해도 너무 만만한 매매가에 은근히 서운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살(買) 때도 좋고, 살(居) 때도 좋지만 팔 때를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남편의 회사 동료들이 치솟는 전셋값을 걱정할 때, 주택보유자인 우리집 남자는 여유롭게 권한다.

"전세를 빼서 우리 아파트로 오라니까요. 그 돈이면 세 채는 살 수 있겠네."

동료의 자폭에 팀원들은 한바탕 웃고 떠들지만, 그걸로 끝이다. 누구도 아파트 이름을 묻지 않는다. 예의상 물어본다 한들 영원히 검색조차 해보지 않을 거라는 걸 그들도 알고, 우리집 남자도 안다.


만만한 우리 아파트 매매가는 놀이터 엄마들 사이에서도 단연 화제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인근 아파트 매매가와 우리 아파트의 쓸데없이 우직한 매매가에 대해 논하다 보면 반드시 누군가는 이 말을 뱉고야 만다.

"참 살기 좋은 동네인데 말이야. 집 바로 뒤에 산 있지, 온갖 새소리하며 냇가에 가재, 도롱뇽까지 살고. 이렇게 자연을 누리고 사는데 웬만한 마트에 초등학교, 고등학교까지 다 있잖아. 문명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동네, 아 이렇게 살기 좋은 동네가 또 어디 있어."

둘러앉은 이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이유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중학교랑 학원가는 겁나 멀지만.'

'세대수가 적어서 관리비는 좀 세지만'

'도보가 울퉁불퉁해서 유모차는 꿈도 못 꾸지만'

'지하철은 고사하고 버스 배차시간마저 길어서 자차가 필수지만'

'가끔 치킨집이 전화를 안 받아서 걸어가서 주문하고 받아오지만'

이런 말은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그런 건 각자 집에 가서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이너다

집값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명료하다. 대개의 사람들이 우리 동네와 같은 주거환경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즐비한 학원가, 많은 세대수, 잘 정돈된 도보, 편리한 교통편, 다양한 상가를 갖춘 도심의 조건을 고작 새소리와 가재, 도롱뇽 따위와 맞바꾸지 않는다. 제 아무리 자연이라 해도 문명의 편의를 침해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다수 사람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즈그들만의 가치와 부등가교환하며 사는 우리동네 사람들은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마이너들이다. 비록 집값하락에 따라 하나같이 비자발적 마이너로 전락해가는 실정이지만 한때는 마이너를 자처하며 이곳을 택한 사람들이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알고, 홀아비 사정 과부가 알고, 마이너 사정은 마이너가 알아준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고로 매매가에 반영되지 않는 주거요소를 흐뭇해하며 이 동네에 들어와, 이제 다른 동네로의 진입도 쉽지 않게 되어버린 마이너들은 집값상승을 기대하고 살지는 못해도, 이만한 동네 또 없다는 위로를 주고받으며 서로 기대고 산다. 애잔하기 짝이 없는 마이너들의 연대인 셈이다.


마이너들끼리는 갑질이 없다. 코딱지만한 동네에선 관리사무소, 병원, 약국, 빵집, 세탁소, 카페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다. 당장 오늘 우리 아파트의 미화소장님이 일을 그만두기라도 하는 날에는 재활용 수거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며, 행여 분식집 이모가 마음이라도 상해 장사를 접게 된다면 하교길 아이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학원으로 향할 것이다. 가끔 개똥 안 치우는 마이너, 또는 주차매너가 개똥같은 마이너에게 울컥할 때도 있지만 상식선의 마이너들은 대체로 서로를 아낀다.






"아유, 제가 할게요. 손 더럽히지 마세요."

"여러 번 왔다갔다하려면 힘들어. 같이 들고 가."

괜찮다는데도 기어이 재활용 상자 하나를 빼앗아 들고 씩씩하게 앞장서 가던 아주머니는 이번엔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늦췄다. 글쎄 그걸 과거의 영광이라 해도 좋을지. 과거의 실책이 더 적절한 표현은 아닐지.

"나 여기 오기 전에 살던 S아파트는 요새 8억까지 올랐대. 지금 그거 팔고 여기로 왔으면 집을 세 채는 샀을텐데, 하나는 나 살고 두 개는 세놓고 했으면 얼마나 좋아. 아유 이제 와서 말해 뭐해. 다 소용없는 얘기지 뭐."


해봐야 소용없는 얘기를 굳이 입 밖으로 꺼내놓고 아주머니는 쓰게 웃었다. 어디 이 사람 좋아하고 말 많은 아주머니만 그럴까. 부질없는 과거의 실책을 꾸역꾸역 돌아보며 안타까워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며 미래를 알지 못하는 인간 본연의 찌질함이다.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멀지 않은 앞집 아주머니의 하소연이 허공에 흩어져가는 것을 차마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나는 주섬주섬 위로의 말을 조합해 아주머니께 건넸다.

"여기 사시는 동안 좋은 일 많았잖아요. 앞으로도 좋은 일 있으실 거예요."

"그럼, 애들 다 이쁘게 잘 컸으니까."

본래 내 몫이었던 재활용 상자를 내려놓은 뒤, 대신 나의 옹색한 위로를 흔쾌히 받아들고 아주머니는 홀가분하게 떠났다. 남은 시름은 친구분들과 한잔 꺾으며 마저 씻어내시길. 703호 마이너가 704호 마이너를 위해 잠시나마 간절히, 빌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직방 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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