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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Oct 28. 2021

아이가 뺑소니를 당했다

뺑소니에 대처하는 법륜스님과 잔다르크의 자세

나는 당신들이 누군가의 부모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이를 차로 치어놓고 그냥 가버린, 어른으로서 최소한의 조처도 취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면책권을 주어버린, 그리고 억세게 운이 좋아 마침내 완전범죄에 성공해 잠재적 범죄자가 되어버린, 당신들이 누군가의 부모라면 이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갈 일이 너무 막막하다.



제목 : 처음으로 차에 치인 날

무심코 아이가 쓰고 있는 일기의 제목을 보는 순간,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하라야, 차에 치였어?"

"응. 아까 오르막길에서 킥보드 끌고 올라오다가 내려오던 차랑 부딪쳤어."

"세게 부딪쳤어? 쿵이야, 툭이야?"

"쿵하고 툭 중간 정도야."

"헉. 혹시 부딪치면서 몸이 넘어갔어?"

"응. 뒤로 벌렁 누웠어. 그래도 등까지만 눕고 머리는 바닥에 안 부딪쳤어."


아이의 몸을 이곳저곳 살폈지만 타박상이나 찰과상은 없었다. 특별히 아픈 곳도 없다고 했다. 천만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나니 황당함이 밀려왔다. 단지 내에서 아이를 치고 연락도 없이 그냥 가버렸다고? 혹시라도 연락처를 주진 않았는지, 네 연락처를 묻진 않았는지 아이에게 물어봤지만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앞을 못 본 잘못이 있으니까, 서로 사과했고 난 괜찮은데? 그렇게 나쁜 사람들 아니야. 아저씨랑 아줌마가 내려서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보고 미안하다고도 하셨어."

속으로만 '아니야. 그 아저씨 아줌마 어느 정도는 나쁜 사람 맞아.'라고 생각하면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데 왜 엄마한테 바로 말을 안 했어?"
"아 엄마 잊어버렸어. 집에 오니까 어마어마하게 맛있는 냄새가 나서."

그날 점심은 탕수육이었다. 오랜만에 큰맘 먹고 튀겨준 탕수육이 이렇게 뒤통수를 때릴 줄이야. 사고를 잊을 정도로 황홀한 점심을 차려낸 내 손이 원망스러웠다.

오라질 탕수육, 괴상하게도 오늘은 냄새가 좋더니만...


시간은 밤 여덟 시. 오전 11시 즈음으로 추정되는 사고발생시각에서 이미 아홉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더 늦기 전에 경비실로 쫓아가 해당 시간대의 CCTV열람을 요청했지만, 임의로 보여줄 수 없으니 관리소장이 출근하는 월요일까지 기다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장 경찰을 대동해 CCTV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꾹 눌렀다. 관리사무소도 절차가 있고, 입장이 있겠지. 일단은 아이가 무사하고, 씨씨티비는 언제든 볼 수 있으니 기다리자. 아직 신고까지는 하지 말자는 아이아빠의 만류도 한몫했다.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보자는 내 말에도 아이아빠는 일단 지켜보자는, '잠시 대기'의 입장을 고수했다. 10년을 같이 살았지만 저 유유자적함에 새삼 적응이 되지 않는다. 자기 아이가 차에 치였다는데 뭐가 저렇게 침착하고 어쩜 저렇게 기다린단 말인가.


고작 주말 이틀의 기다림도 힘들었던 나는 월요일 아침 아홉 시가 되자마자 관리사무소를 찾았다. 당장은 일이 많아 확인이 어렵고, CCTV 확인 후 전화를 주겠다는 말을 믿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 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어 한 차례 더 전화를 걸었고 "좀 느긋하게 기다려달라"는 답변에 기가 막혔지만 그래, 월요일이니까 밀린 일이 많겠지, 한 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늦어도 내일까지는 꼭 확인해달라고 신신당부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저희가 지금 시간이 나서 CCTV를 확인했는데요..."

한 시간 후,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생각보다 빠른 응대에 거듭 감사를 표하는 내게 관리소장은 머뭇머뭇 이해할 수 없는 말들만 늘어놓았다.

해당 구역의 CCTV가 정확하게 사고현장을 담아낼 수 없는 각도다.

CCTV가 녹화되고 있지 않았다는 걸 오늘(25일)에서야 확인했다.

15일부터 24일까지 단지 내 CCTV 기록이 없다.

업체에 복구문의를 해보겠지만 어려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이렇게나 무책임한 말이었던가. 관리사무소가 '관리'의무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입주민이 피해를 보게 됐는데 누구도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사고접수를 위해 출동한 경찰은 아파트 단지 내 사고이니 금방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지만, 잠시 후 나온 조사관은 CCTV기록이 없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난감해했다. 설상가상으로 출차기록도 없는 데다가, 해당 시간대의 입차기록은 확보했지만 아이가 차 색깔도, 차종도 기억을 하지 못하니 차량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거였다. 한숨이 나왔다. "이런 경우에 관리사무소의 책임은 없느냐"는 나의 물음에 조사관도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문데 안타깝다"며 유감을 표했다. 


경찰에서 '찾기 어렵다'고 말한 이상, 범인을 잡을 확률은 희박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가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았다. 관리사무소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아파트의 치안은 엉망이다. CCTV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쉽게 잡을 수 있었던 범인을, CCTV 오작동으로 놓친 것이다. 이 상황에서 관리사무소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관리소홀에 대한 책임과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관리사무소에 항의하겠다고 선언하자 아이아빠는 언제나 그렇듯 나를 말렸다.

"나도 어이가 없지. 근데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봤자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돈이라도 받아내고 싶은 거야? 그건 아니라며. 얻어낼 것도 없는데 그렇게 피곤한 싸움을 끝까지 할 이유가 없다는 거지. 네가 아무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관리사무소에선 결국 '돈 내놓으라'는 말로밖에 안 들을 거라고."


평상시엔 믿음직한 아이아빠의 조언이 오늘은 전혀 와닿지 않았다. 나한텐 싸우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저렇게 조목조목 잘 따지고 들면서, 왜 타인과의 분쟁상황에서는 늘 법륜스님이 되는 것인가. 도대체 왜 자기가 나서서 관리사무소의 입장을 나에게 이해시키고 있느냔 말이다. 분쟁상황에선 일단 나부터 말리고 보는 게 아이아빠다. 저럴 거면 오징어를 각시로 삼을 것이지, 나도 고등교육과정을 마친 사회인으로서 충분히 앞뒤 상황을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려는 것인데, 덮어놓고 말리는 게 불쾌하기까지 했다.


남는 것 없는 소모전으로 힘들어하지 말고, 속히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아이아빠의 입장.

증거자료도 없고 큰 피해사실도 없으니 사건을 마무리할 수 밖에 없는 경찰의 입장.

자신들의 과실이지만 가급적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관리사무소의 입장.

모두의 입장을 이해한다. 나도 잊고 싶다. 잊고 편해지고 싶다. 그러나 '잊어버리자, 아이가 무사함에 감사하자' 싶다가도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단지 내에서 아이가 유괴를 당해도 우리 아파트엔 씨씨티비 기록이 없을 수 있겠구나'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싹해졌다. 남는 게 있든 없든 나는 할 일을 해야겠다.


퇴근한 아이아빠에게 병원에 동행할 것을 요구했다. 병원 가서 뭐라고 말하느냐, 애가 겉보기에 멀쩡한데 병원에서 뭘 해줄 수 있겠느냐,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애들은 회복력이 좋아서 크게 다치지 않는다, 어제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아이아빠를 향해 정색을 했다.

"하라아빠, 나는 그 말을 의사한테 듣고 싶어. 애가 차에 치었다잖아."

아이아빠는 더 말을 보태지 않고 차키를 챙겼다. 병원 진료실에서도 아이아빠와 같은 말을 했다.

"지금은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구토하거나 처지지 않는지 잘 지켜보세요. "

이미 알던 사실을 확인받았을 뿐이지만, 병원을 나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일단 아이는 멀쩡하다. 그 사실 하나로 많은 불안이 해소됐다. 하지만 말끔히는 아니었다. 아직 남아있는 불안을 정리해봤다.

15일부터 24일까지 씨씨티비 기록이 없는 구체적인 경위가 무엇인지.

이런 경우에 관리업체도 관리소홀의 책임이 있는데 관련규정이 존재하는지.

관련규정이 없다면 재발방지를 위해 어떤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지.


이 불안을 관리실에 직접 이야기할 것인가. 대놓고 잘못을 지적하면 움찔하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게 사람심리다. 또 관리실에 얘기한들 얻을 수 있는 건, 그저 씨씨티비 기록이 없는 경위를 더 자세하게 알게 되는 것 뿐이다. 내가 원하는 건 CCTV 관리소홀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이 불안을 피력해야 하나. 이 동네에서 20년 가까이 산 이웃을 통해 아파트 동대표이자 단지 이장님 번호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000동 000호에 사는 000라고 합니다. 이렇게 불쑥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아파트 씨씨티비 관련해서 이장님께 상의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괜찮으신 시간에 전화드려도 될까요?


문자를 보내자 곧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아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말씀드렸다.

"피해보상은 원하지 않는다.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아이가 사라져도 아파트 CCTV에 기록되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게 아닌가. 재발방지를 위해 관리규약과 책임소재를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의견에 이장님은 적극 공감하며 위로를 표했고, "아이가 괜찮은지 잘 지켜보다가 문제가 생기면 꼭 연락달라, CCTV누락 건에 대해서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일이니 철저히 알아보고 피드백을 주겠다"고 약속해주셨다. 다시 한번 "확실한 재발방지대책을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개운하다. 이제야 몸에 피가 도는 것 같다. 사흘 내내 뚝 떨어졌던 입맛이 돌아오는지, 참을 수 없는 허기를 느꼈다. 부랴부랴 저녁준비를 시작했다.


저녁식탁을 치우고 아이아빠와 마주앉았다.

"하라아빠, 이게 나야. 나를 위해서 내려놓으라는 당신 말이 다 맞지만 나는 그게 안돼. 당신이 마음의 평화를 위해 덮고 넘어가는 것처럼, 나는 마음의 안정을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람이야. 당신한테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 그냥 '왜 저렇게 피곤하게 살지?' 라는 마음을 나한테 내보이지마. 내가 당신의 관대함을 존중하는 것처럼 당신도 나의 집요함을 이해해줘."


어쩌겠는가. 아직까지는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 게 그나마 두고두고 덜 피곤한 길인 것을.

아이아빠가 '타인을 바꿀 수 없으니 너의 마음을 바꿔라'를 외치는 차세대 법륜스님인 것을.

나라는 사람은 부당함에 항변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마음이 놓이는 보급형 잔다르크인 것을.

설령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해도, 내 마음상태가 조금이라도 안정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귀찮음을 무릅 쓰련다. 그리고 서로의 생긴 모습을 받아들이며 앞으로도 잘 살아보련다.


오늘도 네가 참아라.

오늘도 내가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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