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엄마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필 Dec 29. 2021

종이 한 장

대단한 엄마라서가 아니라

첫 책이 나오고, 판매지수를 확인하기 위해 눈을 떠온 지도 어언 두 달째. 가뭄에 콩 나듯 올라오는 리뷰를 발견할 때마다 매일 새롭게 가슴이 뛴다. 감상도, 지적도 모두 고마울 따름이다. 각양각색의 리뷰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엄마(저자)가 대단하다"는 말인데, 이런 감상에 대한 나의 감상은, 한마디로 민망하다.


남편은 내 글을 잘 읽지 않는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홈메이트로서, 내 생활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동시에 내 글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멘탈을 보호하기 위한 그의 결정을 존중하며 지지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제 아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떡하니 나와 있으니 모처럼 읽을 맘이 들었던 모양이다. 일주일에 걸친 독서(라고 쓰고 검열이라고 읽는다)를 마친 그의 감상은 매우 간결하고 명료했다.

"잘 읽히네."

그리고 날카로웠다.

"근데 니는 왜 니 팁을 실천 안 하노?"

책 중간중간 삽입된 (본인의) 육아팁을 왜 몸소 행하지 않느냐는 것.



맞다. 요즘의 나는 '책 속의 나'와 퍽 다른 엄마다. 그렇다고 거짓으로 책을 썼느냐고 묻는다면, 보잘 것 없는 내 명예를 걸고 말하건대, 없는 얘기를 지어쓸 만큼의 재주가 없다. 동화도 실화 바탕으로 쓰는 마당에 에세이를 지어낼 여력 따위 있을 리가.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본인 책에서는 '대단한 엄마' 이미지를 구축해놓고, 왜 책과 언행불일치한 삶을 살고 있는가.



자체분석 결과, 이유는 세 가지로 좁혀진다.


1. 아이의 성장

아이가 많이 컸다. 이제 길게 시간을 들여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사회적 합의와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성장했다. 여전히 또래에 비해 부족한 면도 있지만, 그건 어느 아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래보다 뛰어난 면도, 부족한 면도 고루 가지고 있는 모습이 퍽 열 살짜리 아이답고, 그래서 마음이 놓인다.


2. 뉴빌런 등장

아이의 동생이 새로운 빌런으로 떠오르면서, 아이에게 먹혔던 훈육법이 아이의 동생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을 깨닫고 당황하는 중이다. 아이의 동생은 너무나 실리주의적이다. 하나를 제시하면 열을 요구하는 협상의 대가이며, 남이 뭐라든 크게 개의치 않는 강철멘탈의 소유자. 이런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현실육아, 녹록치 않다.


3. 엄마의 방심

더이상 전처럼 많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아이와, 실익이 없으면 어떤 설명도 통하지 않는 아이의 동생. 묘하게 다른 듯 닮은 형제 사이를 오가며 '설명'보다 '버럭'을 택하는 빈도가 확연히 늘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눈꼬리가 올라가고 목소리를 높이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나조차 내 책을 읽으면 반성과 자책이 된다. 그러나 감화는 좀처럼 되지 않는다. 퇴고와 교정을 거치며 스무 번도 넘게 읽은 덕에 내성이 생긴 탓이다.


책이 쓰여지던 '2년 전'과는 퍽 달라진 상황과 그로 인해 느슨해진 마음가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오늘 나는 이토록 언행불일치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2년 전의 나에게 보내지는 찬사, '대단한 엄마'라는 수식어가 낯설고 민망하다. 아이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맺을 수 있었던 건, 내가 대단한 엄마라서가 아니다.




아이가 세 살 적, 아이의 유별남으로 힘들어하는 내게 친정엄마는 그랬다.

"별난 아아(애)나 순한 아아나, 키우기 힘든 거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맞다. 엄마로 살며 여태 많은 엄마들을 만나봤지만 "우리 애는 손이 하나도 안 가요. 엄마가 할 일이 없어요."라는 엄마는 한 명도 없었다. 모든 아이는 나름의 별남이 있고, 집집마다 남 모를 속사정이 있더라.


초등학교 소풍날 아침, 돗자리를 손에 들고 나서는 내게 엄마는 또 그랬다.

"놓고 가라. 먼 길 갈 때는 종이 한 장도 짐이다."

옳다. 고작 종이 한 장도 손에 들면 여정 내내 걸리적거리고 귀찮은 짐이 된다. 그런데 부모가 되고 나면 남은 인생길 내내 한 인생의 손을 잡고 걸어가야 한다. 하물며 나의 육아가 남들보다 유독 무겁게 느껴진다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남들보다 더 주어진 무게, 그것이 비록 종이 한 장의 무게라 할지라도 부모인 자에게는 결코 가볍지가 않다.


그런데 또 옛어른들은 그랬다.

"백지장(종이 한 장)도 맞들면 낫다"고.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썼다. 더해진 종이 한 장의 무게를 어쩌지 못해, 마음에 돌덩이를 안고 사는 누군가에게 우리의 이야기가 가서 닿기를 원했다. 그렇게 그 종이 한 장, 맞들고 싶었다.

이미지 출처 : kr.freepik.com/photos/people(pressfoto - kr.freepik.com)


누군가는 남의 불행으로 위안을 얻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고도 하던데.

우리를 보면서 얼마든지 위로를 받아도 괜찮다.

우리는 이미 괜찮아졌으니까.

글로 쓰여진 불행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니까.


당신의 불행은 곧 나의 불행이므로,

나의 기쁨이 당신에게 닿아 기쁨이 되기를.


그러니까, 이 책을 반성과 자책의 연료로 쓰기보다는

오롯이 위로와 희망만을 취하시라고,

그렇게 오늘 하루도 행복에 조금 더 가까워지라고,

이름모를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다.

오늘 나부터도 그럴테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