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의 시간은 인생에 꼭 필요한 경험일까?
주말 오후엔 일주일치 장을 보러 나간다. 남편은 운전을 한다. 애들은 뒤에서 지랄을 한다. 지랄이라는 건 어감이 굉장해서 그렇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너무 웃거나(좋거나) 너무 울거나(싫거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몸부림과 소음이다. 주로 애들이 깨어있는 동안에는 늘 이렇다. 애들이란 다 그런 것인지. 우리 애들이 그런 것인지.
내 두 아들밖에 안 키워봐서 단언할 수 없지만 우리 애들이 지랄을 할 때 아들 친구엄마나 내친구아들 엄마(그러니까 내친구)들의 반응을 보면 애들이 다 그런 건 아닌가보다. 다른 집 애들 지랄이 그냥커피라면 우리집 애들 지랄은 TOP랄까. 이렇게 하루에 열시간 이상 TOP급 지랄에 꾸준히 노출되다 보면 이 난리통에도 생각에 잠기는 것이 가능해진다. 남편의 의도대로 부드럽게 감기는 핸들을 보며 운전연습에 대한 부담을 느낌과 동시에 머릿속에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마침내 하나의 의문이 선명하게 자리잡았다.
아이를 키우는 건 인생에 꼭 필요한 경험일까?
내 아이는 여러모로 대단한 아이다. 체격이나 성향부터 목청까지...모든 게 또래보다 두드러진다. 맹세컨대 이건 나의 평가가 아니라 타인의 평가다. 엄마인 나는 그저 인정할 수밖에. 이 아이로 인해 나는 곤란을 많이 겪었다. 아이가 아니었더라면 겪지 않아도 됐을 곤란이다.
이전에 나는 "왜 내가" "내가 왜"로 시작하는 문장을 참 많이 구사했다. 타인이나 상황으로 인해 촉발된 어떤 불편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하필 나에게> 향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부당함에 대해서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건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는 일이라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엄마를 비롯해 나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충고했지만 부당함을 참는 일이야말로 앞으로의 시간을 지난 일에 대한 울분과 분노로 갉아먹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따지는 일이 비록 아무 소득없이 끝날지라도, 심지어 사과 한마디 못 듣더라도 내가 상대로 인해 기분이 상했다는 걸 상대에게 알리는 게 나에게는 아주 중요했다. 그러나 나도 안다. 이런 성격은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든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죽어도 직진, 정면돌파다. 그렇기에 나는 애초에 문제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했으며 그런 상황을 만들고 다니는 경우 없는 인간들을 극도로 혐오했다. 도대체 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나는 그들과는 다른 이 사회의 건실하고 예의바른 구성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다 아이를 낳았다. 아이라는 건 경우없음의 집합체다. 저밖에 모르고 욕구에 충실한 데다가 힘조절도 안된다. 산만하고 충동적이다. 아이가 세살 즈음부터 사과할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내가, 나의 아이가 남에게 피해를 주다니. 내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다니. 상대의 감정이 나에게 채 닿기도 전에 움츠러들었다. 반사적으로 사과를 했다. 아이에게도 사과를 가르쳤다. 어린 아이니까, 나아지겠지. 그럼 나아지고 말고.
아이가 일곱살이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굽실거렸다. 나가기만 하면 사과할 일이 생겼다. 아이는 몸집이 크다. 일곱살이라는 나이도 적은 나이가 아닌데 체격으로만 보면 아홉살은 되어보이니까 사람들의 눈빛도 더 빨리 우리에게 날아와 꽂혔다. 그게 그렇게 서러웠다. 분명히 내 아이가 남에게 피해를 줬는데도 이 아이의 성향과 행동의 맥락을 아는 나로서는 녀석을 마냥 나쁘게 볼 수만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사과를 해도 싸늘한 반응이 나를 뚫고 아이에게까지 전해지면 두배 세배 상처가 되었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남에게 피해를 주고 사과를 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도도할 수 없었다. 그전까지 나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무결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착각을 했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않고 나 또한 피해받지 않고 언제까지나 살아갈 줄 알았는데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은 도대체가 예측불가능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예측불가능하고 충동적인 아이를 많은 사람들이 용인해주었다. 엄마가 시켜야만 겨우 입을 떼는 서툰 아이의 사과에도 마음을 열고 웃어주었다. 아이를 향해 말 한마디, 미소 한번 더 건네주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나는 여태 아이를 키워왔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전의 내가 완벽했기 때문에 어울려 살아왔던 것이 아니라 나의 흠결도 누군가 이렇게 감싸준 덕분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정말 감사한 것은 아이를 키우며 받은 도움과 관용이 자연스럽게 내 안으로도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이가 있을 때에나 없을 때에나 다른 사람의 상황을 살피게 된다. 혹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내가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진 않은지. 누군가와 마찰이 생기면 순간적으로 상하는 감정을 잠시 뒤로 하고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본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땐 웃으며 행동의 이유를 물어보는 여유도 생겼다. 그렇게까지 하고 나면 세상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란 건 그리 많이 남지 않더라.
아이를 키우며 나는 점점 사그러들고 두 아이의 엄마만 남았다는 절망감에 빠져있던 나날도 있었는데 사실은 한 인간으로서 폭풍성장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나 보다.
십여년 전 노량진 단과학원을 다니며 재수를 했다.
수업마다 강의실이 바뀌는 탓에 매시간 기를 쓰고 맨 앞자리를 사수하곤 했는데 나보다 어린 남자애 하나가 제 자리를 못 맡아 약이 올랐는지 "하여튼 한국아줌마들 자리맡기는 알아줘야돼"라고 별 생각없이 뱉은 한마디에 눈물샘이 터져서 수업 내내 앞줄에서 눈물을 흘리며 필기를 했더랬다. 내가 그렇게나 애기였다. 울리기도 쉽고 밟기도 쉬운. 일년 내내 친구 하나 없이 밥도 혼자, 공부도 혼자, 수업도 혼자 들었다. 그렇게 일년을 노량진에서 성장한 애기는 대학진학 후, 동대문에 옷 바꾸러 갈 때 친구들이 꼭 대동하고 싶어하는 쎈애기가 되었다. 나의 전투력을 키운 건 8할이 노량진이다.
그럼에도 재수는 한동안 내게 아픈 기억이었다. 막상 해보니 생각처럼 최악은 아니었지만 하지 않았더라면 더더 좋았을 거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꼭 그 시기에 그렇게 다쳐가며 아파가며 전투력을 키웠어야 했을까? 몰랐어도 좋을 세상을 너무 빨리 보는 바람에 무리해서 어른흉내를 냈던 건 아닐까?
아이를 키우는 건 인생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경험일까?
아이를 키워도 그만, 키우지 않아도 그만이라면 나에게 지금 이 육아의 시간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 걸까?
잘 모르겠다.
멋모르고 너무 쉽게 시작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떠밀려서 시작한 재수는 나에게 전투력을 남겼다.
멋모르고 시작한 육아는 나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