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가 길어 슬픈 짐승이여
뒤끝 : 좋지 않은 감정이 있은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
나는 뒤끝이 길다. 마음에 남은 앙금을 뜻하는 그 '심리적' 뒤끝 맞다. 한때는 물리적 뒤끝까지 길었다. 언제나 남들보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은 더 튀어나와 있던 물리적 뒤끝과는 2023년 5월, 외과적 수술로 작별을 고했다. 물리적 뒤끝보다 지독한 심리적 뒤끝은 언제쯤 끊어낼 수 있을런지.
뒤끝이 길면 피곤하다. 나에게나 주변 사람에게나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기억력이 좋은 자의 숙명이려니 받아들이고 살다가도 한번씩 현타가 온다. 나의 뒤끝은 정도가 심하다. 7-8년 전의 일을 끄집어내어 기어이 사과를 받아낸 적도 있다. 그것도 그저 스쳐 지나간 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그러고 보니 그 사람도 항문외과의 의료진 중 한 사람이었더랬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동구가 슬슬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던 2013년 경의 어느 날, 한 시간 반 거리의 항문외과를 찾았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두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혹시나 오해를 살까 미리 밝혀두는데 뒤끝 버튼은 여기서 눌린 게 아니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급성출혈로 촌각을 다투는 환자가 응급수술 중이었고, 파리한 얼굴로 대기실에 앉아있는 환자의 아내분은 공교롭게도 내가 아는 이였다. 우리는 그간의 사정을 나누며 한마음으로 환자가 무사하길 빌었다. 다시 말하지만, 두 시간의 기다림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침내 무사히 수술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렸고,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내가 들어갈 차례였다. 어련히 알아서 불러주겠지, 진료실을 등지고 앉아 계속 아내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어? 잠시만요!"
갑자기 아내분이 다급한 외마디 소리를 냈다. 그제야 진료실 쪽을 돌아보니 나보다 한참 늦게 온 다른 환자가 먼저 진료실에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어안이 벙벙해 말을 잃은 나 대신 아내분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분이 먼저 들어가셔야 돼요!"
잠시 움찔하는가 싶던 간호사는 잠깐 사이 태연하게 고쳐먹은 얼굴로 답했다.
"저 분이 먼저예요."
"아니에요. 여기 이 분이 제일 먼저 오셨어요! 두 시에 오셨는데 저희 남편 수술 때문에 지금까지 기다리신 거예요!"
더 이상 나의 권리를 위해 타인이 싸우게 둘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이는 방금 남편의 응급수술이 잘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야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한 환자 보호자가 아닌가.
"저 오후 2시에 예약했고, 두 시간째 기다렸는데...이번이 제 차례 아닌가요?"
지극히 당연한 이의 제기에 간호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새침하게 답했다.
"저 분이 더 앞 시간에 예약하셨어요."
"제가 오후 첫 진료로 예약했는데, 어떻게 저보다 앞 시간에 예약을 할 수가 있어요? 그럼 저 환자분은 오전 예약인데 오후 네 시가 다 돼서 오셨다는 얘긴가요?"
간호사의 미간이 팍 일그러졌다. 곤란한 듯 잠시 눈알을 굴리던 그는 갑자기 픽 웃음을 흘렸다.
"그럼 뭐 어떻게 해드려요? 저 분 나오시라고 해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이미 진료중이셔서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알고 보니 순서를 새치기한 환자는 해당 간호사의 지인이었다. 제 지인이라는 이유로 간호사 마음대로 진료 순서를 바꾼 것이다. 그래놓고 뻔뻔하게 거짓변명으로 일관했을 뿐 아니라, 모든 게 들통난 뒤에도 사과 한 마디 없었다. 기가 막혔지만,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 잘못 없는 아내분이 괜히 안절부절못하며 몹시 미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써 웃으며 그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병원을 나섰지만, 제대로 항의하지 못한 억울함은 오래도록 가슴에 맺혔다.
그로부터 7-8년이 지나 생각지 못한 곳에서 우연히 그 간호사를 만났을 때, 나는 기어이 그때 일을 끄집어내 그에게서 반쪽짜리 사과-기억은 안 나지만, 그렇게까지 속상하셨다니 제가 죄송합니다-나마 받아내고야 말았다. 그제야 마음이 풀렸다. 떠올릴 때마다 어제 일처럼 분통이 터졌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미운 마음이 일시에 가라앉았다. 나의 뒤끝이란 얼마나 집요하고 또 어찌나 얄팍한지.
문득 떠오르면 미안해진다. 나의 집요함에 질려 허겁지겁 사과를 건네고 허둥지둥 멀어져 간 타인들에게. 아니, 사실 그렇게까지 미안하진 않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그이가 저지른 무례에 비해 관대한 처사였다고 생각한다. 사과도 했는데 이렇게 글로 박제까지 할 건 무어냐,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 가장 유감인 건, 바로 나 자신이니까. 뒤끝이 길면 정말이지 피곤하다.
이번 뒤끝이 한 달짜리임을 감지했을 때, 나는 갈등했다. 뒤끝의 상대가 선이언니였기 때문이다.
선이언니, 그이는 누구인가. 30대에 만난 선이언니는 나와 띠동갑이지만 나이로 거들먹거리는 법이 없고, 세상 둥근 사람이지만 다른 이의 모남을 고까워하는 법 없는, 나의 오랜 이상향이다. 나의 되바라짐을 허허 웃어넘기고 나의 까칠함을 오냐오냐 다독여준, 몇 안 되는 참어른이다. 심리적 어부바도 어부바로 친다면, 30대 이후의 나는 어느 정도 언니가 업어 키웠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언니가 나의 치질 소식에 좀 웃었기로소니 이렇게까지 서운할 게 무어냐. 선이언니가 어떤 언니냐. 나의 온갖 패악과 건방을 다 받아준, 흡사 친정 같은 언니가 아니냐. 선이언니 앞에서나 어리지, 나이로 치면 나도 어엿한 성인인데 어른의 소갈딱지가 이래서야 될 말이냐. 아무리 나를 다독여봐도 서운하다. 너무 서운하다.
'놀리려고 웃었겠어. 언니도 웃고 나서 바로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래, 수술 받는다는 말만 듣고 놀랐다가 그 수술이 치질 수술이라고 하니까 순간 웃음이 터질 수도 있지.'
'근데...전화통화였으면 모를까...카톡으로 굳이 웃을 필요는 없지 않나...? 난 진짜 많이 아프고 무서운데...'
울컥. 서른 여섯 살은 지하철에서 울지 않는다. 그것도 동구 때문에 비웃음을 샀다고 눈물을 흘리는 건 서른 여섯답지 못한 행동이다. 가까스로 눈물을 삼키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도시의 유명항외과 원장님은 적극적으로 수술을 권하지 않았다. 차라리 동구를 보자마자 "이건 당장 수술해야 해!"를 외치며 매스를 꺼내 들길 바랐는데, 그는 "너 같은 환자는 하루에도 열두 명은 본다"는 듯 심상한 얼굴로 칼자루를 내게 넘겼다.
"수술을 할 지, 잘 관리하면서 약물로 치료할 지는 본인 선택이에요. 어떻게 하실래요?"
이것은 희망인가 절망인가. 그저 망한 동구를 추스르며 망연자실 진료실을 걸어나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동구는 세상구경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난 언제까지 망한 동구를 달고 살아야 하는 걸까. 그냥 당장이라도 수술해달라고 드러누울 걸 그랬나. 복잡한 심경으로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누웠다. 종일 외출로 부어오른 동구의 통증에다 선이언니에게서 받은 내상까지 더해져 한참을 시름시름 앓았다.
저녁 즈음 다시 선이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됐니?"
"일단 수술은 안 하고 좀 지켜보기로 했어요. 근데 지금도 좀 많이 아파서..."
"하하하하하하하!"
아프다는 말에 터지는 언니를 이해할 수 있다. 말 속에 숨어 있는 '동구'를 떠올리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겠지. 하지만 언니를 이해한다고 해서 언니에게 느낀 서운함이 희석되지는 않았다.
외상과 내상으로 점철되어 꿈자리도 뒤숭숭한 밤을 보낸 뒤, 결국 나는 선이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전화로 말했으면 좋았겠지만, 또 다시 동구 얘기를 하다가 나는 울고 언니는 웃게 된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의 강을 건너게 될 지도 몰랐다. 언니가 준 내상과는 별개로 여전히 언니가 좋았다.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서운한 마음을 털어내고 꽁기한 카톡 따위 안 보내는 편이 안전하겠지만, 말했잖은가. 뒤끝이 긴 자는 피곤하다. 지르고 후회할지언정 구태여 피곤한 길을 택한다.
역시 언니는 언니였다. 언니라면 이렇게 말해줄 줄 알았다. 언니가 언니다워서, 찌질한 동생은 더 많이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뒤끝이 사람잡는다. 물리적 뒤끝이 말썽을 부릴 땐 심리적 뒤끝도 미쳐 날뛴다. 전국의 뒤끝 환자를 대신해, 그 주변인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미안합니다, 안팎으로 뒤끝이 길어서. 미안합니다. 치질이면서 찌질하기까지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