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둘째는 귀엽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과 복스럽게 토실한 볼의 조합이 가히 환상적이다. 그의 어미되는 자로서 하릴없이 관대한 평가임을 감안하더라도, 그는 상당히 귀여운 축에 속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좀처럼 둘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초면엔 예의상 약간 주저하다가도, 안면을 트고 나면 결국은 수줍게 묻고야 만다. "볼 한 번만 만져봐도 되니?"
상대가 누구든, 만난 지 얼마가 됐든, 둘째는 선선히 한쪽 볼을 내어준다. 귀여운 것을 탐하는 그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는 듯이. 그 되도 않는 의젓함까지 더해져 귀여움은 배가 된다.
"선생님 옆에서 밥 먹는 그 복스러운 친구는 이름이 뭐예요?"
둘째의 3학년 담임 선생님이 옆 반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그 복스러운 친구는 물론 우리집 둘째다. 급식 시간마다 야무지게 밥을 두 번씩 리필하면서도 악착같이 선생님 옆자리를 사수하니 절로 눈에 띌 수밖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밥을 두 번씩 리필'한다는 것이다. 그 긴 줄을 뚫고 밥을 한 번 더 받기 위해 둘째는 첫번째 밥은 마시듯 삼키고, 줄이 너무 길어지기 전에 두번째 밥을 받아 비로소 밥답게 음미한다. 3학년 2학기 마지막 점심을 먹던 날엔 한동안 학교밥을 못 먹는다는 아쉬움에 밥을 세 그릇이나 먹는 기염을 토했다.
학교 급식이 맛있어서 하루가 즐겁다는 둘째. 학교 입학 전까지는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당연하게도 그는 '유치원 점심밥' 마니아였다. 일곱 살이 되던 해,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오후 간식을 먹게 되면서 둘째의 하원길 스몰토킹 주제는 언제나 오후 간식이었다. 오후 간식 메뉴가 무엇인지, 재료의 풍미와 식감이 어떠한지, 조리법은 얼마나 참신한지, 모든 요소를 고려한 맛의 총합은 어느 정도인지. 일곱 살 치고는 꽤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곤 했다.
그날은 얼마나 마음이 급했던지 신발장 앞에서 나를 보자마자 외쳤다.
"엄마, 오늘 간식으로 카레 떡볶이가 나왔어!"
"아이고."
처음 보는 것, 정체불명의 것은 일단 꺼리고 보는 둘째의 성격상 안 먹었을 게 뻔했다. 집에 가서 뭘 해줘야 되나 싶어 '아이고'소리가 절로 튀어나온 것이다. 그런데 웬걸.
"카레에 떡볶이를 넣었는데, 진짜 너무너무 맛있었어! 엄마, 집에서도 똑같이 해줄 수 있어?"
"아이고."
이번 건 새로운 미션에 대한 반사적인 '아이고'.
그후로 떡볶이를 할 때마다, 카레를 할 때마다, 3년을 줄기차게 둘째는 카레떡볶이를 떠올렸다.
"엄마, 빨간 떡볶이나 간장 떡볶이도 좋지만, 유치원 때 먹은 카레 떡볶이가 정말 맛있었어. 언제 한번 해줄 수 있어?"
"아이고."
"엄마, 카레는 밥 위에 얹어 먹어도 맛있고 돈까스랑 같이 먹어도 맛있지만, 카레로 떡볶이를 해도 그렇게 맛있다? 언제쯤 다시 카레 떡볶이를 맛볼 수 있을까? 그렇게 맛있는 걸 태어나서 한 번밖에 못 먹어봤네."
"아이고."
게으른 에미의 변이라면, 마음은 굴뚝 같았다. 내 새끼가 그렇게나 맛있었다는데, 태어나서 한 번밖에 못 먹어봐서 두고두고 아쉽다는데, 나라고 왜 안 해주고 싶었겠나. 자식이 해달라면 별도 따다주는 엄마까지는 못되어도, 나 또한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걸 보면 흐뭇한 일반의 엄마다.
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각이 안 나왔다. 자랑이지만 식재료 조합 시뮬레이션이 남들에 비해 잘 되는 편이다. 무엇과 무엇을 섞으면 맛이 있을지 느낌이 딱 온다. 반대로 무엇과 무엇을 섞으면 안 될지도 직감적으로 안다. 우리집 카레는 생협 카레다. 마트표 쌈박한 카레맛이 아니란 말이다. 생협 카레에 떡볶이떡을 넣고 버무려 봤자 유치원에서 먹은 그 맛이 날 리 없다. 새우가루, 멸치가루 등의 천연 조미료를 넣는대도 마찬가지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궁극의 식재료가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가끔 남의 손을 빌어 먹을 때나 모른 척 먹고 말지, 차마 내 손으로 사서 넣고 싶지는 않았다.
그날의 도전은 모두 <그것>이 최후의 보루로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침 애매하게 남은 카레와 그저께 생협에서 사다놓은 떡볶이떡, 된장찌개를 끓이고 남은 멸치육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없었다면 앞에 나열된 모든 식재료가 있었다고 해도 나는 감히 카레 떡볶이를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은 카레를 멸치육수에 모두 풀고, 고추장 한 큰술을 추가한다. 소스가 끓기 시작하면 시간차를 두고 떡과 어묵을 넣는다. 큰 기대 없이 국물 맛을 본다. 기대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크게 실망할 뻔 했다. 걱정은 접어두시라. 우리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까. 반만 부숴먹고 꼬불쳐둔 라면을 꺼낸다. 반 남은 스프와 면을 넣고 보글보글 끓인다. 라면 스프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니. 부족한 맛은 채워주고 넘치는 맛은 눌러주어 비로소 둘째가 원하는 카레떡볶이 맛에 가까워질 것이다. 면발이 수분을 빨아들이며 국물을 꾸덕하게 만들어준 덕분에 더더욱 시판 떡볶이 같은 모양새를 갖추었다.
"엄마, 이거 카레 떡볶이야?"
둘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곧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젓가락을 들어 떡 하나를 집어든다.
"어때? 맛있어?"
결국 참지 못하고 다 씹기도 전에 둘째의 감상을 재촉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정확히 네 번을 씹고 나서야 대답할 준비가 되었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둘째. 그리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내 코 앞에 갖다댔다.
"진짜 맛있어! 내가 일곱살 때부터 먹고 싶었던 카레떡볶이를 드디어 먹었네!"
아이고.
이게 사는 맛이지.
이번 건, 넘치는 행복을 표현할 길 없어 그저 흘러나온 '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