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월요일 아침부터 학교행정실로 향했나
아침 아홉시. 아이가 다니는 학교 행정실 앞에서 나는 주춤거리고 있었다.
노크를 해야할지, 노크를 한다면 똑똑이 좋을지, 똑똑똑이 더 예의있을지. 들어가선 뭐라고 말을 해야하지?
드론이 생긴 그 주 내내 우리집은 축제의 도가니였다. 아들이 드론을 날리다 날리다 자러 들어가면 아빠가 거실에 나와 멍하니 드론을 날리고 앉아있었다. 급기야 형아의 눈치를 보며 내도록 참고 있던 여섯살짜리 동생도 대드론시대에 합류하면서 드론은 여기저기 부딪치고 날개가 부서지고, 하루가 다르게 처음의 모습을 잃어갔다. 그래도 누군가 조종기를 들었다하면 사력을 다해 뷔이이이잉 날아오르는 모습이 눈물겹기까지 했다.
아이는 여덟살치고 훌륭한 조종실력을 보였지만 30평짜리 아파트 안에서 충돌없이 마음껏 드론을 날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처음 며칠은 그저 드론이 생겼다는 기쁨에 부단히 자신의 조종실력을 연마하는 데 열중하던 아이도 슬그머니 연장 탓, 작업장 탓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드론 밖에 나가서 날려보고 싶어."
"아, 밖에서 날리면 잘 날릴 수 있을 것 같아?"
"응. 안 부딪치고."
"근데 하라야, 바깥이 넓긴 하지만 바람이 불잖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드론은 작아서 바람에 휩쓸려 가버릴 수 있어. 그럼 다시 못 찾을 수도 있고. 우리 드론은 실내용이거든."
"그럼 밖에서 날리면 안돼?"
"안 되지는 않지만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거지."
"그럼 안돼. 안 나갈래."
그렇게 야외드론의 꿈은 잊혀진 줄 알았는데.
일요일 외출에 아이는 드론을 대동하겠다고 선었했다. 날리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가지고 다니겠다며 케이스에 드론과 조종기, 밧데리 다섯개까지 살뜰히 챙겨넣고 따라나섰다.
외출을 마치고 동네로 들어섰을 때, 뒷좌석에서 아이는 여전히 드론케이스를 만지작거리는 중이었고 순간 외출 내내 아이가 상당히 협조적이었던 것, 내내 사람이 북적거리는 실내로만 다녔던 것, 그 와중에도 드론 생각만 하고 있던 것, 하루가 되짚어지면서 평소와 달리 관대해져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라야, 우리 학교갈까?"
"엑 일요일인데?"
"아니, 학교운동장. 거기서 드론 한번 날려볼까? 아빠 어때?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럴까? 하라야, 가까?"
"어어어. 갈래갈래."
작은 아이는 한번 차 안에서 잠이 들면 한시간을 채워자야 눈을 뜨기 때문에 아빠와 큰 아이만 내리고 나는 차에서 작은 아이가 깰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운동장과 주차장이 떨어져있어 둘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텅 빈 운동장에 주거니 받거니 하는 부자의 웃음소리만 들어도 흐뭇....해지려던 찰나. 터벅터벅 아이와 아빠가 차 쯕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왜 벌써 와?"
"어? 하라야 니가 말해줘라 엄마한테."
"하라야 왜?"
"....."
아이는 잔뜩 풀이 죽어있었다. 자기 실수로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의 얼굴이었다. 자기 탓인데 자기를 미워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자기가 용서도 안 돼서 잔뜩 상심한 얼굴.
"아빠, 왜 그러는데? 드론 망가졌어?"
"드론이 옥상 위에 떨어졌다."
"어?"
"이야 드론이 옥상 위까지 올라가더라니까. 어어어 하는데 고마 떨어져뿟다."
세상에나. 아이의 학교는 4층 건물이다. 4층이면 어림잡아도 8미터는 넘을텐데 그 조악한 드론이 그 성치 않은 날개를 돌려 지상에서 10미터 가까이 날아올랐다고? 너 이 자식, 집에선 빌빌대서 몰랐는데 대단한 녀석이었구나.
"우와아아아이고.....어떡해...."
감탄과 탄식이 동시에 나왔다.
하필 학교가 교실증축 공사중이라 해당건물로는 출입이 제한된 상태고, 해필 또 그 출입제한구역의 옥상에 우리의 드론이 떡하니 떨어지고 만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저녁을 치우도록 아이는 말이 없었다. 애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 신경질이 나고 하고 싶은 말을 안 하면 신경이 쓰이는 것이 나라는 애미다.
"하라야. 드론 때문에 속상해서 그래?"
힘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있잖아, 밖에서 드론을 날려보자고 했을 때는 엄마아빠도 다 그런 일이 있을 걸 생각하고 나간거야."
이건 무슨 소리인가, 아이의 눈동자에 살짝 희망이 어렸다.
"우리 드론은 실내용이라고 아빠가 그러셨잖아. 그런데도 나가서 날리자고 했을 땐, 바람이 불어서 드론이 날아가버리거나, 이렇게 높이 올라가서 못 내리게 될 수도 있다는 걸 미리 각오하고 얘기한거야. 그러니까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이건 드론을 밖에서 날렸을 때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미래소년코난 주제곡에 맞춰) 푸른 하늘 저 멀리 새 드론이 넘실거린다. 하늘 높이 하늘 높이 새 드론이 날아간다. 저허기 다시 태해어허난 드론이...아이의 눈동자에 이미 새 드론이 떠올랐다.
"엄마가 나가서 날려보자고 했으니까 이번 일은 엄마가 책임을 질게. 내일 학교에 가서 엄마가 찾아올 수 있으면 꼭 찾아올게."
"못 찾아오면?"
옆에서 듣고 있던 아빠도 거들었다.
"그럼 아빠가 책임질게. 엄마가 혹시 못 찾아오면 이번 한번은 아빠가 다시 사줄게. 대신 이제 밖에 나가서 드론을 날리면 이렇게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또 밖에서 날리다가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네가 네 선택에 책임을 지는거야. 오케이?"
"오케이!"
그렇게 나는 다음날 아침 학교행정실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었다. 다행히 교직원분들은 드론을 잃어버린 본교 1학년 학생의 상실감에 충분히 감정이입이 되는 분들이었으며 기꺼이 옥상으로 가는 길로 나를 안내해주셨다. (나중에 비타오백을 들고 다시 찾아갔다가 안 사실이지만 학교행정실 역시 김영란법 적용대상이라 학부모로부터 어떤 것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엄마, 찾았어???"
동백꽃의 점순이가 느집에 이거 없냐며 제 아무리 씩씩하게 감자를 내밀었다 한들 나보다 더 의기양양했으랴.
아이의 턱 밑으로 드론을 불쑥 내밀었더니 아이는 "난 드론 안 날린다. 니나 날려라"하는 대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렇게 12월 초부터 시작된 우리집의 대드론시대는 소소하게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까지 아이아빠가 구입한 드론은 잃어버리거나 망가진 것을 포함, 총 4대다. 그럴거면 그냥 밖에서 날려도 끄떡없을 드론을 한 대 장만하는 것이 어떠한지? 허나 아이들이 모두 잠든 거실에서 눈동자를 푼 채로 드론을 날리며 하루의 시름도 풀어내는 아이아빠를 보면 대드론시대를 연 것은 그 아들이지만 대드론시대의 가장 큰 수혜자는 그 아비라는 사실이 새삼 매일같이 깨달아지는 것이다.
- 드론 세대의 요람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