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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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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Jan 13. 2020

드론 세대의 요람기(2)

드론을 갖고 싶은 자, 프레젠테이션(?)을 해내라

아빠 그럼 나 싼 거라도 사조요.

마침표까지 간절한 아들의 쪽지를 찍어 아빠에게 보냈다.


- 안 그래도 어제 드론 알아봤는데 3만원이면 괜찮은 거 사겠드라.

예상한 답이 날아왔다.


- 아니 그럼 애한테 말을 해줘야지. 사준다고 확실히 말을 안 해주니까 애가 아침 내내 전단지를 품고 다니잖아.

- 내가 반응이 좀 미적지근하지.

- 오늘 오면 확실하게 말해줘.

- 왜 사고 싶은지 글로 쓰라고 할까봐. 설득력 있게.

- 설득력이 없으면? 안 사주게?

- 사주긴 사줄건데 얼마나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지 한 번 보는거지.


불현듯 떠오르는 남편의 오랜 육아로망 - 프레젠테이션 가능한 인재로 키우기.

예전에 어떤 총각이 자기 누나의 아이훈육법을 인터넷에 공유한 글을, 당시 총각이었던 남편이 읽고 자기도 꼭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키워보리라, 설레발치며 나에게도 링크를 보내줬던 적이 있다.

내용인즉슨 아이가 다섯살 무렵엔 일주일동안 먹을 간식을 스스로 말하게 하고, 여섯살 무렵엔 적어보게 하고, 일곱살엔 일주일치 장을 직접 보게 했다던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뭐 대충 자율적으로 키운다는 이야기. 나중에 중고등학생이 된 아이가 아이패드 구입을 위해 아이패드가 필요한 이유, 아이패드를 사줬을 때 기대되는 성과, 왜 꼭 아이패드여야 하는가, 부모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펼치는 정도로까지 성장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타인의 글 속에서 육아는 항상 쉽고 멋지게 흘러가며 짠- 엄청난 결과를 불러온다. 나의 육아에 타인의 것을 접목해보면 그제야 비로소 타인의 노력과 고통의 크기를 깨닫게 되는 법.

그 글을 읽은 건 총각 때였으나 정작 제 새끼가 여덟살이 되도록 생활에 치여 프레젠테이션형 인재가 다 무어냐. 장난감 하나 사주면 짧게는 하루, 길게는 사흘이 편하다는 것을 깨닫고 장난감 공약을 남발하던 평범한 아빠의 오랜 숙원이 어언 팔년만에 가슴 속 불씨로 되살아난 것이다. (게다가 그의 첫째 아들은 여덟살이 다 되어서야 겨우 글을 쓰기...아니, 글자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모든 아이가 여섯살 즈음 일괄적으로 한글을 떼는 게 아니란 사실도 판단미스에 한몫)


드론을 열망하는 자와 프레젠테이션을 요구하는 자가 저녁밥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밥알과 고뇌를 함께 씹고 있었다. 저녁밥상을 치울 때쯤 드론처돌이(하라.8세.초등학생)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빠, 저 드론 싼 거라도 사주세요." 

드론 사주겠단 소리 한번 받아내려고 두 번의 저녁밥상을 기다리는 저 인내심만큼은 과연 인재의 상이로다.

"하라야, 왜 드론이 사고 싶어?"

"어....어...."

"그걸 일기에 써 봐. 그리고 아빠한테 보여줘. 사고 싶은 이유가 확실하면 사줄게."


두 말도 않고 아이는 책상 앞에 달려가 일기장을 펼쳤고 3분도 안 되어 아빠 앞에 내밀었다.

"아빠 다 썼어."

아들이 3분 만에 쓴 걸 3초만에 다 읽은 아빠는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음. 하라야 다른 사람이 날리는 걸 보면 다 사야 돼? 그게 사고 싶은 이유가 될까?"

"다른 사람이 날리는 걸 봐서 사고 싶어진건데."

"너한테 드론이 생기면 넌 뭘 하고 싶은데? 그게 니가 드론을 사고 싶은 이유지."


그렇게 아빠로부터 세 번의 빠꾸와 첨삭을 받으며 완성한 일기는 제법,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도 갖고 싶은 한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맞닿아있으면서도 날개가 있는 것들을 동경하는 인류의 염원을 반영하면서도 드론과 물아일체가 된 여덟살 소년의 시적감성까지 잘 담아내고 있었다.

아빠의 마음을 잡는 일이 얼마나 시급했던지 매일같이 챙겨쓰던 날짜도, 날씨도, 제목도 패쓰하고 본문부터 적었다.



그렇게 아이는 생애 첫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그리도 열망하던 드론을 손에 넣었다.


여기까지가 드론 시리즈의 끝이었다면, 감히 시리즈라고 이름 붙이지도 않았으리라.

드론을 사줄 때부터 충분히 예상가능했으나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참사는 드론을 얻은 그 주 일요일에 일어났다.


- 드론 세대의 요람기(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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