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일기

드론 세대의 요람기(1)

아들아, 너는 드론이 다 있구나

by 날필

아빠의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전단지를 든 아이의 손이 실속없이 바빠졌다. 들었다 놨다, 넘겼다 바로했다, 의미없는 손놀림을 반복하며 머릿속으로는 수없이 아빠와의 대화를 시뮬레이션하는 중인가 보았다.


아빠가 집에 들어와서, 손을 씻고, 저녁밥상에 모두가 둘러앉을 때까지도 타이밍만 재고 있던 아이는 젓가락질이 한참 이어지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말을 꺼냈다.


"아빠, 어, 오늘 학교 앞에 그, 어떤 아저씨들이 왔는데, 어, 드론을 날렸어."

"이야 그래? 엄청 재밌었겠네~"

"어어 애들이 다 쳐다봤어."

"그래~내 같아도 신기하겠다. 애들이 얼마나 신기하겠어."


아빠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 싶었는지 아이는 준비했던 전단지를 내밀었다.

"아빠 근데, 내가 이걸 하고 싶은데 엄마가 아빠도 이런 거 좋아한다고, 아빠한테 말해보래."


드론 축구 3개월 등록시 13만원 상당의 드론 무료증정!
20191217_062829.jpg 20분이나 떨어진 옆옆동네 학교까지 와서 드론을 날리며 홍보하는 원장님의 열정에 치어쓰...치어버려쓰...


"하라야, 드론 축구가 하고 싶은 거야? 드론이 갖고 싶은거야?"

"드론을 날려보고 싶어."

"이게 찾아보니까 14만원 정도 하는 거네."

"그럼 못 사?"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이거랑 똑같은 건 아니어도 좀 더 싸고 다루기 쉬운 드론도 많아."


저거저거 오늘 애 재워놓고 바로 주문하겠구만. 오늘 시키면...오늘이 목요일이니까...목금토...잘하면 주말쯤엔...통상적인 택배흐름과 우리 동네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언제쯤 드론이 올 지 가늠해보며 저녁상을 치웠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아빠부터 찾더니 아빠가 출근하셨다는 걸 확인하자 다시 전단지를 품에 안고 돌아다녔다.


"하라야 그건 왜 또 들고 다녀?"

"어제 아빠한테 말을 했는데, 아빠가 내 말을 잘 알아들었는지를 모르겠어."


왜 아빠라는 자는 지 혼자만 마음을 먹고 애한테 확답을 해주지 않는가. 왜 아들이라는 녀석은 그 자리에서 시원하게 사준다 소리를 받아내지 못하고 아빠가 떠난 자리에서 뒤늦게 전단지를 들고 서성거리는가.

돌려말하는 아이와 두루뭉술하게 답하는 아빠, 2019최고의 고구마가 온다! 갑자기 입술이 타고 목이 말라왔다. 드론 생각에 잠은 제대로 잔 것인지? 이대로라면 학교 가서도 드론 생각만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어쩌랴. 아빠는 가고 없는데. 물을 한 컵 들이키고 차분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하라야. 어제 아빠가 뭐라고 하셨는데?"
"몰라. 사준다고는 안 하셨어."

"아빠가 그 전단지에 있는 거랑 똑같은 건 아니더라도 싸고 좋은 드론도 많다고 하셨잖아. 그런 것도 괜찮으면 사주시겠다는 얘기 아니야?"

"아!"


아이는 큰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자칫하면 이 기회가 날아가버릴까 하는 불안함에 복잡한 표정이 되더니 이면지를 가져와서 또박또박 뭔가를 적었다. 그 종이를 집으로 들어설 때 바로 보이는 중문 유리에 붙여두고는 학교에 가면서도 혹시 종이가 떨어지진 않았는지 확인해가며 집을 나섰다.


20191213_084449.jpg 또박또박 적은거임. 아무튼 또박또박임.


아빠 그럼 나 싼 거라도 사조요.

마침표까지 간절한 아들의 쪽지를 찍어 아빠에게 보냈다.




- 드론 세대의 요람기(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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