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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우 Nov 27. 2017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

제주도는 '바다', '여자', '돌' 이래. 그 중 바다.

내가 자란 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전라북도 정읍이다. 농업을 유지하고 있는 아버지 밑에서 어릴 적부터 농사하는 법을 보고 배우며 자랐다. 때문에 바다라는 장소는 그리 익숙지도 않고, 심지어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그저 TV 속에 등장하는 저 하늘색 물이 바다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 정도로 알고 있었으니깐, '수평선'은 나에게 언제나 신비로움을 선물해주는 곳이고 지금까지도 낯선 그 감성에 흥분한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

우리가 살기로 했던 제주도의 마을은 '삼달리', 그 유명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과 성산읍 민속마을이 위치한 곳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다. 나도 나름 유년을 시골에서 보냈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 주변은 귀신이 나오라면 나올 정도로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밤이 되면), 무척이나 조용한 덕분에 저 멀리 표선리에서 부딪히는 바닷소리가 집까지 들려온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


-


표선리는 집에서 차로 약 10분 정도 걸리는 아주 작은 마을로 대표적인 표선 해수욕장이 있다. 나와 아내 그리고 딸은 제주도에 도착한 지 이틀 째 되는 날에서야 바다를 보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주도는 사면이 모두 바다이기 때문에 제주도로 오는 길 내내 바다를 봤고, 집으로 오는 길 조차도 바다를 봤으니, 아마도 우리 마음속에는 '굳이 지금 바다를 보러 갈 필요가 없잖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가 아내가 한 마디를 거들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로, 우리 구경 가자!"

"그래."

아침 일찍 일어나는 딸, 수아는 아침마다 계단과 씨름한다.

우리 건강하자는 의미로 스마트폰 알람을 아침 6시에 맞춰놓고 잔다. 여김 없이 그 시간이 되면 알람은 울리지만 도시에서의 습관 때문인지 곧바로 알람을 꺼버린다. 하지만 딸의 꿈나라를 방해한 죄로 눈을 비비며 침대 아래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하루 육아는 그렇게 시작된다. 걷기 시작하려는 딸은 물건을 잡고 일어나거나 또는 계단을 서슴없이 기어 올라간다. 이렇게 아침 정신을 차린다. 알람 소리가 무슨 소용인가?


제주(Jeju) - 남원의 바다, 반건조 오징어를 말리는 현장

이제 막 운전면허를 취득한 아내 입장에서는 제주도만큼 운전 연습하기 좋은 장소가 있을까? 해안도로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시원스럽게 달릴 수 있기도 하다. 제주 섬 내의 도로보다 감시 카메라도 덜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운전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흥미로운 풍경들을 만나게 되는데, 내 입장에서는 반건조 오징어를 말리는 현장이 그러했다. 오징어? 강원도에서 많이 잡히는 오징어가 아닌가. 제주도에서도 잡힐까? 그렇게 아저씨에게 접근했다. 결국 지갑에서 6만 원을 꺼냈지만 … 세일즈에는 역시 사람의 인상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느끼고 말았다.


이 반건조 오징어의 활약은 제주도에 있던 한 달 내내 대단했는데, 술을 먹지 않는 우리 부부가 최초로 맥주를 마셨다는 것이다. 간장에 마요네즈를 첨가하고 청양고추를 썰어서 더해주면 아주 맛있는 반건조 오징어 소스가 된다. 웬만하면 맛이 없을 수 없는 비법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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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 바다를 헤쳐갔다. 표선리를 넘어서 남원읍을 또 넘어서 중문으로.



사람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산이나 바다로 향한다. 여행을 여러 번 다녀본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봐도 확실히 효과가 있다. 특히 나는 바다 앞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좋았다. 물론 그 고민이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차분해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쩌면 아내 또한 깊은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나보고 바다를 보고 오자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만큼이나 그녀도 일상에 그리고 육아에 치여 살기 때문이다.


제주도로 한 달 동안 사는 이 여정은 지금 우리 부부에게 가장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표선 해수욕장을 우린 걸었다.


들린다. 파도 소리가





아직도 가끔 아버지께서 우리 형제들에게 하는 말씀이 있는데, "야, 아빠가 바다에 살았으면 아빠 좋아하는 생선 가게 열었을 텐데! 생선 좀 사 오너라.", 농부인 아버지는 왜 바다에 살고 싶어 하셨을까? 정말 생선을 좋아해서 그럴까? 아니면 아버지 또한 반복적인 육지 땅의 농업에 지쳤을까. 반대로 어촌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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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아버지가 어부였다면 지금 이 글은 정반대로 되어 있진 않았을지.

산과 흙을 좋아하고 어쩌면 지금보다 쌀을 더 맛있게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집이란 공간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하루의 시간은 누구나에게 공평하다. 하루 24시간, 흐르는 시간은 똑같지만 그 시간을 체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30대가 되어보니 '내가 언제 서른 살이 되었지?, '오늘 하루는 왜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마친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는 똑같은 생각을 반복할 것이다.


집이란 공간은 그런 사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들어가면, TV, 컴퓨터, 냉장고, 침대가 있으니 언제 내가 그런 생각을 했나 싶다. 그냥 쉬고 싶고 눕고 싶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사람의 기운까지 함께 가져가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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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선리 바다에서


"바다 좋다."
"그러게, 파도 소리도 정말 좋다."
"내일 또 오자."

이 여정은 2017년 10월 10일부터 11월 9일까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끝마치고 작성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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