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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우 Dec 04. 2017

꾸준히 비만 내리는 섬

우리 마음을 알았을까? 울고 싶었다.



예방 접종을 하지 않고 제주도로 향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제주도에 도착하고 그다음 날, 우리는 수아(딸)를 제주 보건소에 데리고 가서 예방 접족을 실시했고, 그다음 날 신나게 여행을 했다. 삼달리에서 중문까지 가는 즐거운 길에 수아는 그렇지 못했나 보다.



꾸준히 비만 내리는 섬




제주도에서 사흘 차, 아내가 새벽부터 어리둥절 하면서 일어나더니, 날 급하게 깨웠다. 아무래도 수아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온몸이 불덩이다. 갑작스러운 열에 우리 부부도 당황했다. 현재 시각, 새벽 4시 …


뭘 어떻게 할 세도 없이 바로 차에 시동을 켜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 시간에 할 만한 병원들을 육지에서 미리 찾아왔기 다행이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삼달리에서 제주시까지는 최소 1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그 병원까지 가는 데에는 1시간 20분 정도 소요가 된다. 하, 제주도가 이런 게 불편하구나.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은 매우 사랑스러웠지만 이 순간엔 내가 이런 시골 깊숙한 곳에 있다는 것이 너무도 짜증 났다. 내 자식이 아프니깐, 나 조차도 이 상황에 분노해버렸다. 젠장!


"병원 어디야? 어디냐고!"

"한라병원이라고 이 시간에도 하는 데 있어.."

"빨리 타! 어서 가자.."


그렇게 우리 가족은 폭풍 속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장염이었다. 아기 때 걸리면 가장 무섭기도, 성가시기도, 고생하기도 한다는 그 장염. 그렇게 수아는 병원에 자연스럽게 입원을 했고, 아내는 병원에서 5일, 나는 집과 병원을 오가는 5일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날부터 5일 동안 제주도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뚫리고 말았다. 우리 마음을 알았을까? 울고 싶었다.










하루 종일 비만 내렸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차량을 몰고 병원으로 향할 때도, 병원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도 여김 없이 비만 내렸다. 그래, 어차피 이 날씨에 계획했던 여행을 하진 못했을 거다. 그 찰나에 집에 손님들이 주인 없는 집을 오고 가기도 했다. 우리고 초대했던 손님들을, 우리가 없는 집에 머물렀다가 그대로 사라졌다. 서로에게 미안한 상황은 그렇게 슬며시 찾아왔다가 수아가 좋아질 때쯤 사라졌다.










이 큰 집의 빈자리는 나 홀로 채울 것이 못됐다. 집안일을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텔레비전 소리를 홀로 듣고, 심지어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마저도 안방까지 다 들린다. 이렇게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집 속 소음들은 언제나 가깝게 들렸다. 그 5일이 어떻게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병원 사정은 어땠을까? 아기가 아프면 엄마가 가장 고생이란 것을 이번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면서 깨닫게 됐다.










꾸준히 비만 내리는 섬.

이게 진정 제주의 날씨인가? 꽤나 많은 동남아 여행을 다녔지만 이렇게 5일 동안 비만 내리는 경우는 만나지 못했다. 날씨마저도 어쩜 이렇니. 습기 가득한 거리를 걷는다. 차갑게 내려오는 빗방울이 따갑지가 않다. 그런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던 것 같이.










이 비가 너무 밉다.





-


병원에서

"여보, 비가 정말 너무 오래 온다."
"그러게, 이게 제주도 날씨인가 봐."
"수아 퇴원하면 분명 좋아질 거야."



이 여정은 2017년 10월 10일부터 11월 9일까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끝마치고 작성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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