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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우 Dec 06. 2017

조용했던 제주도, 집 밖의 풍경

사색 에세이 그리고 걸음



우리 부부의 제주행은 조금은 급하게 진행됐다. 제주도를 가는 방법, 살 집, 주변의 병원이나 마트 등만 미리 알아두고 제주도 속에서 뭘 할지는 전혀 계획하지 않았다. 덕분에 완도에서 제주로 향하는 배 안에서 매우 설레었고, 앞으로 제주도에서의 한 달이 그저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다.


제주도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상상했던 풍경들이 있었다.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시야에 항상 바다가 보이며 군데군데 예쁜 오름들이 언제나 최고의 빛을 발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여기는 제주도야!, 최고의 환경이야!"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나 보다. 수아(딸)가 아프기 전까지는 우린 그렇게 매일매일을 그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뭇 달랐던 제주도, 집 밖의 풍경



오늘도 집을 나 홀로 지키고 있다. 아내는 아픈 수아 곁을 24시간 지키고 있다. 서로 지키는 것은 다르지만 어쨌든 우리가 제주도에서 한 달 동안 잘 머물기 위해서 필요한 행동들이었다. 미리 초대했던 손님들은 내가 맞이했고, 아내는 예상하지 못했던 딸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당분간 어떤 일정을 보내야 할지 … 오늘도 하루 종일 비가 내릴 모양이다.


"진철아, 우리 집 밖으로 산책 한 번 떠날래?"


잠시 우리 집에 머물고 있는 지인이 나에게 건넨 첫마디. 나의 근심과 걱정을 한눈에 알아차렸나 보다. 그는 내가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에도 수없이 많은 여행을 함께 했던 인물이기에 내 심정을 금방 읽어낼 수 있었나 보다. 집 밖으로의 산책이라.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가시죠."






비가 오는 날이 되면, 카메라를 스윽 쳐다본다. '가지고 나갈까? 말까?', 유독 이런 날씨에 카메라를 잡는 것이 귀찮기도 하지만 싫다. 내 손에 뭘 묻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성격이기에, 내가 사진을 찍을 때조차 빗물이 내 몸을 스치는 것을 난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진을 찍는 일은 가라앉았던 내 심정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아마 지인은 나의 그런 습성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어떤 마을이라기보다는 아무것도 없던 땅에 집을 세워서 나 같은 제주도에서 한 동안 머물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셰어 하우스다. 때문에 마을까지 가기 위해서는 조금은 걸어야 하는데, 삼달리가 그랬다. 집 밖으로 나선 뒤 약 5분 정도 걸어가면 삼달1리 삼거리가 보이고, 그 왼편으로 아주 자그마한 마을이 있다. 끌리는 대로 처음 향했던 곳이지만 제주도에 이런 마을이 있나 싶을 정도로 시골 풍경을 보여줬다.










조용하다.

잠시 비도 멈춘 듯하다.

'저벅, 저벅'

우리가 걷는 그 소리만 들린다.










마을은 제주 감귤밭이 90%,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을 포함해서 집이 10%. 그러니깐 이 마을은 감귤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곳이다. 걷는 거리마다 감귤이 가득했고, 은근히 그 향이 내 코를 자극했다. 서서히 익어가는 감귤은 그 밖으로 향을 내뿜는다.










계속 내려오는 빗줄기 때문에 세상은 많이 진해졌다. 아니, 선명해졌다고 표현할까? 우산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마을 풍경을 감상해본다. 아 - 좋다.










걸음은,

생각을 긍정적으로 이끌어 주는 매력이 있는 듯하다. 수아가 아프면서 상황을 많이 원망했다. '왜 하필이면 지금 아픈 거야', '지금 비가 왜 내리는 거야' 등 나도 모르게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것 같다. 아무래도 제주도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보면서 여행을 하자는 제안을 내가 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나도 모르는 책임감이 발동됐을지도 모른다. 이곳의 일정은 늘 행복해야 하고, 늘 새로워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제주로 떠나기 전에 아내가 했던 말. "우리는 여기에서 사는 것처럼 제주도에서도 그냥 사는 거야. 장소만 바뀔 뿐 달라지는 것은 없어." - 내가 제주도를 너무 특별하게 대했을까? 그냥 산다는 것은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비슷비슷하다. 우리는 매일 마트를 놀러 가고 맛있는 빵을 사 먹고 저녁에는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을 찾는다.


수아가 아팠던 이 상황도 순서에 맞게 따라온 것이다라고.


조용한 이 마을을 걸으면서 마음이 편해졌고, 이제는 기다리면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곧 아내가 집에 올 것임을 말이다.










비가 내린다. 집 밖의 마을을 걷는다. 조용한 마을 분위기 덕분에 사색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우리는 아주 자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들로 고민에 빠진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로 불안해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런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개개인마다 다른데, 이번에 나는 걷는 것으로서 잊었던 것 같다.


흥미로운 제주도의 마을 길. 아마 이것은 도시의 거리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던 것 같다. 까만 돌과 초록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힐링이 돼버렸다.










이게 바로 제주도의 힘일까 매력일까? 아침 산책하길 참 잘했다. 그리고 아내와 수아가 돌아왔다.





-

삼달리 마을 산책길에서

"여기 너무 좋다, 좋은 곳에 있으니깐 생각이 맑아진다. 그렇지?"
"그런 것 같아요. 제주도가 좋긴 하네요."
"이럴 때 보면 여기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니깐!"
"땅 값은 얼마일까요?"

이 여정은 2017년 10월 10일부터 11월 9일까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끝마치고 작성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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