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풍경을 좋아해요.
한 달 살기가 특별하게 느껴졌을까?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니깐, 너도 나도 제주 우리 집에 오겠단다. 알고 보니깐 사실 제주도에는 우리 부부처럼 이미 한 달, 두 달, 몇 달 살이를 하고 있는 여행자들이 많았고,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떠나기 전의 그 설렘은 설레발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때의 자랑이 부자연스럽진 않다. 덕분에 친구들이 제주도로 여행을 많이 왔으니깐, 어쩌면 내 발언이 그들 삶에 꽤나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여행은 그런 특징도 있는 것 같다. 주변인이 떠나면 나도 떠나고 싶은 마음, 그래서 결국 여권을 준비하고 떠나는 것. 그렇게 떠나는 여행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 오늘 우리 집에 방문했던 그 친구도 아내의 소식에 찾아왔던 그 손님이다.
아주 잠시만 따라비 오름의
SUNSET
버스 정류장으로 데리러 가는 길, 애초에 그 누구도 우리가 데리러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막상 지인들이 도착하니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유교문화에 익숙한 우리 부부에게는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 따위는 마음속에 있지 않았다. 하긴, 이런 산골짜기 같은 시골 마을까지 제주 시내로부터 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성산읍까지만 온다면 우리가 데리러 나간다고 했고, 그 친구가 성산 민속마을의 아주 작은 정류장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야~ 여기야~ 여기~, 어서 타!"
"와! 안녕!!"
"날씨도 좋은데, 어디 갔다 갈까?"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집주인이 집을 계약하기 전부터 우리 부부에게 그렇게 자랑했던 <따라비 오름>, 오늘은 그곳의 일몰을 볼까 했다. 맑은 하늘과 적당한 온도가 우리의 행선지를 이끌었다. 친구의 짐을 차 짐 칸에 던져놓고 아내와 아내 친구의 수다가 시작됐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미뤄뒀을까? 어릴 적에 친했던 친구는 오랜만에 전화가 와도 어제까지 만났던 친구 같고, 언제 만나도 할 이야기가 많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을까? 왠지 아내가 부럽다. 나 홀로 따라비 오름을 오르며, 사색에 잠겨 본다.
여기 오름에서 저기 오름을 보는 순간은 특별하다. 제주도에는 수백 개의 오름이 있으니, 어딜 가든 올록볼록한 오름을 볼 수 있지만 따라비 오름의 지형은 원만하고 시야가 좋기 때문에 더욱 솟아오른 다른 오름을 보기에 좋았다. 거기에 따라비 오름 뒤로 내려앉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으니,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내 달력을 보게 만든다. 벌써 제주도에 온 지 10일째.
늦가을의 억새, 겨울을 준비하는 억새들. 이 억새 때문에 네가 좋구나.
친구에게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을 보여주기에 이보다 적당할 수 있을까? 기억에 남는 것은 드라마틱한 풍경이고, 제주도라는 섬일 것이다. 이때가 그리워 다시 찾겠지. 섬으로의 여행은 대부분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 또한 그런 제주도의 모습이 좋아 다시 찾은 것이니.
그림자가 생긴다. 역시 카메라는 인간의 눈을 따라오질 못한다. 내 눈에는 아직도 억새들이 가볍게 흔들리는데, 카메라는 실루엣으로 만들어버린다. 집에 들어갈 때가 됐다는 의미일까?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수아를 꽉 안아주는 엄마의 모습을 포착했다. 사랑스러운 두 사람.
아내의 친구 덕분에
아주 잠시 따라비 오름의 일몰을 감상했다. 이제 집에선 맛있는 요리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손님이 왔으니, 당연히 주인이 대접을 해야지.
안녕. SUNSET.
오늘 하루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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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비 오름에서
"같이 가~"
"어서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