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건축사진작가의 에세이

건축주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건축사진작가의 에세이


건축 사진을 촬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을 누구에게 수주를 받고 있나 2년 전 폴더와 1년 전 폴더 그리고 올해의 폴더를 살펴봤다. 건축은 건축주의 돈으로 건축사사무소에서 도면 설계를 하고 건축 시공사에서 짓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진작가에게 사진을 의뢰하여 세상에 세상에 공개된다. 이 모든 것은 바로 건축주의 돈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가끔 잊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이 모든 것이 건축주의 돈이라는 사실을. 굳이 서열을 나열하자면 건축주가 완전한 슈퍼 갑인 셈이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을 중의 을이 아닐까? 건축주 돈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소비되는 공정이 사진 촬영이지 않을까? 그래서 안타깝지만 건축에서의 포지션이 가장 작다. 애석하게도 내가 건축 회사에 다녔던 그 경험 때문에 사진 분야가 얼마나 홀대받았는지 깨달아버렸다.


건축사진작가는 보통의 경우 건축과 관련된 업종에 있는 회사로부터 일을 받아서 진행한다. 건축주가 직접 연락을 해서 사진을 촬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의 경우 건축사와 가장 많이 협업하고 그다음은 시공사이다. 건축주에게 연락을 받는 경우는 상업 공간을 직접적으로 운영하는 경우이다. 카페나 숙소 혹은 어떠한 인테리어 매장을 소유하고 있을 때.


사진을 촬영할 때 설계 도면을 최대한 무시한다. 도면은 촬영 비용을 산출할 때만 참고할 뿐이다. 사진을 촬영할 때는 실제 그 공간을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건축주라고 생각하고 장면을 바라본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건축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건축사나 시공사와 긴밀하게 대화를 하지도 않는다. 특별한 주문이 없으면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맘대로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공간을 만나면 나는 건축주가 된다. 오늘 이 하루는 건축주의 심정으로, 시선으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건축 회사에 다녔던 그 몇 년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순간이다. 건축주가 이 건물을 짓기 위해서 얼마를 썼는지 대략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건축주는 전 재산을 사용해서 건축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더욱 감정이입이 된다. 일은 회사로부터 받지만 오히려 건축주를 위한 촬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대충 하고 갈 수 있다고? 마음에 걸려서 그래서 병에 걸릴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일 것이다. 누군가가 삶의 모든 것을 바쳐서 만든 작품을 나의 모든 능력치를 발휘하여 남기고 싶을 뿐이다.


오늘 하루는 내가 건축주다. 그리고 내가 본 것들을 세상에서도 봤으면 한다. 아직까지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대하고 있으며, 이 사실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길 희망한다. 혹시라도 변한다면 그때가 내가 일을 그만둘 때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가짜로 남기 싫다. 일을 하면 할수록 더욱 애정이 생기고 진심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감정에 호소하는 사람인 듯하다.


현장을 가려서 받을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 작은 현장, 조금 예쁘지 않은 현장들도 모두 건축주가 엄청난 비용을 투자해서 만들어낸 세상의 공간이다. 내가 가진 재주라면 카메라가 있다는 것이고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줄 안다는 것 정도이다. 누가 보면 별 볼일 없는 재주이지만 이 능력이 도움이 된다면 기분 좋은 자세로 현장으로 출발할 것이다. 내일도 모래도.


건축주가 큰 용기로 만들었다. 이것은 마치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하는 것 정도의 용기랄까?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나는 건축가가, 시공자가 그리고 건축주가 만든 유의 공간의 마침표를 찍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것도 가장 아름다운 그 순간에 투입되니 어쩌면 가장 행복한 직업이 아닐까?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상황에서만 일을 하니깐 인류 최고의 직업임이 분명하다.


오늘 만난 건축주가 나에게 커피 한 잔을 내어주셨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의 취향도 모르시고 건넨 이 음료 한 잔에서 가을 날씨에 누리기 어려웠던 온기를 느꼈다. 거절할 수 없다. 나는 이 커피를 마시고 최선을 다해서 촬영할 것이다. 건축주와 나는 이미 일을 함께 하는 동료이고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된 것이니깐. 그렇게 이롭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나의 모든 현장들이.


#건축에세이 #건축주 #건축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