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진작가의 에세이
아주 조금씩 느껴지는 것은 내가 이 시장 안에서 아주 조금은 자리를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건축과 관련된 공부는 회사를 다닐 때에 더 많이 했지만 실무적인 경험들은 퇴사 이후에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더 많이 겪고 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 질문을 던져 보고, 흐느끼는 것으로 앞의 선배들이 했던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알아간다. 누가 알려 주지 않으니깐..
촬영하는 현장들을 기록하는 나의 모습을, 또 그 모습을 기록하는 나.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찍는 카메라를 구매했고, 그것이 이젠 습관이 됐다. 어디론가 올라가는 사진들은 아니지만 가끔 블로그에 이렇게 사용될 일이 있으니 이젠 나는 건축물을 촬영하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크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세상을 살아갈 때, 신기하게도 나와 비슷한 혹은 그 결을 가진 사람들과 진득하게 일을 하게 된다. 오히려 내가 더 보고 싶은 경우가 있는데 건축주 혹은 클라이언트가 불러주면 기분이 좋아서 또 간다. 돈을 좀 더 벌고 싶어서 자영업자가 됐지만 결국 돌고 돌아 사람에게 기대고 만다. 건축은 감정이 없어 기대기 어렵고 역시 인간은 인간에게. 나도 어쩔 수 없는 동물이었다. 다른 동물에게 끌리는 것을 보면.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 그래서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지독하게 들어주지 않을 때가 있는데, 나도 참 문제다. 전문가를 믿자. 그래서 찾아온 것 아닌가? 나도 머리를 자를 때는 원장님을 믿고 맡긴다. 뭘 어떻게 해주라는 요구를 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그가 나보다 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손발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마저도 신경 쓰기 싫은 것이다.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
콘크리트 건축물과 친해지고 싶었다. 퇴사한 이유 99개가 있지만 콘크리트 건축물에 대한 갈증은 그중 하나였다. 지난 2년, 3년 차 동안 나는 수백 개의 건축물을 촬영했다. 그중 콘크리트 건축물을 반 이상 했으니깐 그 갈증은 많은 부분에서 해소했다고 생각한다. 겪어보니깐 목조도 좋고, 콘크리트도 좋고, 철강도 좋고. 공간이라는 장르 자체가 너무도 좋아졌다. 좋았는데, 더 좋아진 것을 보면 일을 사랑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겨울의 현장은 매우 공허하다. 많이 춥다. 준공이 끝나고 이사하기 전이라 날 위한 따뜻함은 전혀 없다. 겨울 현장이란 것이 다 그렇지. 종일 현장에 머물며 태양이 흐르는 것을 관찰하면 갑자기 외로움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하면 혼자가 편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이중성. 마음에 든다. 내 안에 내가 대체 몇 명인지? 지난 일주일 동안 많은 현장에서 열심히 일했으니,
불고기나 먹자. 밥 두 그릇 다 먹을 수 있을 정도. 불고기에 파 넣어서 지글지글 끓여 먹자.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고기 요리가 많이 생각이 난다. 당분간 평양냉면은 안녕. 전골이나 국밥 종류로 버틸 시기가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다음 현장에서 면 가게를 들어갈 것 같아.. 밀가루 중독은 어쩔 수 없다.
사진과 영상을 의뢰해 주는 모든 분들께 너무도 감사하다. 아직 연말이 아니라서 정식적인 인사를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의뢰자 분들 덕분에 우리 가족이 오늘 밤 따뜻한 이불 안에서 먹고산다. 결과물을 위해서 오랫동안 기다려주고, 더 좋은 장면을 위해서 서로 끊임없이 피드백 하는 모습에서 나는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했고, 내일은 또 오늘보다 더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내가 조금 더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아키프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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