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락하는 놈들이 좋다. 총기와 광기로 윤이 나는 눈빛을 한 오따쿠들. (오타쿠가 아니다. ‘오따꾸’ 라고, 말해야 느낌이 산다) 무엇을 뜨겁게 좋아할 수 있는 건 그만큼의 연료가 그 사람 안에 있다는 뜻이다. 한가락하는 오따꾸를 보는 일은 사랑스럽고 즐겁다.
나의 스물두 번째 생일선물로 어항을 준 휘는 새우를 좋아했다. 2인용 식탁만 한 정방형의 어항은 내 방 한가운데서 존재감을 뽐냈다. 창백한 LED 조명 아래서 생이새우 수십 마리가 헤엄쳤다. 휘는 틈만 나면 핀셋을 들고 검은 모래 위에 이끼를 조심조심 깔았다. 그럴 때면 잘생긴 눈썹 위로 푸른 조명이 떨어지고, 이마에는 쏟아지는 머리칼의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새벽마다 휘는 앙상한 등을 웅크리고 자기가 만든 새우어항을 바라보았다. 우우웅, 수중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방 안에 가득했다. 걔는 꼭 혼자 심해에 있는 것 같았다. 휘는 새우를 정성 들여 키워서 내다 팔았다. 새우를 판 돈은 아웃백 오지치즈 후라이가 되고, 남이섬 여행의 뱃삯이 되었다. 새우가 우리를 먹이고 키웠다.
우기는 ‘옷따꾸’였다. 낮에 인사팀에서 말쑥한 차림새로 일하고, 밤엔 목이 늘어진 티셔츠와 해진 속옷 차림으로 컴퓨터 앞에 앉있다. 그리고 전 세계 아웃렛을 돌아다녔다. 아크테릭스 바람막이, 살로몬 고어텍스 운동화, 르메르 크루아상 백의 한정판 컬러를 사 모으는 온라인 보부상이었다. 그 애의 집에 놀러갈 때면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의 이름 모를 도시의 아웃렛에서 보낸 택배가 내 무릎까지 쌓여있었다. 택배를 현관에 들여놓으면 우기는 집도를 시작했다. 박스의 여섯 면을 쓱쓱 힘주어 걸레로 훔쳐냈다. 다시 걸레를 빨아와서 다음 박스를 닦았다. 커터 칼을 아주 얕게 찔러넣어 물건을 꺼내는 우기는 유능한 외과의 같았다. 늘 걸레와 칼을 가까이하는 탓에 그 애의 손은 닥종이처럼 거칠었다.
푸른 조명 아래서 유영하는 생이새우를 바라보며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짓던 휘의 얼굴이나, 장기를 꺼내듯 조심스럽게 아크테릭스 바람막이를 꺼내 테이블에 올리던 우기의 외과의사 같은 몸짓. 이렇게 오따꾸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순간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그 애들이 오따쿠여서 좋았던 건 사실 한 번쯤은 나를 덕질해줬으면 해서였다. 윤이 나는 눈빛으로 새우를 보듯, 아크테릭스를 보듯 나를 바라보길.
하지만 생이새우와 살로몬 운동화를 나보다 좋아했던 오따꾸의 오따꾸가 된다는 건 외로운 일이었다. 그래도 소파에 발라당 누워서 그 애들이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일을 오래도록 보고 싶었다. 어항의 아름다움이나, 살로몬 운동화의 색감을 칭찬하면 의기양양해지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집중해서 푹 숙인 고개, 찡그린 미간 사이로 그늘지던 주름,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던 알 수 없는 혼잣말 같은 것들이나 까맣게 윤이 나는 눈빛에서 나오는 광기와 총기가 좋았다. 집요하게 좋아하는 것이 있는 사람의 시퍼렇게 살아있는 눈빛이 좋았다. 설령 그게 내가 아니더라도. 난 그런 오따꾸들의 뒷모습을 보는 오따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