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해도, 도와달라고 해도 안 죽는다.
허접인 나를 견딜 수 없다. 억지로 커리큘럼을 따라가야만 하고 등수가 나오던 정규과정을 마친 후, 잘하지 못하는 일을 꾸준히 해본 적이 없다. 못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에 어떤 효용이 있단 말인가?
지난해 봄부터 공방에 다니며 도자기를 익혔다. 하루 종일 같은 문서를 ver.20까지 수정하다가 공방에 가서 차가운 흙을 만지면 살 것 같았다. 손이 지나간 자리가 고스란히 남고, 마음이 산란하면 마음의 무늬까지 그려지는 흙.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불을 만나기 전에는 언제든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흙. 허망한 문서와 싸우다가 한없이 정직한 흙을 만나면 고해성사를 하는 것 같았다.
손으로 꼬물꼬물 작은 기물을 빗다가 여름에 들어서며 연희동에 있는 공방에서 물레작업을 시작했다. 케이크 받침대같이 생긴 물레에 흙 한 덩이를 턱 하니, 놓고 앉았을 때의 막막함이란. 몇 달간 물레 위에서 흙의 중심을 잡는 작업을 반복했다. 흙물에 범벅이 되었지만 제대로 된 모양의 기물은 하나도 없었다. 네 시간, 다섯 시간씩 앉아서 지독하게 못하는 물레작업을 계속했다.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물레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흙의 중심을 찾는 일을 나는 지지리도 못했다. 근데 무척 재미있어서 계속 망하는데도 계속 즐거웠다. 못하는 데, 이렇게 허접이면서도 재미있게 하다니. 다섯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앉아서 끝내 중심을 잡지 못해 아무런 기물도 만들지 못하고 가면서도, 배시시 웃었다. 나 진짜 못해, 근데 재미있어.
매일 도자기 영상을 보고 국립중앙박물관의 청자와 백자사이를 테마파크처럼 누볐다. 가끔은 허공에서 기물을 만드는 시늉을 했다. 가정용 전기물레를 들였다. 도예상에서 굽칼이며 스펀지를 잔뜩 샀다. 해가 잘 드는 베란다에서 앞머리까지 흙투성이가 되어가며 흙을 만졌다. 도자기처럼 정직한 일을, 요령 피울 수 없는 일을 처음 해보아서 눈물 나게 겸손해졌다. 흙 앞에 앉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게 좋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공예,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흙과 물과 불로 뭐든 빚어낼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아주 오래전에도 누군가가 이런 마음으로 흙 앞에 앉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다른 일들은 다 대수롭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흙이 무엇이 되는 걸 보고, 아무것도 만들지 못할 것 같은 내 손이 점점 섬세하게 기물을 잡아가는 걸 보며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었다. 도자기는 천재가 없다고, 그냥 오래 많이 작업하는 사람이 잘할 수밖에 없는 거라던 어느 선생님의 말이 만트라처럼 나를 물레 앞으로 데려갔다. 심지어 오늘은 저번보다는 좀 덜 못하겠지, 정도의 소박한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탁월해질 가능성이 없는 일을 반복하는 건 쓸모없다고 몸서리치던 내가.
도자기 선생님의 휴가로 한 달간 작업을 쉬었다. 공교롭게 복직시기와 겹치며 집에서도 전혀 작업을 하지 못했다. 차갑고 축축한 흙의 감촉과 건조해서 터지는 손등마저도 그리웠다. 휴가 직전에 작업하던 날은 지독하게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눈물이 찔끔 날지경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작업 하고 드디어 한 달 만에 다시 흙의 중심을 잡는 날.
물레의 속도와 흙을 끌어올리고 내리는 속도가 비슷하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느닷없이 깨달아버렸다. 내 손바닥과 손가락 사이에서 춤추는 흙과 함께 춤추는 감각이 생겼다. 꼭 손 끝에 새로운 감각기관이 생긴 것처럼, 그동안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던 호흡과 힘의 느낌이 불이 켜지는 것처럼 깨닫게 되었다. 한 호흡에 천천히 흙을 끌어 올리고 손 안에서 더 이상 흙이 흔들리지 않을 때까지 가만히 안아주며 내리는 일이 걷기처럼 자연스럽게 되었다.
늘 하던 작업이었는데 늘 못하던 일이었는데, 사실 나는 늘 알고 있었구나. 이걸 느끼기까지 내게는 세 번의 계절이 필요했구나. 갑자기 도예 실력이 점프한 것만큼이나 '내가 이렇게 못해!'라고 순수하고 정직하게 받아들인 그 긴 시간이 놀라웠다. 매번 흙꼭두장군 같은 기물을 흙통에 던져 넣으면서도 '나 진짜 못해, 근데 또 할 거야.'라고 아무 계산하지 않고 다시 공방으로 돌아왔던 그 마음이.
복직을 하고 인수인계도 없이 12개의 통장의 금액을 맞추며 30억의 예산을 정산하는 작업을 맡았다. 엑셀파일을 10개씩 열어두고, 파일마다 시트가 20개씩이어서 GPU가 달린 컴퓨터도 깔딱거렸다. 3주를 야근하며 정산하는데 어느 날은 엉엉 눈물이 났다. '퇴사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그 길로 집에 왔다. 그런데 와서 생각해 보니 통장이 열 두 개인 것이, 예산이 30억 인 것이 힘든 게 아니었다. 내가 정산이라는 일을 잘못한다는 게 너무 괴로웠다. 못하면 죽는 게 낫지,라고 스스로에게 악담을 퍼붓고 있었다.
도자기 공방에서는 못하겠으면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생각해보기도 하고, 선생님께 보여드리며 교정했다. '선생님, 잘 안 돼요. 도와주세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왜냐면 못하니까, 스스로의 허접함을 꼬이지 않은 마음으로 인정했으니까.
그런데 회사에서는 그걸 못해서 늘 괴로웠구나. 못하겠어요,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느니 사무실에서 뛰어내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사무실은 1층이지만. 못하겠다는 말이, 못하는 나를 '못하는 나'로 인정하는 게 그렇게도 힘들었다. 펑펑 울다가 갑자기 좀 웃겼다.
다음 날 팀원들에게 메일을 뿌렸다. 제목은 '살려주세요.' 저 아무리 해도 18,000원이 안 맞아요. 못하겠어요. 도와주세요. 결국 누군가 잘못 처리한 회계전표를 찾아냈다. (지금 생각해도 키보드로 갈기고 싶다) 물론 전임자의 도움으로 찾았고 지금 팀원들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지만. 그렇게 공개적으로 못해요, 도와줘요라고 말하고 나니까 살 것 같았다.
새로운 업무를 할 때 잘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나를 보면 이제 넌지시 말한다. 넌 허접이야, 허접이니까 못하는 게 당연해. 허접이 요령을 피울 수는 없어. 도자기도 그랬잖아.
나는 허접이다. 도자기 일 년, 회사생활 십이 년을 겪으며 깨달았다. 허접해도, 도와달라고 해도 안 죽는다. 허접한 건 허접한 거다. 허접한 시기가 없이 잘할 수는 없다. 내가 허접인 걸 알고 나니 사는 게 훨씬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