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 온 힘을 다해 버티다가 금요일 정오가 되면 일주일이 끝났다. 금요일 오후부터 화요일 오전 수업 전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3.5일의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도 힘에 부쳤다. 그깟 일상도 힘에 부치는 내가 싫어서 숨이 가빴다. 10분 거리의 학교를 가고, 널널한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시간을 죽이면서도. 가야 할 곳,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게 숨이 막힌 3.5일이었다.
금요일 점심이 되면 학교 후문의 이삭토스트에 갔다. 햄 치즈 토스트 두 개와 서울우유 커피우유 하나를 먹었다. 이번 주도 살아낸 나를 위한 작은 세리머니. 이십 대 초반의 나는 후문으로 오고 가는 이들이 지닌 청춘을 남의 일 같았다. 청춘이 눈이 부셔서 토스트만 우물댔다. 나만 청춘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걸까? 멍하니 토스트를 먹고 편의점에서 육개장 사발면과 커피우유를 사서, 터벅터벅 방에 돌아갔다.
신발만 벗고, 무너지듯 한참을 현관에 앉아있는다. 금요일 오후부터 나는 잠시 죽는다. 내가 열지 않으면 열리지 않을 문을 바라보며, 주말의 임사체험을 준비한다. 금, 토, 일, 월. 커튼도 걷지 않고 시간을 죽인다. 잘 벼려진 시간이 살갗을 저미고 지나갔다. 웅크리고 있다가 커피우유를 마시다가, 육개장을 먹는다. 다시 웅크린다. 아무도 찾지 않는 긴 고독은 짧은 죽음과 같다. 화요일 아침이 되면 나도 눈이 부신 청춘 속에 섞여 들어간다.
이삭토스트, 커피우유, 육개장 사발면으로 반복되는 시간이 나를 살게 했다. 현재의 기술로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을 잠시 냉동하듯, 지금의 내가 견딜 수 없는 마음들을 잠시 얼려두는 시간이었다. 먼 훗날의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어린 내가 찾은 일종의 수행이자 유예의 시간이었다. 덕분에 이제 나는 일주일을 살 수 있는 삼십 대가 되었다. 달달하고 매콤한 것들로 잘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