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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우 Jan 05. 2024

빈자리, 제 자리

웃을 때면 와아, 하고 삐뚤삐뚤한 덧니가 드러났다. 대학생이 되어 치아 교정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작은 어금니들을 뽑는 것이었다. 덧니가 가지런히 자리를 잡을 수 있게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다. 생니 네 개를 뽑은 자리는 주변 치아들을 당겨 메웠다. 아주 느린 속도로 주변 치아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작은 어금니들이 사라진 공간을 혀 끝으로 문질러 보곤 했다. 운석이 떨어진 듯 텅 빈자리가 조금씩 사라졌다. 2년에 걸쳐 교정이 끝났을 땐,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덧니는 제 제리를 찾아 들어갔다. 교정기를 떼던 날 활짝 웃던 나의 빈틈없이 가지런한 치아는 한동안 치과 브로셔에 실려있었다.


거대운석이 추락한 자리처럼 움푹 파였던 자리를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빈자리가 있었던 것도 잊을 만큼.  나는 지금 빈자리가 생긴 덕분에 제 자리를 찾은 덧니 같다.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여서 내가 원래 덧니였단 것도 있을 만큼. 생니를 뽑은 것처럼 아팠던 그 사람이 떠난 자리도, 천천히 나 자신으로 채워진다. 아주 천천히 메운 탓에 내가 좀 더 가지런하고, 단단해졌다. 빈자리 덕분에 제자리. 한때는 한 몸 같았는데, 어금니를 뽑고도 사는 것처럼 살아진다. 근데 난 덧니가 있던 나도 제법 귀여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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